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글로벌 패션 브랜드 가치가 1년 만에 다시 후퇴했다. 그러나 하락 폭은 국가와 브랜드 유형에 따라 크게 갈렸다. 프랑스 명품 중심의 브랜드 가치 감소가 두드러진 반면, 미국은 나이키·티파니앤코를 축으로 상대적으로 견조한 방어력을 보였다.
영국 브랜드 가치평가 컨설팅사 브랜드파이낸스가 8월 19일(현지시간) 발표한 ‘어패럴 50 2026’에 따르면 세계 상위 50개 패션·의류 브랜드의 합산 가치는 3509억달러로 전년보다 4% 줄었다. 거시경제 불확실성, 무역환경 변화, 소비자의 가치·가격 민감도 확대가 브랜드 자산에도 압력을 가한 결과다. 브랜드파이낸스는 “유산과 희소성에 의존해온 브랜드와 성능·편안함·일상성을 앞세운 브랜드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순위 최상단은 여전히 프랑스 럭셔리 하우스들이 차지했다. 샤넬은 브랜드 가치가 9% 감소한 343억달러로 1위를 지켰고, 루이비통은 12% 줄어든 288억달러로 2위였다. 나이키는 7% 감소한 273억달러로 3위를 유지했다. 다만 감소율만 보면 나이키가 샤넬과 루이비통보다 선방했다. 지난해 샤넬이 379억달러, 루이비통이 329억달러, 나이키가 294억달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1년 사이 상위 3개 브랜드 모두 가치가 후퇴했지만 럭셔리 부문의 조정 폭이 더 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국가별로는 미국의 회복력이 눈에 띈다. 미국은 평가 대상 50개 브랜드 가운데 가장 많은 12개를 배출했고, 합산 브랜드 가치는 688억달러였다. 전년 대비 감소율은 1%로 글로벌 평균 하락률 4%의 4분의 1 수준이다.
반면 프랑스는 8개 브랜드의 합산 가치가 1207억달러로 여전히 압도적 1위이지만,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2025년 프랑스 9개 브랜드의 합산 가치는 1356억달러로 전체의 37%를 차지했었다. 브랜드 수 감소의 영향도 있지만, 초고가 럭셔리 시장의 수요 둔화와 가치 조정이 동시에 반영된 셈이다.
미국 브랜드 진영에서는 나이키와 티파니앤코의 역할이 대비된다. 나이키는 가치 순위 3위이자 브랜드강도지수(BSI) 89.9점, AAA+ 등급으로 세계 2위의 브랜드 강도를 기록했다. BSI는 마케팅 투자, 이해관계자 인식, 사업 성과를 종합해 산정하며 브랜드 가치는 이를 바탕으로 미래 브랜드 귀속 매출과 로열티율을 추정하는 ‘로열티 면제법’으로 계산한다. 즉 나이키의 가치 하락은 단순한 인지도 추락이라기보다 실적과 시장환경을 포함한 현금창출 기대치의 조정으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티파니앤코는 미국 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브랜드 가치는 16% 증가한 약 87억달러로 집계돼 글로벌 12위, 미국 내 2위에 올랐다. 이는 럭셔리 시장 전반의 부진 속에서도 주얼리·선물 수요와 브랜드 희소성이 상대적으로 유효했음을 시사한다.
반대로 디올은 브랜드 가치가 31% 감소한 120억달러였지만 BSI 91.5점과 AAA+ 등급으로 브랜드 강도 세계 1위를 지켰다. ‘현재의 금전적 가치’와 ‘장기적인 브랜드 경쟁력’이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스포츠웨어에서도 엇갈린 장면이 나왔다. 아디다스는 브랜드 가치가 2% 늘어난 189억달러로 7위에 올랐고, 나이키는 7% 감소했다. 그러나 나이키는 2026 FIFA 월드컵을 겨냥한 ‘립 더 스크립트(Rip the Script)’ 캠페인에 킬리안 음바페, 엘링 홀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을 앞세우며 스포츠를 대중문화로 확장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브랜드파이낸스는 이번 평가 기준일 이후의 캠페인 효과는 2026년 순위에 반영되지 않았으며, 2027년 브랜드 가치와 강도에 영향을 줄 변수라고 설명했다.
리바이스의 사례는 또 다른 시사점을 남긴다. 리바이스는 브랜드 가치가 8% 하락한 29억달러로 32위에 그쳤지만, 월드컵 기간 FIFA의 ‘클린 베뉴’ 규정으로 스타디움 명칭과 로고 노출이 제한되자 이를 역으로 활용했다. 자사 로고가 가려진 이미지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필에 내걸고 파리·런던·홍콩의 주요 장소에 흰 천을 씌우는 방식으로 화제를 만들었다.
대규모 광고비보다 규제 상황을 재치 있게 전환한 브랜드 대응이 주목도를 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 같은 화제성이 장기 브랜드 가치로 연결되는지는 향후 실적과 소비자 인식 지표로 검증돼야 한다.
이번 순위의 핵심은 ‘명품 대 대중 브랜드’의 단순 구도가 아니다. 패션 브랜드 가치의 다음 승부처는 가격 인상만으로 지탱되는 희소성이 아니라, 성능과 편의성, 문화적 접점, 지속가능성 신뢰를 동시에 확보하는 능력으로 이동하고 있다. 실제 조사에서 의류 구매 시 지속가능성을 핵심 고려 요인으로 꼽은 소비자는 8%였고, 샤넬은 지속가능성 인식 가치에서도 28억달러로 업계 최고를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선 지금, 브랜드의 ‘이름값’보다 소비자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선택받는 이유를 만드는 기업이 다음 랭킹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