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객실이 모두 찼습니다.” 현실의 호텔이라면 예약 종료를 뜻하는 이 문장이, 무한호텔에서는 새 손님을 받는 출발점이 된다. 독일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가 1924년 강연에서 제시한 사고실험은 ‘무한’을 단순히 아주 큰 수가 아니라, 유한한 세계의 산술 규칙이 통하지 않는 별도의 구조로 보여준다.
만실의 호텔이 한 명을 더 받는 법
힐베르트의 무한호텔은 객실 번호가 1, 2, 3, 4, …처럼 자연수 전체에 대응하도록 끝없이 이어진 가상의 호텔이다. 모든 객실에 이미 한 명씩 투숙해 있어도, 새 손님 한 명은 들어올 수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기존 n번 방 투숙객을 n+1번 방으로 옮기면 된다. 즉 1번 손님은 2번 방으로, 2번 손님은 3번 방으로 이런 방식으로 이동한다. 그러면 1번 방 하나가 비고, 새 손님은 그곳에 들어간다. 기존 투숙객 중 방을 잃는 사람은 없다.
유한한 호텔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여기서는 ‘마지막 객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100개 방이 만실이면 101번 방은 없지만, 자연수로 번호가 매겨진 객실에는 가장 큰 번호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방 번호를 골라도 그보다 1 큰 번호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 사고실험의 출발점이다.
더 극적인 장면도 가능하다. 무한히 많은 새 손님이 도착했을 때 기존 투숙객을 n번 방에서 2n번 방으로 옮긴다. 그러면 기존 손님은 2, 4, 6, 8번 등 짝수 번호 방에만 남고, 1, 3, 5, 7번 등 모든 홀수 번호 방이 비게 된다. 새 손님 n명은 각각 2n−1번 방에 배정된다. ‘무한 명이 이미 투숙 중인 만실 호텔’이 또 다른 무한 명을 모두 받는 것이다.
‘더 큰 무한’ 앞에서는 멈춘다
무한호텔이 무엇이든 수용하는 만능 시설은 아니다. 자연수처럼 번호를 붙일 수 있는 집합만 수용할 수 있다. 반면 0과 1 사이의 모든 실수, 예를 들어 0.1, 0.01, π/10 등을 포함하는 집합은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시킬 수 없는 비가산무한이다.
게오르크 칸토어의 대각선 논법은 실수를 아무리 목록으로 나열해도, 그 목록의 n번째 수의 n번째 자릿값을 바꿔 만든 새로운 실수를 구성할 수 있음을 보인다. 새로 만든 수는 목록의 모든 수와 적어도 한 자리에서 다르므로 목록에 들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실수 전체는 자연수보다 더 큰 무한이며, 힐베르트 호텔의 객실 번호만으로는 실수만큼 많은 손님을 모두 배정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힐베르트는 1900년 파리 국제수학자대회에서 제시한 23개 문제 중 첫 번째 문제로 연속체 가설을 꼽았다. 이는 자연수의 무한과 실수의 무한 사이에 또 다른 크기의 무한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문제다. 이후 쿠르트 괴델은 이 가설을 부정할 수 없음을, 폴 코언은 공리적 집합론 안에서 참으로 증명할 수도 없음을 보였다. 즉 널리 쓰이는 집합론 공리계에서는 연속체 가설이 독립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1924년 강연에서 1947년 대중과학으로
‘힐베르트 호텔’이 실제로 힐베르트의 아이디어였는지를 놓고는 한동안 수학계의 확인 작업이 이어졌다. 과학사 연구자 헬게 크라흐의 논문 「힐베르트 무한호텔의 진짜(?) 이야기」에 따르면, 힐베르트는 이 사고실험을 1924년 1월 강연에서 소개했지만 당시 출판하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널리 알린 인물은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였다. 가모프는 1947년 대중과학서 『One Two Three… Infinity』에서 무한호텔을 소개했고, 이후 이 사례는 수학 교육뿐 아니라 우주론, 철학, 신학의 실제 무한 논쟁으로 확장됐다. 크라흐는 이 호텔이 1970년대부터 우주론과 철학·신학의 다양한 논의에 활용됐다고 정리한다. 국내에서도 이 사고실험은 수학 대중화의 단골 소재가 됐다.
과학·철학·문화가 읽는 무한호텔
힐베르트 호텔은 현실에 지을 수 있는 건축물이 아니다. 사람과 방을 실제로 무한히 만들 수 있다는 물리학적 주장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특정한 수학적 전제, 즉 실제 무한의 집합을 하나의 완결된 대상으로 취급하고 그 원소들을 자연수와 일대일 대응시키는 집합론 안에서 성립하는 모델이다.
과학적으로 이 사례는 ‘모델의 언어’가 직관을 어떻게 갱신하는지 보여준다. 유한한 재고·좌석·예산의 세계에서는 부분집합이 전체보다 반드시 작다. 그러나 가산무한 집합에서는 전체와 진부분집합 사이에 일대일 대응이 가능하다. 짝수 전체와 자연수 전체가 n↦2n이라는 대응으로 연결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무한호텔의 빈 홀수 방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바로 이 대응 관계를 생활 언어로 번역한 장치다.
철학적으로는 ‘잠재적 무한’과 ‘실재적 무한’의 충돌을 드러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수를 택해도 더 큰 수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의 잠재적 무한은 받아들였지만, 무한한 총체가 이미 완성된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실재적 무한에는 신중했다. 힐베르트 호텔은 바로 그 실재적 무한을 가정했을 때의 결과를 선명하게 연출한다.
그래서 철학자와 신학자 일부는 이 호텔의 기묘한 결과를 현실 세계에 실재하는 무한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논거로 사용해 왔다. “실재적 무한이 가능하다면 무한호텔도 가능해야 하지만, 만실이면서 무한히 많은 빈방을 만들 수 있다는 결과는 부조리하다”는 식이다. 다만 수학의 주류 관점에서 힐베르트 호텔은 공리적 집합론의 모순을 보여주는 역설이 아니라, 유한 집합의 상식을 무한 집합에 그대로 적용했을 때 생기는 직관의 충돌이다.
문화적으로 무한호텔의 힘은 숫자와 서사를 결합했다는 데 있다. ‘가산무한’, ‘전단사’, ‘기수’ 같은 전문용어를 모르는 사람도 만실 호텔, 밤중의 손님, 끝없이 들어오는 버스라는 장면을 통해 무한의 낯선 규칙을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진짜 반전은 호텔이 손님을 끝없이 받는 데 있지 않다. 무한은 무조건 거대하다는 이미지와 달리, 수학에서는 배열 방식과 대응 규칙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로 비교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힐베르트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가득 찼다”는 말은 정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뜻인가. 유한한 현실에서는 그렇지만, 무한의 수학에서는 아니다. 그 작은 언어의 균열이 칸토어의 집합론, 현대 수학의 기초, 그리고 인간이 ‘끝없음’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바꿔 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