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오직 숫자만 센다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1초에 하나씩 센다는 비현실적인 조건에서도 80년 동안 셀 수 있는 숫자는 약 25억2460만8000에 그친다. 10억 단위의 숫자조차 인간의 한 생애를 통째로 소진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규모다.
‘1초 1개’의 냉정한 한계
계산은 간단하다. 1년을 평균 365.25일, 즉 3155만7600초로 놓으면 80년은 25억2460만8000초다. 매초 숫자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1부터 25억2460만8000까지 세는 것이 이론적 상한선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에게 불가능한 전제다. 수면·식사·배변·이동·질병·대화는 물론, 숫자를 떠올리고 발음하는 시간도 모두 제거한 계산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가 커질수록 숫자 이름은 길어진다. ‘1’은 한 음절이지만, ‘25억2460만8000’은 여러 단위어와 숫자어를 조합해 말해야 한다. “한 숫자당 정확히 1초”라는 규칙 자체가 수십억 단위에서 이미 성립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1초에 세 개씩 센다는 가정을 넣어도 결과는 75억737만4400이다. 인간의 평생을 무한 반복해도 100억에는 닿지 못한다. 100억까지 가려면 초당 약 3.96개를 80년 내내 세어야 한다. 말 그대로 0.25초마다 다음 정수로 넘어가야 하는 셈이다.
단, 80년이라는 기간도 평균적 생애를 가정한 숫자다. 전 세계 기대수명은 2024년 기준 약 73.48세였고, 2023년 기준으로는 약 73세로 집계됐다. 한국의 2024년 출생아 기대수명은 83.7세이며, 남성은 80.8세, 여성은 86.6세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으로 바꾸면
한국의 평균 기대수명 83.7년을 적용하면, 단순 환산한 생애 시간은 약 26억4100만 초다. 1초에 하나씩 세는 사람은 26억대 중반에 이르고, 1초에 세 개씩 센다 해도 약 79억2300만 수준이다. 여전히 100억에는 미치지 못한다.
성별 기대수명을 적용하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2024년 생명표 기준으로 남성 80.8년은 약 25억4900만 초, 여성 86.6년은 약 27억3200만 초에 해당한다.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5.8년 길다는 것은, ‘초당 하나 세기’ 가정에서는 약 1억8300만 개의 숫자를 더 셀 수 있는 시간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통계상의 기대수명은 한 개인이 실제로 살게 될 정확한 시간이 아니다. 특정 연도의 연령별 사망 수준이 앞으로도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0세 출생아가 기대할 수 있는 평균 생존연수를 뜻한다. 따라서 이 계산은 인간의 삶을 설명하는 예측치라기보다, 시간 규모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고실험에 가깝다.
실제 인간의 ‘가용 시간’은 더 짧다
수면만 넣어도 숫자는 급감한다. 매일 8시간을 잔다면 깨어 있는 시간은 하루 16시간, 전체의 3분의 2다. 80년 동안 1초에 하나씩 센다고 해도 최대치는 약 16억8307만2000개로 줄어든다. 식사와 위생, 이동, 노동, 휴식까지 제외하면 실질적 수치는 더욱 작아진다.
한국의 건강 기대수명은 2024년 출생아 기준 평균 66.4년으로 집계됐다. 기대수명 83.7년과의 차이는 약 16.2년이다. 이를 단순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5억1000만 초에 해당한다. 물론 질병이 있다고 숫자를 셀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80년 내내 같은 속도로 단순 반복 작업을 지속한다”는 가정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계적 대비다.
더구나 말하기 속도와 숫자 처리 속도는 별개다. 숫자를 순서대로 세는 행위에는 발성뿐 아니라 다음 수의 검색, 자릿수와 단위의 조합, 주의력 유지, 오류 점검이 포함된다. 빠른 숫자 명명 연구들도 말하기·발화율을 초당 단어 또는 음절 수로 측정하며, 발화 속도는 언어 구조와 과제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1초 3개’조차 장시간 지속 가능한 실제 수행 속도라기보다, 계산 편의를 위해 설정한 공격적인 가정으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
숫자는 끝나지 않지만, 인간의 시간은 끝난다
이 사고실험의 핵심은 숫자에 ‘가장 큰 수’가 없다는 사실과 인간의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의 충돌이다. 100억은 거대하게 들리지만, 매초 하나씩 센다면 약 316.9년이 걸린다. 초당 세 개여도 약 105.6년이 필요하다. 1조까지는 초당 하나씩 셀 경우 약 3만1688년, 초당 세 개여도 약 1만562년이 걸린다.
수학적으로는 어떤 유한한 수를 말해도 그 다음 수가 존재한다. 예컨대 기네스 세계기록은 널리 통용되는 이름을 가진 가장 큰 유한수로 ‘구골플렉스(googolplex)’를 든다. 하지만 인간이 셀 수 있는 범위는 수학적 한계가 아니라 생물학적 시간의 한계에서 결정된다.
결국 “평생 숫자만 세면 어디까지 셀 수 있나”라는 질문은 산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숫자의 규모와 인간이 실제로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의 규모가 얼마나 다른지를 드러내는 질문이다. 80년을 통째로 바쳐도 25억여 개. 숫자는 무한히 이어지지만, 한 사람이 숫자에 줄 수 있는 초는 기껏 수십억 번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