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한국에는 교회가 많을까, 편의점이 많을까.” 얼핏 보면 농담 같은 질문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곳의 갯수는 비슷하다. 전국 개신교 교회가 약 5만3000곳이라는 널리 인용되는 추정치를 기준으로 할 경우, 2025년 말 4대 편의점(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의 5만3266개와 사실상 같은 규모다. 다만 ‘프랜차이즈 편의점 전체’라는 공식 통계 기준에서는 2024년 5만4780개로 편의점이 교회 추정치보다 약 1780개 많다.
도시의 불빛, 십자가와 편의점 간판 사이
밤의 한국 도시는 두 종류의 빛으로 기억되곤 한다. 하나는 골목마다 켜진 편의점의 간판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 위에 떠 있는 교회의 십자가다. 이 둘은 한국 사회의 도시 풍경과 공동체 변화를 압축한 비교다. 교회는 의미와 신앙을 제공하는 장소이고, 편의점은 상품과 즉시성을 제공하는 장소다.
하나는 생활의 편의를, 다른 하나는 초월적 질서를 표방하지만, 두 공간 모두 한국인의 일상 반경 안에 촘촘히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닮았다. 전자는 24시간 소비사회가 만든 ‘즉시성의 빛’이고, 후자는 한국의 압축성장과 이주, 가족 해체와 재구성, 불안과 연대의 과정에서 남은 ‘관계의 빛’이라고 볼 수 있다.
1960년 5011개에서 1985년 2만2871개로 그리고 2025년 5만3000개
기독교연감 수치에 따르면, 한국의 교회 수는 1960년 5011개에서 1985년 2만2871개로 늘었다. 25년 동안 4.56배 증가한 셈이며, 단순 연평균 복합증가율로 환산하면 약 6.26%다. 한국전쟁 이후의 도시화·산업화·인구 이동이 교회의 공간적 확장을 촉진했다. 이후 40년만에 또 다시 2배 이상 급증한 5만3000여곳으로 늘어났다.
1980년대까지 교회의 증가는 단순한 종교시설 확충 이상의 현상이었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사람들은 교회를 예배 공간인 동시에 낯선 도시에서 관계를 맺는 사적 네트워크로 활용했다. 교회는 고향·혈연·학교 중심의 전통적 관계망이 약해지는 틈을 메웠고, 교육·복지·구호·상담의 기능도 수행했다. 종교사회학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믿음의 장소’이면서 ‘사회적 자본의 저장소’였다.
편의점 4사 브랜드별 판도…CU가 선두, GS25가 추격
산업통상부는 2025년 말 편의점 4사 점포 수를 5만3266개로 집계했다. 전년 말 5만4852개보다 1586개, 2.9% 감소한 수치다. 2025년 말기준 점포 수 순위는 1위 CU 1만8,711개 35.13%, 2위 GS25 1만8,005개 33.80%, 3위 세븐일레븐 1만1,040개 20.73%, 4위 이마트24 5,510개 10.34%로 조사됐다.
CU와 GS25의 합계는 3만6716개로 4사 전체의 68.93%다. 한국 편의점 시장은 외형상 네 브랜드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위 2개 체인이 시장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는 구조다. 반면 세븐일레븐과 이마트24의 합계는 1만6550개, 31.07%다. 2025년 편의점 수 감소가 주로 3·4위 사업자에 집중됐다는 보도는 편의점 산업이 ‘무조건 많이 여는 경쟁’에서 ‘수익성 있는 점포를 남기는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점포 수가 줄었는데 매출이 소폭 늘었다면, 업계의 관심이 점포 숫자 자체에서 점포당 생산성으로 옮겨갔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공간의 양적 팽창이 질적 효율화로 전환되는 전형적인 성숙시장 현상이다.
두 공간의 공통점과 차이점…편의점은 ‘생활 인프라’, 교회는 ‘관계 인프라’
편의점은 작은 면적 안에 상품과 서비스를 압축해 놓은 민간 상업 인프라다. 반면 교회는 예배당, 식당, 교육실, 주차장, 음향시설, 사람의 네트워크를 보유한 공동체 인프라다. 도시에서 하나는 즉각적인 소비의 필요에 응답하고, 다른 하나는 관계와 의미, 돌봄의 필요에 응답할 잠재력을 갖는다.
편의점의 증가는 한국 사회의 시간 구조를 반영한다.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 장시간 노동, 즉석식품 소비, 택배·결제·공공요금 수납 등 생활 서비스의 확산은 편의점을 단순한 소매점에서 생활 인프라로 바꾸었다.
2026년 국제 학술지 Frontiers in Public Health에 실린 연구는 통계청 2022년 전국사업체조사 자료를 이용해 250개 시·군·구의 편의점 밀도를 분석했다. 연구는 편의점 수가 2019년 4만3975개에서 2022년 5만7617개로 늘었다고 소개했고, 공간적 상관을 보정한 모형에서 인구 1000명당 편의점 한 곳이 추가될 때 고혈압 유병률이 0.968%포인트 높아지는 통계적 연관성을 보고했다.
다만 이 연구는 편의점이 고혈압을 일으킨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한 것이 아니다. 편의점이 많은 지역에는 젊은 1인 가구, 유동인구, 상업지역, 노동환경 등 다른 요인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편의점이 식품 접근성과 생활 습관을 바꾸는 공간이라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편의점은 오늘 필요한 것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즉시 얻는 공간이다.
교회는 다른 방식의 인프라다. 신앙 공동체로서 예배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장기적으로 묶는 관계·돌봄·봉사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종교시설을 단순한 집회 장소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교회가 종립학교, 호스피스, 복지사업, 군종과 교정활동 등 여러 공공영역에 참여학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동일한 공공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단체의 사회적 기여와 공공 책임성은 분명히 있다.
두 공간의 철학적 접근…현재성과 결핍의 지도
철학적으로 보면 두 공간은 서로 다른 형태의 ‘현재성’을 판매한다. 편의점은 배고픔·목마름·결제·배송 같은 즉각적 필요를 해결한다. 교회는 불안·죽음·죄·소속감처럼 즉시 상품화하기 어려운 문제를 공동체적 언어로 다룬다. 하나는 24시간의 시간성을, 다른 하나는 반복되는 주간 의례의 시간성을 갖는다.
한국의 도시가 편의점과 교회로 빽빽해진 것은 한국인이 물질적 필요와 정신적 불안을 동시에 해결해야 했던 압축성장의 결과로도 읽을 수 있다.
또 다른 철학적 관점으로 보면 편의점과 교회의 밀도는 서로 다른 결핍의 지도를 보여준다. 편의점의 확산은 늦은 밤에도 식사와 생필품, 배송과 결제가 필요한 생활의 결핍을 반영한다. 교회의 확산은 낯선 도시에서 소속감과 위로, 교육과 돌봄,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사회적 결핍과 연결된다.
한국의 도시화는 물질적 편의를 확대했지만, 동시에 고립과 경쟁, 돌봄 공백을 낳았다. 편의점과 교회가 같은 숫자대에서 마주치는 이유는 이 두 종류의 필요가 한 도시 안에서 동시에 커졌기 때문일 수 있다.
‘많다’는 것은 번영의 증거인가, 과잉의 신호인가
SNS와 블로그의 반응은 이 문제를 숫자 이상의 문화적 상징으로 만든다. 한 블로그 글은 “편의점보다 많은 교회”라는 표현을 통계청 자료로 확인하려 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한국 교회 수와 편의점 수”를 비교하는 게시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이 게시물들은 엄밀한 통계 보고서라기보다, 도시 곳곳의 십자가와 편의점 간판을 체감하는 시민의 관찰을 보여주는 문화 자료다.
숫자가 많다는 사실은 양면적이다. 편의점이 많으면 접근성은 높아지지만 과밀 경쟁과 폐점 위험도 커진다. 교회가 많으면 종교 선택권과 지역 공동체의 가능성이 커지지만, 교인 감소·재정 악화·유사 교회의 난립·건물 중심주의라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산업경제학의 언어로 바꾸면 양쪽 모두 초기에는 출점이 접근성을 높이지만, 성숙기에 들어서면 한계점포와 한계공동체를 정리해야 하는 압력을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더 많은가”보다 “무엇을 얼마나 잘 제공하는가”다. 편의점의 평가는 점포 수가 아니라 접근성, 가격, 상품 품질, 노동조건, 지역 서비스로 이동하고 있다. 교회의 평가도 교회 수나 건물 규모에서 예배 참석의 지속성, 돌봄의 질, 지역사회 신뢰, 사회적 책임으로 옮겨가야 한다. 양적 팽창이 끝난 뒤에는 공간의 숫자가 아니라 공간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효용이 경쟁력이 된다.
더 넓은 역사적 시야에서 보면 한국의 교회는 산업화 시기에 폭발적으로 늘었고, 편의점은 도시화·1인 가구화·서비스 경제의 시대에 폭발적으로 늘었다. 교회는 관계의 빈틈을, 편의점은 시간의 빈틈을 메웠다. 이제 두 공간 모두 성장의 시대를 지나 효율·신뢰·공공성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2026년 현재 한국 사회의 공간 풍경에서 교회와 편의점은 이미 ‘비슷한 숫자의 두 인프라’가 됐다. 교회는 영혼의 편의점이 아니고, 편의점은 세속의 교회도 아니다. 다만 둘 다 사람들이 불안과 필요를 안고 찾아가는, 한국형 근린생활 공간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