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9월 22일은 세계 코뿔소의 날이다. 이 날은 거대한 초식동물 한 종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코뿔소는 인간이 만들어 낸 희소성, 불법 유통망, 과학기술, 그리고 생명의 존엄이 가장 날카롭게 충돌하는 현장이다.
코뿔소를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단어는 뿔이다. 그러나 뿔만 바라보는 시선은 ‘뿔을 노린 밀렵의 희생자’라는 범죄의 상품으로 축소한다. 코뿔소는 거대한 몸을 가진 초식동물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냄새의 공공망을 만들고 식물 종자를 먼 곳으로 옮기며, 인간이 만든 이미지·시장·생식기술의 시험대가 된 존재다.
즉 코뿔소는 냄새로 사회를 운영하고, 배설물로 숲을 이주시키며, 인간은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해 뿔을 잘라내고 냉동 배아를 만든다. 9월 22일 세계 코뿔소의 날은 그래서 ‘뿔을 지키자’는 구호보다, 한 종의 몸속과 발밑과 사회적 관계 속에 얼마나 많은 생태계가 접속돼 있는지를 묻는 날에 가깝다.
‘5종’의 숫자에 숨겨진 진실
지구상에 남은 코뿔소는 흰코뿔소·검은코뿔소·인도코뿔소·자바코뿔소·수마트라코뿔소 등 5종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워싱턴협약)가 2025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아프리카 코뿔소는 2만2540마리였지만 전년보다 6.7% 감소했다. 검은코뿔소는 6788마리로 5.2% 늘었지만, 흰코뿔소는 1만5752마리로 11.2% 줄었다.
아시아의 상황은 더 극단적이다. 인도와 네팔, 인도네시아의 코뿔소 개체 수는 2025년 초 기준 4159~4172마리로 추정됐다. 이 중 인도·네팔의 인도코뿔소는 2007년 2565마리에서 2025년 3월 말 4075마리까지 늘었다. 반면 자바코뿔소는 50마리, 수마트라코뿔소는 34~47마리만 남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2019~2023년 자바코뿔소 26마리가 밀렵으로 사라졌는데, 이는 당시 알려진 개체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인도코뿔소는 여러 보호지역과 국경을 넘는 관리체계, 비교적 넓은 개체군을 가진 반면 자바코뿔소는 사실상 인도네시아 우중쿨론국립공원 한 곳에 생존이 걸려 있다. 한 종이 한 장소에 몰려 있다는 것은 태풍, 질병, 쓰나미, 밀렵조직 침투 같은 단 한 번의 충격이 종 전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개체 수 50’은 생물학적 숫자이면서 동시에 지정학적 위험지수다.
코뿔소의 ‘SNS’는 배설물…말없이 만나고, 시간차로 읽는다
코뿔소를 단지 시력이 나쁘고 난폭한 동물로 보는 시선은 핵심을 놓친다. 또 코뿔소가 혼자 걷는 동물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의 눈이 냄새를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흰코뿔소에게 공동 배설장(분변 더미), 즉 ‘미든(midden)’은 화장실이 아니라 성별, 나이, 수컷의 영역성, 암컷의 발정 상태를 전하는 화학적 정보센터에 가깝다. 인간이 스마트폰 화면에서 타인의 상태를 확인하듯, 코뿔소는 냄새를 통해 다른 개체의 성별·연령·영역 지위·번식 가능성을 읽는다.
흥미로운 것은 메시지의 내용만이 아니다. 영역 성체 수컷은 더미를 더 자주 찾아가고, 더 많이 배설하며, 다른 성체보다 자기 분변을 더 오래 냄새 맡았다. 이들은 주로 더미 중앙에 배설했고, 다른 개체는 주변부에 배설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종속 수컷도 중앙부에 배설하려 했다. 냄새의 공간 배치가 곧 위계와 도전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배설물은 코뿔소 사회가 남기는 ‘비가시적 문서’다. 눈에 보이는 발자국이 이동의 기록이라면, 냄새는 관계와 욕망, 위계와 경계의 기록이다. 인간이 쓰레기와 배설물을 ‘제거해야 할 흔적’으로 취급해 온 것과 달리 코뿔소는 그것을 사회적 인프라로 활용한다. 보호구역 관리에서 공동 배설장과 이동 경로를 관찰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체를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그 사회의 구성과 변화가 냄새의 지도에 남기 때문이다.
즉 코뿔소에게 미든은 부재 속에서도 유지되는 느린 공공성이다. 보호구역 관리가 개체 수만 세고 이런 정보 거점을 훼손한다면, 살아 있는 동물의 사회적 기반을 놓칠 수 있다.
‘뿔’은 약이 아니라 시장이 만든 욕망
코뿔소 뿔은 뼈가 아니다. 생물학적 주성분은 사람의 손톱과 머리카락에도 들어 있는 케라틴 단백질이다. 하지만 뿔의 생물학적 성분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은 인간 사회가 덧씌운 이미지다. 희소성과 투기, 부와 전통, 효능과 치료, 과시 소비가 결합하면서 뿔은 야생동물의 신체 일부가 아니라 범죄시장 속 고가 상품이 됐다.
코뿔소의 뿔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몸에 붙은 사치품’인 셈. 여기서 비극은 코뿔소가 자신이 가진 생물학적 기관 때문에 살해된다는 데 있다. 인간은 코뿔소에게 뿔을 부여한 진화보다, 그 뿔에 가격을 붙인 시장을 더 무섭게 만들었다.
CITES는 코뿔소 뿔의 특정 의학적 효능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소비국 대상 교육에 반영할 것을 권고해 왔다. 동시에 수요를 단순히 ‘미신’으로만 규정하는 접근 역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수요는 전통의학의 역사, 건강 불안, 부유층의 과시, 가공품·장식품 시장, 범죄자금 세탁 가능성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즉 코뿔소 뿔 밀거래는 과학의 부족만이 아니라 시장의 과잉이 낳은 문제다.
2024년 아프리카 코뿔소 밀렵률은 2.15%로 2011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최저’라는 말은 안심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2025년 1분기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최소 83마리의 남부흰코뿔소와 8마리의 검은코뿔소가 밀렵당한 것으로 보고됐다. IUCN은 남아공·말레이시아·베트남이 불법 뿔 거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연결고리라고 지목했다.
코뿔소의 위장은 ‘움직이는 식물원’…종자 80%를 1㎞ 너머로 보낸다
코뿔소는 보호해야 할 동물이기 전에 다른 생명에게 필요한 이동 인프라이기도 하다. 2024년 네팔 치트완·수클라판타 국립공원에서 수행된 연구는 큰뿔코뿔소가 거대과실 식물 Mallotus nudiflorus의 종자를 어떻게 퍼뜨리는지 물소·소와 비교했다. 그 결과 코뿔소가 옮긴 종자의 80%는 1㎞ 이상 이동했고, 잠재적 이동거리는 약 5.4㎞에 이르렀다.
코뿔소의 멸종은 한 종의 실종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종자가 멀리 이동하지 못하면 강변 숲과 초원의 재생 경로가 바뀌고, 수십 년 뒤 우리가 보는 식생의 구성도 달라질 수 있다. 코뿔소의 발자국은 생태계의 도로이고, 위장은 숲의 이주 수단이다. 뿔의 무게만 계산하는 경제학은 이 5.4㎞의 미래 숲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뿔을 잘라 목숨을 지킨다’는 보호의 역설…78% 감소와 82% 축소 사이
현대 보전의 가장 불편한 장면은 코뿔소의 뿔을 미리 자르는 일이다. 2025년 Science에 발표된 남부 아프리카 11개 보호구역 연구는 2017~2023년 동안 1985마리가 밀렵돼 매년 개체군의 약 6.5%가 사라졌다고 집계했다. 경비원, 추적견, 출입통제, 감지카메라에 약 7400만 달러가 쓰였고 700명 넘는 밀렵범이 체포됐지만, 이 조치들 자체가 밀렵을 줄였다는 통계적 증거는 찾지 못했다.
반면 8개 보호구역 2284마리를 대상으로 한 정기적 뿔 제거 ‘디호닝(dehorning)’은 밀렵을 약 78% 급감시켰다. 여기에 든 비용은 전체 밀렵방지 예산의 1.2%였다. 뿔 밑동과 다시 자란 부분을 노린 밀렵이 계속된다는 한계는 있지만, 범죄자가 노리는 보상을 낮추는 전략이 단속만 늘리는 전략보다 강력할 수 있음을 보여 준 결과다.
2023년 PNAS 연구는 뿔이 제거된 검은코뿔소에서 서식 범위가 최대 82%, 개체 간 상호작용이 37% 줄었다고 보고했다. 원인과 결과의 모든 경로를 한 연구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생존율을 높이는 조치가 관계망과 공간 이용에는 비용을 남길 수 있다는 경고로는 충분하다. 데이브 밸푸어 IUCN 아프리카코뿔소 전문가그룹 의장은 “지속적인 성공은 강력한 보호만이 아니다"면서 "지역 주민을 포괄하고 권한을 부여하는 통합 관리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뿔 제거는 ‘야만적 처치’와 ‘만능 해법’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읽어야 한다. 코뿔소에게 뿔은 몸의 일부이고, 인간이 만든 불법 시장에서는 현금화 가능한 표적이다. 보호는 그 표적을 지우기 위해 동물의 몸을 다시 설계하는 데까지 왔다. 이때 성과지표는 사체 수 감소 하나가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이동범위·번식·지역공동체의 이익까지 함께 재야 한다.
‘본 적 없는 코뿔소’가 200년을 지배…이미지가 생물보다 먼저 살 때
코뿔소는 오래전부터 실제 동물보다 이미지로 먼저 소비됐다. 1515년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코뿔소를 직접 보지 못한 채 편지의 묘사와 다른 이의 스케치로 목판화를 만들었다. 등 위의 여분 뿔과 갑옷 같은 피부는 오류였지만, 복제하기 쉬운 목판 인쇄와 자연사 서적의 재수록 덕분에 이 그림은 200년 넘게 유럽에서 ‘코뿔소의 진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그림의 실물 모델은 인도 구자라트에서 포르투갈 마누엘 1세에게 보내진 인도코뿔소 ‘겐다’였다. 겐다는 로마시대 이후 유럽에 나타난 첫 코뿔소로 큰 구경거리가 됐지만,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지는 배 안에서 사슬에 묶인 채 난파로 익사했다. 사체는 리스본으로 돌아가 박제 전시됐다. 한 동물의 몸은 외교 선물, 흥행물, 박제, 인쇄 이미지로 차례로 바뀌었다.
뒤러의 부정확한 코뿔소가 오랫동안 사실을 이긴 것처럼, 현대의 뿔 거래도 물질 자체보다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와 신념에서 힘을 얻는다. 보전은 순찰의 문제인 동시에 거짓된 이미지를 해체하는 문화정치의 문제다.
마지막 두 마리와 38개 배아…기술은 ‘부활’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조건
북부흰코뿔소는 자연 번식만으로는 사실상 종 보전이 어려운 단계다. 케냐 올페제타 보호구역에 남은 암컷 나진과 딸 파투, 단 두 마리는 모두 임신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 국제 컨소시엄 바이오레스큐(BioRescue)는 난자 채취와 체외수정, 남부흰코뿔소 대리모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북부흰코뿔소를 되살리려 하고 있다.
BioRescue 컨소시엄 발표 기준 2025년 8월 연구진은 순수 북부흰코뿔소 배아 38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2024년 7월, 12월, 2025년 5월에는 북부흰코뿔소 배아를 대리모에게 이식했지만 지속 임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2023년 남부흰코뿔소 배아를 이용해 코뿔소 종 최초의 체외수정 임신을 확인하며 기술적 가능성은 입증했다.
이 프로젝트는 희망의 이야기인 동시에 질문의 이야기다. 실험실에서 배아를 늘리는 것이 ‘종을 구하는 일’의 전부일 수 있을까. 한 종을 다시 번식시키더라도, 그 동물이 돌아갈 안전한 서식지와 밀렵의 유인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복원은 유리병 속 성공에 머문다. 생명공학은 멸종을 늦출 수 있지만, 탐욕이 만든 서식지 파괴와 불법시장을 대신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코뿔소 보전은 그래서 미래형 기술의 문제이면서도, 가장 오래된 관계의 문제다. 대리모의 건강, 현장 보호인력, 지역 주민의 생계, 불법 공급망의 차단, 서식지 회복이 빠짐없이 맞물려야 냉동 배아가 야생의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기술은 자연을 대신하는 마술이 아니라, 인간이 너무 늦게 시작한 책임을 더 오래 지는 방식이어야 한다.
코뿔소 세는 법을 바꿔야 한다
세계 코뿔소의 날에 필요한 것은 ‘코뿔소가 몇 마리 남았는가’라는 질문을 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숫자를 더 정직하게 읽는 일이다. 2만2540마리라는 아프리카 총계 뒤에는 11.2% 줄어든 흰코뿔소가 있고, 50마리라는 자바코뿔소 숫자 뒤에는 26마리의 밀렵 피해가 있으며, 34~47마리라는 수마트라코뿔소 추정치 뒤에는 만남 자체가 어려운 분절된 서식지가 있다.
동시에 우리는 코뿔소를 분변 더미를 통해 관계를 맺는 사회적 동물로, 종자를 5.4㎞까지 실어 나르는 경관의 동반자로, 뿔을 제거해 생존과 사회성 사이의 비용을 치르는 존재로, 냉동 배아 안에 미래를 위탁한 종으로 세어야 한다. 코뿔소를 살린다는 말은 뿔 하나를 지키는 일이 아니다. 냄새의 공공망, 씨앗의 이동, 몸의 온전성, 유전자의 시간, 그리고 인간 사회의 책임을 함께 지키는 일이다.
코뿔소는 뿔이 커서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이 아니다. 인간이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희귀성을 더 비싼 상품으로 바꾸는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에 위태롭다. 9월 22일 세계 코뿔소의 날은 그래서 묻는다. 우리는 마지막 코뿔소를 애도할 준비를 하는가, 아니면 뿔에 붙은 가격표를 떼어낼 준비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