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HL만도 평택공장에서 발생한 28세 하청노동자 고 김승모 씨의 사망사고는 한 청년의 비극을 넘어, 대기업 원청의 안전관리와 외주화 구조가 제대로 작동했는지를 묻는 사건이 됐다. 회사의 9조원대 매출 성장과 오너 경영진의 수십억원 보수, 그리고 현장 하청노동자의 저임금·고위험 노동 사이의 간극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기남부경찰청과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현재 수사·조사 단계인 만큼 사고 원인과 법적 책임은 향후 공식 조사 결과로 확정돼야 한다.
7월 22일, MCT 안에서 멈춘 28세의 삶
고 김승모 씨는 지난 7월22일 낮 12시48분께 경기 평택시 포승읍 HL만도 평택공장 내 머시닝센터(MCT) 12호기에서 설비 점검·정비 작업을 하다가 기계에 끼여 숨졌다. 김씨는 하청업체 소속으로 기계 유지·보수 업무를 맡았으며, 사고 당시 기계 내부에 있던 김씨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한 원청 소속 직원이 시운전을 한 것이 사고 경위로 파악되고 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은 사고 당시 두 하청업체가 동시에 작업하고 있었지만 작업지휘자나 안전관리자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노조 조사에 따르면 사고 설비는 2005년 생산된 구형 모델로, 문이 열리면 설비 가동을 멈추게 하는 인터록 장치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더 큰 문제는 유사 사고의 반복 가능성이다. 해당 공장에서는 2016년에도 같은 공정·유사 설비에서 내부 작업자가 있는 상태로 기계가 가동돼 노동자가 다친 사고가 있었다. 당시 현장 노동자들이 노후 설비와 안전장치 문제를 제기했으나 근본적 개선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유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대책 마련 전까지 장례 절차를 무기한 미루겠다는 뜻을 밝혔다. HL만도는 유가족과 동료에게 애도와 사과를 표하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87억6400만원 vs 월 270만원
정몽원 HL그룹 회장은 2025년 HL홀딩스·HL만도·HL D&I 한라 등 주요 3개 계열사에서 총 87억64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공시됐다. 회사별로는 HL만도 38억2100만원, HL홀딩스 25억7100만원, HL D&I 한라 23억7200만원이다. 2024년 주요 3개사 합산 보수 75억4400만원보다 16.17% 증가한 수준이다. HL클레무브 보수까지 포함할 경우 104억8400만원에 달한다.
104억8400만원을 12개월로 나누면 월 평균 약 8억7367만원, 365일 기준 하루 약 2873만원이다. 대책위가 확보했다는 김씨의 2026년 상반기 평균 월 급여 270만원과 비교하면 월 보수 격차는 약 323.6배다. 정 회장의 하루 환산 보수는 약 2873만원으로 김씨 월 평균 급여보다 약 2600만원 많다.
여기서 핵심은 단순히 ‘연봉이 얼마냐’는 문제가 아니다. 회사의 경영 성과와 보수 체계가 현장 안전에 필요한 인력, 설비 개선, 작업통제 체계에 어느 정도 우선순위를 부여했는지를 묻는 문제다. 특히 정 회장은 올해 상반기에도 HL만도에서 급여만 13억5000만원을 수령했다. 같은 기간 HL만도의 연구개발비는 2608억3300만원으로 매출의 5.43%를 차지했다.

9조4548억원 매출 뒤의 안전 공백
HL만도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9조4548억원, 영업이익 3571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보다 6.9%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0.5% 감소했고, 당기순이익은 1228억원으로 22.4% 줄었다. 통합 전자브레이크 시스템(IDB2) 양산 확대와 인도 완성차업체 협업 확대가 매출 성장의 배경으로 제시됐다.
회사는 2030년 매출 14조1000억원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화·전동화·글로벌 수주 확대라는 성장 서사와 달리, 평택공장 현장에서 드러난 의혹은 가장 기초적인 안전관리 시스템의 작동 여부다. 기계 내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 정비와 시운전의 통제, 작업허가 체계, 2인1조 운영, 인터록 설치와 유지가 모두 사고 예방의 최소 단위이기 때문이다.
사고 설비가 2005년 생산된 장비이고 10년 전 유사 사고가 있었다는 노조 측 주장까지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번 사건은 우발적 개인 과실이 아니라 예견 가능했던 구조적 위험의 관리 실패 여부로 번질 수 있다. 경찰과 노동당국의 압수수색도 작업지시서, 안전관리 자료, 위험성 평가와 정비·시운전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의 외주화’가 남긴 질문
김씨는 원청이 아니라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설비 유지·보수는 생산설비를 멈추고 내부에 들어가야 하는 만큼 고위험 작업에 속한다. 그럼에도 사고 당시 원청의 시운전과 하청의 정비 작업이 충돌했는지, 누가 작업을 총괄하고 통제했는지, 원청이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는지가 수사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금속노조는 평소 2인1조로 하던 작업을 김씨가 혼자 수행했으며, 사고 기계에 인터록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사안의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는 경찰·고용노동부 조사 및 향후 사법 절차에서 가려져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있다. 대기업 원청의 생산 현장에서 하청노동자가 기계 내부에 들어가 정비를 하는 순간, 안전 책임은 계약서 한 장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원청의 생산관리·설비가동 권한과 하청의 인력·작업이 맞물려 있다면, 위험 역시 원청과 하청의 경계를 넘어 관리돼야 한다.
HL만도는 글로벌 성장과 ESG 성과를 강조해 왔다. 회사는 2025년 MSCI ESG 평가에서 A등급을 유지했고, CDP A- 등급과 에코바디스 골드 메달을 받았다고 사업보고서에서 밝혔다. 하지만 외부 평가등급보다 더 본질적인 ESG는 공장 한복판에서 기계 내부에 들어간 노동자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고 김승모 씨의 죽음은 이제 HL만도에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 첫째, 9조원대 매출 기업이 왜 2005년식 설비의 안전장치와 정비·시운전 통제를 끝내 보완하지 못했는가. 둘째, 경영진 보수와 미래 성장 투자만큼 현장 인력·안전설비·작업중지권에는 어떤 기준과 예산을 배정했는가.
만도 고 김승모 대책위(만도 평택공장 청년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승모 중대재해 대책위원회)는 "원청은 막대한 이익을 독식하며 경영진에게 수백억원의 연봉을 지급하면서도, 현장의 안전을 책임지는 하청 노동자는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소모품처럼 취급했다"며 "정몽원 회장이 직접 나서 진정성 있게 사죄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를 만드는 기업에서, 정작 위험한 기계를 멈추게 할 기본 안전장치가 작동했는지 여부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정몽원 회장과 HL만도 경영진이 유족과 노동자들에게 답해야 할 것은 사과의 수사만이 아니다. 회사는 수사기관에게 과거 위험 인지·개선 요청·설비 보완·작업 통제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