[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런던의 신경외과팀이 수술 중 내시경 영상을 실시간으로 해석하는 인공지능(AI)의 보조를 받아 뇌하수체 종양을 제거한 첫 임상 사례를 공개했다. AI가 집도하지는 않았지만, 외과의가 육안으로 즉시 확인하기 어려운 시신경과 경동맥 주변 위험 구역을 색으로 표시해 수술 판단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의료 AI가 진단·판독 단계를 넘어 실제 수술실 의사결정에 진입한 사례로 평가된다.
11㎜ 종양, ‘1㎜’가 가르는 수술
bbc.com, ucl.ac.uk, techjuice.pk에 따르면, 영국 베드퍼드셔 출신의 48세 남성 리스 히버트(Rhys Hibbert)는 지난 5월 런던 국립신경과학·신경외과병원(NHNN)에서 뇌하수체 종양 절제술을 받았다. 수술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병원재단(UCLH) 소속 병원에서 진행됐으며, 환자의 회복 경과를 확인한 뒤 8월 27일 공개됐다. 종양은 뇌하수체에 생긴 약 11㎜ 크기의 비암성 종양이었다.
뇌하수체는 두개저 부위에 위치한 작은 내분비기관으로, 성장·대사·혈압·체온 조절 등에 관여하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문제는 이 조직 주위에 뇌로 혈액을 공급하는 경동맥과 시력을 관장하는 시신경이 밀집해 있다는 점이다. UCL 연구팀은 이 부위에서 수술 경로가 1㎜만 어긋나도 시력 상실, 뇌졸중, 사망 같은 중대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히버트는 2024년 12월 산책 도중 의식을 잃고 발작을 일으킨 뒤 정밀검사를 받아 종양을 발견했다. 초기에는 수술 없이 경과를 관찰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호르몬 불균형과 시야 장애가 악화됐다. 특히 주변 시야와 아래쪽 시야가 좁아져 자주 물건에 걸려 넘어졌고, 보행 보조기를 사용해야 했다.
AI가 한 일은 ‘판단 보조’
이번 수술의 핵심은 UCL 호크스 연구소(Hawkes Institute)가 개발한 AI 시스템이다. 의료진은 코를 통해 내시경을 삽입하는 경비강 내시경 경접형동 수술 방식으로 종양에 접근했고, AI는 별도 화면에서 수술 영상 스트림을 실시간 분석했다. 수술 도구의 움직임을 추적하면서 신경과 혈관이 있을 가능성이 큰 영역, 그리고 종양을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구역을 표시했다.
이는 수술 전에 촬영한 MRI나 CT 영상을 기반으로 길을 안내하는 전통적 수술 내비게이션과 구별된다. 기존 영상은 환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미리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실제 수술 중에는 조직이 이동하거나 혈액·기구·시야각 변화가 발생한다. 이번 AI는 수술 전 이미지가 아니라 실시간 내시경 영상 자체를 분석해 그 순간 보이는 조직과 기구의 관계를 인식하도록 설계됐다.
AI는 수백 건의 주석 처리된 뇌하수체 수술 영상으로 학습·평가됐다. 연구진은 과거 수술 영상에서 혈관·신경 등의 윤곽을 표시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모델이 위험 해부학 구조와 수술 기구, 기구-조직 상호작용을 인식하도록 훈련했다. 영국의 평균 외과의사가 이 유형의 수술을 연간 약 10~20건 시행한다는 설명을 고려하면, 수백 건의 영상 데이터는 개인 외과의가 장기간에 걸쳐 축적할 수 있는 사례 경험을 압축한 셈이다.
다만 이는 “AI가 수술을 성공시켰다”는 뜻과는 다르다. 최종 절제 범위 설정, 위험 판단, 기구 조작, 돌발 상황 대응은 전적으로 수술팀의 책임과 통제 아래 이뤄졌다. 한니 마커스(Hani Marcus) UCL 신경외과 교수와 대니얼 칸(Danyal Khan) 연구·수련의가 수술을 집도했고, AI는 위험 부위를 경고하고 시야를 보강하는 ‘전문가급 두 번째 눈’ 역할을 수행했다.
기술의 가치, ‘완전 절제’보다 안전한 경계 설정
뇌하수체 종양 수술에서 중요한 것은 종양을 얼마나 많이 제거했는지뿐 아니라, 시신경·경동맥·정상 뇌하수체 기능을 얼마나 보존했는지다. BBC가 인용한 수술팀 설명에 따르면, 이 유형의 수술은 종양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할 가능성이 약 25~50%이고, 주요 혈관 손상 위험도 약 0.5~2% 수준으로 제시된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원(NICE) 역시 내시경 경접형동 뇌하수체 선종 절제술에서 출혈, 시신경 손상, 뇌척수액 누출, 경동맥 손상 등을 주요 위험으로 든다. NICE가 검토한 사례군에서는 뇌척수액 누출·수막염·뇌졸중·두개강 내 출혈·시력 상실 등을 포함한 중대한 이환율이 1.4%(215명 중 3명)에서 15%(20명 중 3명)까지 보고됐으며, 연구별 환자군과 수술 난이도의 차이가 큰 만큼 수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시간 AI의 잠재력이 나온다. AI의 가치가 숙련된 의사를 대체하는 데 있다기보다, 위험 구조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수술자가 놓칠 수 있는 정보를 보완하는 데 있다면, 궁극적 목표는 ‘더 공격적인 절제’가 아니라 불필요한 손상을 줄이는 정밀한 경계 설정이 될 수 있다.
환자 히버트는 수술 뒤 시야가 크게 회복됐다고 밝혔다. 그는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방 안이 선명하게 보였고, 1년 이상 경험하지 못한 “360도 파노라마 시야”를 얻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UCL에 따르면 그는 수술 후 1주일 안에 안경과 보행 보조기 없이 독립적으로 걸을 수 있게 됐으며, 현재 집에서 회복하며 일상 보행 거리를 늘리고 있다.
‘외과의를 위한 챗GPT’의 조건
이번 사례는 단일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시험 결과다. 따라서 AI가 수술 합병증을 실제로 몇 % 줄였는지, 완전 절제율을 높였는지, 시력·호르몬 기능·재발률 같은 장기 성과를 개선하는지는 아직 결론낼 수 없다. 첫 성공 사례는 기술의 임상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표준치료 전환의 근거는 아니다.
시스템은 실시간 의료기기 환경용으로 설계된 엔비디아(NVIDIA)의 Clara IGX 플랫폼에서 구동됐으며, 임상시험은 영국 국립보건의료연구원(NIHR)과 구글의 지원을 받았다. UCLH NIHR 생의학연구센터, 왕립외과의사회, 영국 공학·물리과학연구위원회(EPSRC), 웰컴 트러스트도 연구를 지원했다.
마커스 교수는 장기 목표를 “외과의를 위한 챗GPT”로 표현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필요한 것은 대화형 답변을 잘하는 AI가 아니라, 수 밀리미터 단위의 해부학적 위험을 지연 없이 보여주고, 불확실성까지 명확히 표시하며, 언제든 외과의가 반박·무시할 수 있는 AI다. 이번 수술의 의미는 AI가 메스를 잡았다는 데 있지 않다. 수술자의 시야와 판단을 보강하는 기술이 실제 환자에게 처음 적용됐고, 이제 그 효용을 숫자로 입증해야 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