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구글 딥마인드가 수어를 텍스트로 바꾸는 인공지능 모델 ‘SL2T(Sign Language to Text)’를 공개하고, 이를 픽셀 11의 키보드 앱 지보드(Gboard)와 실시간 전사 기능 ‘라이브 트랜스크라이브’에 적용했다.
수어 AI가 단순 연구 시연을 넘어 소비자용 스마트폰의 실제 입력 방식으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접근성 기술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하지만 초기 지원 범위가 미국수어(ASL)에서 영어로 제한되고 고위험 통역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한계도 명확하다.
‘번역’이지 손동작 인식이 아니다
mashable, androidauthority, Deafened Organization에 따르면, SL2T의 핵심은 수어를 영어 단어의 손동작 버전으로 취급하지 않는 데 있다. 수어는 손·팔의 움직임뿐 아니라 몸통의 위치, 고개와 얼굴 표정, 공간 활용이 동시에 문법과 의미를 만드는 독립 언어다. 세계농아인연맹(WFD)은 전 세계에 200개 이상의 국가 수어가 있으며,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 공동체 구성원이 7000만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한다.
구글은 이 복합성을 처리하기 위해 스마트폰 카메라 영상 자체가 아니라 사용자의 얼굴·몸·손에서 추출한 신체 랜드마크 좌표를 입력값으로 활용한다. 기기는 얼굴·몸·손의 130개 지점을 추적해 움직임을 기하학적 좌표로 바꾸고, 원본 영상은 즉시 폐기한다. 좌표만 서버로 보내 텍스트로 번역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 수어 AI가 흔히 거쳤던 ‘글로스(gloss)’ 단계를 생략한 구조다. 글로스는 수어를 단어형 표기로 옮긴 중간 주석이지만, 표정과 공간 문법처럼 비선형적인 의미를 충분히 담기 어렵다. SL2T는 신체 좌표에서 곧바로 문장을 생성해, 단어 목록의 한계와 중간 변환에서의 정보 손실을 줄이겠다는 접근이다.
10만 시간 학습, 첫 출시는 ASL→영어
구글 딥마인드는 SL2T를 50개 이상 수어의 10만 시간 이상 데이터로 학습했으며, 이 중 약 4분의 1은 미국수어 데이터라고 밝혔다. FLEURS-ASL 벤치마크의 제로샷 평가에서는 70 BLEURT를 기록해 이전에 보고된 결과를 크게 웃돌았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이는 특정 벤치마크의 자동 평가 점수이지, 실제 대화 환경에서의 무오류 통역률을 뜻하지는 않는다.
상용 기능은 제한적으로 시작한다. 픽셀 11 시리즈의 지보드와 라이브 트랜스크라이브에서 ASL을 영어 텍스트로 변환하며, 지원 국가·지역도 일부에 한정된다. 사용자는 카메라 앞에서 수어로 웹 검색을 하거나 메시지·문서를 작성하고, 제미나이에게 질문할 수 있다. 폴더블 모델에서는 변환 텍스트가 외부 화면에도 표시돼 대화 상대방이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구글은 추가 기기와 수어 지원을 예고했으며, 픽셀 11 사용자에게는 별도 비용 없이 제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국수어(KSL) 지원 일정, 한국 내 제공 여부, 한국어 출력 지원 여부는 공개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발표를 ‘수어 통역의 보편화’로 평가하기보다는, 영어권 ASL 사용자에게 우선 제공되는 단방향 입력 기능의 출시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통역사 대체 아닌 ‘저위험 입력 보조’
가장 주의할 대목은 활용 범위다. 구글과 수어 AI 자문기구는 SL2T를 “저위험 의사소통을 위한 보조 입력 도구”로 규정한다. 의료 진료, 법정, 교육 현장, 채용 면접, 정부 청문처럼 오역이 권리 침해나 안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용하도록 설계되지 않았고, 법적 편의 제공 의무나 전문 수어통역사의 역할을 대체하지도 못한다.
초기 모델은 지역별 표현과 속어, 복잡한 ASL 문법, 빠른 지문자(fingerspelling), 표정이나 머리 움직임에 강하게 의존하는 의미에서 성능 저하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가 멈추거나 다른 사람이 화면에 들어올 때 실제로 수어를 하지 않은 단어를 생성하는 이른바 ‘고스트 텍스트’ 문제도 보고됐다. 저조도, 프레임 밖 손동작, 의상·배경과 손·얼굴 사이의 낮은 대비 역시 오류 요인이다.
이는 한국수어 AI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국내 수어 AI 관련 단체·연구 현장에서는 표준화된 환경의 단어 인식과 달리, 자연스러운 일상 대화에서는 표정·시선·박자·공간 활용·지역 및 세대별 변이를 함께 해석해야 해 정확도가 크게 낮아진다고 지적한다. 한국수어 데이터가 영어권 수어 데이터보다 부족하다는 문제도 상용화의 병목으로 남아 있다.
접근성 경쟁의 기준이 바뀐다
SL2T의 의미는 ‘AI 통역사’라는 과장된 표현보다, 음성 받아쓰기와 키보드 입력 사이의 격차를 좁히려는 시도에 있다. 청인 사용자가 음성으로 검색·메시지 작성·AI 질의를 수행하듯, 농인 수어 사용자도 자기 언어로 디지털 서비스에 명령을 내리는 입력 경로를 얻는 것이다.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통역사 배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상적·비공식적 상황에서 의사표현의 속도와 자율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성과를 판단할 기준은 모델의 벤치마크 점수만이 아니다. 한국수어를 포함한 개별 수어의 지원 확대, 지역·연령·표현 방식에 따른 인식 편차 공개, 오류가 발생했을 때의 사용자 통제권, 영상·좌표 데이터 처리의 투명성, 그리고 농인 당사자의 기획·검증 참여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구글측은 "이번 개발에 농인 직원, 외부 테스터, 수어 전문가, 통역사, 장애인 권익 단체를 참여시키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밝힌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기술이 통역 서비스를 축소하는 비용절감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고, 전문 통역이 닿지 못했던 일상 대화의 선택지를 넓히는 보조 도구로 자리 잡을 때 비로소 SL2T의 사회적 가치는 입증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