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SK하이닉스가 약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하면서, AI 메모리 호황으로 축적한 현금을 성장투자와 주주환원에 동시에 배분하는 새로운 자본정책을 제시했다. 핵심은 단순한 일회성 매입이 아니라 2025~2027년 누적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상을 환원하겠다는 기준 상향이다.
SK하이닉스는 19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2407만주를 40조43억4000만원 규모로 취득한 뒤 전량 소각하기로 의결했다. 취득 예정 물량은 전체 발행주식 7억3049만2365주의 약 3.3%이며, 매입은 8월 20일부터 11월 19일까지 장내에서 진행된다. 위탁 매매는 SK증권이 맡고, 하루 최대 주문 수량은 240만7000주다.
이번 매입 규모는 이사회 결의 전날 종가인 166만2000원을 기준으로 산출됐다. 주가가 변동하면 실제 매입 주식 수와 취득 금액의 구성은 달라질 수 있지만, 회사가 사들인 주식을 시장에 재매각하지 않고 소각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통주식 수가 감소하기 때문에,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주당순이익(EPS)과 주당 현금흐름의 개선 효과가 발생한다.
‘50% 이내’에서 ‘50% 이상’으로
이번 결정의 본질은 40조원이라는 절대 금액보다 주주환원 정책 문구의 변화에 있다. SK하이닉스는 2024년 11월 발표 당시 2025~2027년 누적 FCF의 ‘50% 범위 내’에서 주주환원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에는 이를 ‘50% 이상’으로 높였다. 자사주 취득·소각과 현금배당을 병행하고, 고정배당 및 특별배당을 포함한 배당 확대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는 상한선 성격이던 기존 환원 가이드라인을 최소 기준으로 전환한 셈이다. 즉 향후 3개년 누적 FCF가 당초 예상보다 확대될 경우, 회사가 성장투자와 재무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재원을 제외하고도 주주에게 더 큰 몫을 배분할 수 있는 구조를 공식화한 것이다.
40조원의 배경은 69조원 순현금
대규모 환원의 배경에는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 확대에 따른 현금창출력 급증이 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2분기 매출 79조3187억원, 영업이익 60조542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56.8%, 영업이익은 557.2% 늘었고, 영업이익률은 76%에 달했다.
2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88조원, 차입금은 18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순현금은 69조4000억원이다. 이번 40조원 매입액은 이 순현금의 약 57.6%에 해당한다. 다만 회사의 배당가능이익, 향후 설비투자, 운전자본, 메모리 업황의 변동성 등을 고려하면 순현금 전체를 환원 재원으로 그대로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회사가 순현금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를 자사주 소각에 배정했다는 것은, 현재 재무구조와 중장기 현금흐름 전망에 대한 경영진의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SK하이닉스는 AI 인프라 투자와 HBM 수요 확대, 고부가 메모리 제품 판매 증가가 실적을 이끌었다고 설명해왔다.
주가 방어보다 ‘저평가 해소’ 신호
SK하이닉스는 사업 경쟁력, 현금창출력, 중장기 성장성을 고려할 때 현재 주가에 기업 내재가치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판단해 자사주 매입·소각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회사가 단순히 주가 하락을 방어하려는 차원을 넘어, 현 주가 수준을 경영진이 장기 가치 대비 매력적인 매입 가격으로 본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자사주를 ‘매입 후 보유’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량 소각’한다는 점에서 주주가치 제고의 직접성은 더 크다. 보유 자사주는 향후 처분이나 임직원 보상, 전략적 거래 등에 다시 활용될 수 있지만, 소각주식은 발행주식 수에서 영구적으로 제외된다. 이번 소각 대상이 전체 발행주식의 약 3.3%인 만큼, 순이익이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EPS에는 기계적으로 약 3.4%의 상승 요인이 생긴다.
다만 실제 주당가치 개선폭은 향후 매입 평균단가, 배당정책, 이익 규모, 설비투자와 감가상각, 메모리 가격 등 복합 변수에 의해 좌우된다. 자사주 소각이 기업가치를 자동으로 높이는 것은 아니며, 매입 가격이 내재가치보다 과도하게 높거나 미래 성장투자를 훼손할 경우에는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3분기 발표가 진짜 시험대
이번 발표는 ‘40조원 소각’이라는 단발성 이벤트보다, SK하이닉스가 AI 메모리 초호황에서 만든 이익을 어떤 비율로 성장과 주주에게 나눌 것인지를 재정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로이터는 이번 조치가 AI 메모리 수요에 따른 기록적 이익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해 늘어난 자본환원 요구와 맞물려 있다고 전했다.
시장 판단의 다음 기준점은 3분기 실적 발표다. 회사는 정책기간의 현금흐름, 시장 상황, 배당가능이익을 고려해 추가 자사주 취득·소각과 배당을 추진하고, 구체적 규모와 방식은 이사회 결의를 거쳐 3분기 실적 발표 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투자자가 확인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첫째, 40조원 장내매수가 실제로 시장 유동성과 주가 변동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다. 둘째, 특별배당을 포함한 현금배당 확대가 어느 수준에서 제시되는지다. 셋째, HBM 등 AI 메모리 투자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도 SK하이닉스가 설비투자와 기술경쟁력을 훼손하지 않고 ‘FCF 50% 이상’ 환원을 지속할 수 있는지다.
이번 결정은 그 균형에 대한 회사의 강한 자신감이자, 향후 실행력을 검증받는 출발점이라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