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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이슈&논란] ‘TSMC 호황’ 전국민 44만원 지급…대만의 AI 배당, 성장 공유인가 선거용 현금정치인가

 

[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대만 라이칭더 정부가 2027년 예산안에 전 국민 1인당 1만 대만달러(약 44만원)를 지급하는 ‘AI 배당금’을 편성하기로 했다.

 

AI 반도체 수출 호황으로 늘어난 재정 여력을 가계에 직접 돌려주겠다는 구상이지만, 고성장 국면에서의 보편 현금 지급이 소비·분배·재정 측면에서 정당한 선택인지를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게다가 정치적 수세에 몰린 라이칭더 정부가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 타개 목적으로 현금 살포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라이 총통은 8월 17일(현지시간) 2027년도 중앙정부 총예산안 보고를 받은 뒤 2357억 대만달러(약 10조4000억원)를 들여 전 국민에게 1만 대만달러씩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대만 정부는 내년 중앙정부 세입 전망을 3조9266억 대만달러로 높였으며, 수입과 지출의 균형 및 신규 국채 발행 없는 재원 조달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급 대상, 지급 방식, 실제 지급 시점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이번 현금 지급의 재원 논리는 분명하다. 대만의 AI 공급망이 글로벌 데이터센터 투자 경쟁의 핵심 수혜자가 되면서 수출·투자·제조업 생산이 동반 확대됐기 때문이다. 대만 주계총처(DGBAS)는 올해 2분기 실질 GDP 성장률을 전년 동기 대비 12.93%로 잠정 집계했고, 1분기 성장률은 15.43%로 상향 수정했다. 이에 따라 상반기 성장률은 14.15%에 달했다.

 

대만 정부는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을 기존 9.64%에서 11.05%로 1.41%포인트 올렸다. 이는 39년 만의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 라이 총통 측 설명이다. 주계총처는 AI 모델 훈련을 넘어 추론형 AI, 에이전트 AI, 엣지 디바이스로 수요가 확장되면서 범용 AI 가속기와 맞춤형 칩 수요가 함께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올해 실질 수출 증가율은 21.28%, 민간 설비투자는 11.58%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AI 배당’의 실체


‘AI 배당’은 TSMC를 비롯한 반도체·패키징·테스트·메모리·IC 기판·장비 기업이 만들어낸 수출과 법인·소득 세수의 증가분을 전 국민에게 동일하게 나눠주겠다는 정치적 표현이다. 대만 정부는 기술 산업의 호황이 서비스업·전통산업·중소기업 종사자에게 고르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문제의식도 정책 배경으로 제시했다.

 

현금 지급 규모는 인구 약 2357만명을 기준으로 산출됐다. 4인 가구라면 4만 대만달러, 원화로 약 176만원을 받게 된다. 정부가 제시한 사용처는 교육비, 노인 돌봄, 생활비, 지역 소비 등이다. 직접 지원은 업종이나 소득에 따라 선별하지 않아 집행이 빠르고 행정 비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숫자로 본 정책의 딜레마


문제는 호황기에 지급하는 보편 현금이 실질적인 내수 확대나 분배 개선으로 이어질지다. 대만 중앙연구원이 올해 7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과거 현금 지급 수령자의 81.15%가 돈을 사용했다고 답했지만, 소비를 늘리는 효과를 가늠하는 한계소비성향 추정치는 0.29에 그쳤다. 지급액 1만 대만달러 가운데 약 2900대만달러만 추가 소비로 연결되고, 나머지는 저축·부채 상환·기존 지출 대체 등으로 흡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구나 대만 경제는 이미 과열 우려를 논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주계총처는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4.76%로 전망하면서, 주가 상승과 기업 실적 개선, 노동시장 개선이 가계 소득 및 자산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소비 진작이 절실한 침체 국면의 재난지원금과, AI 수출과 주식시장이 활황인 시점의 일괄 현금 지급은 거시경제적 의미가 다르다.

 

물가 변수도 부담이다. 대만 정부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2.07%로 기존보다 0.14%포인트 높였다. AI 수요로 인한 전자부품 가격 상승, 서비스 물가의 오름세, 임금 상승 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지목됐다. 이 상황에서 전 국민 현금 지급이 단기 소비를 추가로 자극할 경우, 현금 지원의 실질 구매력이 물가 상승으로 일부 상쇄될 수 있다.

 

‘여섯 번째 현금 지급’의 정치


이번 정책은 대만에서 여섯 번째 전국 단위 현금성 지원에 해당한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3600대만달러 소비쿠폰, 코로나19 국면의 2020년 3000대만달러 및 2021년 5000대만달러 소비쿠폰, 2023년 6000대만달러 현금 지급, 2025년 1만 대만달러 지급에 이어 2년 연속 1만 대만달러를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셈이다.

 

특히 이번 발표는 정치적 역설을 낳고 있다. 야당 국민당(KMT)은 올해 5월부터 같은 액수의 현금 지급안을 추진해 왔고, 당시 집권 민주진보당(DPP)과 행정부는 국방·인프라·국가부채 상환을 우선해야 한다며 재정 규율을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가 동일한 금액을 ‘AI 배당’으로 다시 제시하자, 국민당은 정책의 기준이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입법원도 변수다. 대만 입법원은 야당인 국민당과 대만민중당(TPP)이 다수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2026년 중앙정부 예산은 기록적인 지연 끝에 통과됐고, 야당 주도로 행정부 지출안에서 480억 대만달러가 삭감됐다. 따라서 현금 지급안은 총통의 발표만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원의 예산안 확정과 입법원 심의를 모두 넘어야 한다.

 

성장 공유의 다음 단계


보편 현금 지급은 ‘누구에게 얼마를 돌려줄 것인가’에는 간단한 해답을 주지만, ‘AI가 만든 부를 어떻게 지속 가능한 사회적 자산으로 바꿀 것인가’에는 답하지 못한다. 대만 감사원도 일반 현금 지급이 단기 내수 활성화에는 일부 효과가 있다고 보면서도, 사전 설계와 사후 효과 평가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중앙정부 공공부채도 5조8379억 대만달러를 넘는다고 평가했다.

 

비판 진영에서는 2357억 대만달러를 사회주택·돌봄·의료·재난안전·교통 인프라에 투입하는 편이 더 큰 장기 편익을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만 시대역량의 왕완위 주석은 같은 예산이면 사회주택 약 8만4000채를 지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수치 자체는 정치권의 추정이지만, 일회성 현금과 장기 공공투자 사이의 기회비용을 드러내는 논점이다.

 

대만의 AI 배당은 반도체 패권국이 AI 호황의 과실을 국민에게 어떻게 배분할지 시험하는 정책이다. 다만 정책의 성패는 44만원을 지급하는 데 있지 않다. 현금 지급이 실제 취약계층의 소득 안전망을 보완하는지, 기술산업 집중으로 벌어진 격차를 완화하는지, 그리고 AI 초과수익을 인재·전력·주거·돌봄 같은 생산적 자산으로 연결하는지에 따라 ‘배당’과 ‘선거용 보너스’의 평가가 갈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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