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스위스 알프스 트리프트 빙하에서 1992년 실종된 벨기에 등반가 2명의 유해가 발견됐다. 34년간 얼음 아래에 묻혀 있던 사고의 흔적이 극심한 빙하 융해로 지표에 드러난 사건으로, 올여름 유럽 폭염이 알프스 빙권을 얼마나 빠르게 바꾸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uronews, qazinform, newser, nashaniva가 보도한 스위스 발레주 경찰에 따르면 등산객이 지난 7월 26일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운 남부 트리프트 빙하에서 두 구의 유해를 발견했다. 시옹 소재 발레 병원 법의학연구소가 DNA를 대조한 결과, 유해는 1992년 바이스미스 일대에서 실종된 당시 39세와 41세의 벨기에 국적 등반가로 확인됐다. 이들은 1992년 9월 4일 해발 약 4,017m인 바이스미스 정상 등정을 시도한 뒤 악천후 속에서 돌아오지 못했으며, 당시 수색에서는 배낭만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견은 단순한 장기 실종사건의 해결을 넘어선다. 빙하는 유해와 장비, 과거의 지형 정보를 장기간 보존하지만, 질량을 잃고 후퇴하는 과정에서는 그 안에 갇혀 있던 것들을 외부로 배출한다. 즉, 이번 유해 발견은 빙하가 ‘과거를 돌려준’ 사례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고온과 저적설이 빙하의 보호막을 빠르게 무너뜨리고 있다는 물리적 증거다.
한 달에 4m, 하루 10cm씩 낮아진 론 빙하
올여름 스위스 빙하의 변화 속도는 통상적인 계절 변동 범위를 크게 넘어섰다. 스위스 빙하 관측망 GLAMOS에 따르면 남부 스위스 론 빙하는 6월 중순 이후 약 한 달 동안 4m 이상 얼음 두께를 잃었다. 같은 기간 평균 융해 속도는 하루 약 10cm였고, 특히 2주 사이에만 1.4m가 사라진 지점도 관측됐다.
빙하의 여름 손실은 기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겨울철 적설량이 적으면 겨울에 새로 쌓인 눈이 일찍 소진되고, 상대적으로 어두운 빙하 얼음이 노출된다. 눈보다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하는 얼음 표면이 길게 드러나면 융해가 다시 가속되는 구조다. 올해는 적설 부족에 6월과 7월의 연속 폭염이 더해지면서 이 과정이 빠르게 진행됐다.
‘빙하 손실일’ 6월 29일…여름 시작 전 겨울 눈이 소진됐다
스위스에서는 올해 ‘빙하 손실일(Glacier Loss Day)’이 6월 29일에 도래했다. 이는 빙하가 겨울 동안 축적한 눈의 증가분이 모두 녹아 사라지고, 그 이후부터는 전년도에 형성된 빙하 본체가 순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뜻한다. 통상보다 약 두 달 빠른 시점이라는 점에서, 7~8월의 본격적인 고온기에 들어가기 전부터 빙하가 방어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빙하 손실일이 앞당겨질수록 여름철 고온에 노출되는 ‘맨얼음’ 기간은 길어진다. 이는 단지 특정 빙하의 표면이 낮아지는 현상이 아니라, 유역별 계절 물 공급, 산악 관광과 등반 안전, 빙하호 형성 및 산사태·낙석 위험과 연결되는 문제다. 폭염이 반복되면 빙하 주변의 동결된 암반과 얼음의 결속력도 약해질 수 있어 산악 지형 전반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다.
10년간 4분의 1 감소…스위스 빙하의 구조적 후퇴
이번 여름의 급격한 융해는 단발성 이상현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GLAMOS의 2025년 연례 평가에 따르면 스위스 빙하 전체 부피는 2024~2025년 수문연도에 약 3% 줄었으며, 이는 관측 이래 네 번째로 큰 연간 감소 폭이다. 같은 보고서는 2015년 이후 10년간 스위스 빙하 부피의 약 4분의 1이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수치로 보면 변화의 속도는 더 뚜렷하다. 2025년 말 기준 스위스 전체 빙하 부피는 약 45.1㎦로 추정되는데, 2000년과 비교하면 약 30㎦가 감소한 수준이다. 2022년 한 해에만 스위스 빙하는 약 3㎦의 얼음을 잃었고, 이는 1991~2020년 평균 연간 손실량의 세 배를 넘는 규모였다. 2022년과 2023년 두 해 동안에는 남아 있던 스위스 빙하 부피의 약 10%가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작은 빙하의 소멸도 이미 현실이 됐다. GLAMOS와 스위스 연구기관들은 2015년 이후 1,000개가 넘는 소형 빙하가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대형 빙하의 후퇴가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라면, 소형 빙하의 소멸은 산악 생태계와 지역 수문 환경의 기반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신호다.
‘발견’이 아니라 ‘노출’의 시대
트리프트 빙하에서 발견된 두 등반가의 유해는 빙하가 과거를 보존해 왔다는 사실과, 그 저장고가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는 현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유해가 발견됐다는 점 자체가 빙하 융해의 규모를 정량화하는 지표는 아니지만, 34년 전 사고 현장의 얼음층이 크게 이동·감소해 접근 불가능했던 지점이 노출됐음을 뜻한다.
알프스의 빙하는 이제 단순한 관광 경관이나 산악 스포츠의 배경이 아니다. 유럽의 기후위기가 가시화되는 현장이자, 수자원·재난 위험·생태계·지역경제의 변화를 먼저 기록하는 자연 관측소에 가깝다. 34년 만에 드러난 두 등반가의 흔적은, 빙하가 녹는 속도가 인간의 기억과 기록이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빨라지고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