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모건스탠리가 국내 기술주 최선호 종목을 삼성전자에서 삼성전기로 교체했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메모리와 완제품을 넘어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반도체 패키지 기판 등 고부가 부품의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번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의 수혜가 대형 반도체 기업에서 핵심 부품 공급사로 확산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모건스탠리는 삼성전기에 대한 ‘비중확대(Overweight)’ 의견을 유지하면서 목표주가를 256만원에서 262만원으로 올렸다. 강세 시나리오 목표가는 300만원, 약세 시나리오 목표가는 135만원으로 제시했다.
이는 기본 시나리오와 약세 시나리오의 격차가 127만원에 이르는 구조로, 성장 기대만큼 AI 투자 속도와 부품 가격의 변동성이 핵심 위험이라는 점도 함께 반영한 수치다. 모건스탠리는 목표주가 산정에 2028년 예상 주가수익비율(PER) 33배를 적용했으며, 당시 2028년 예상 PER 18배가 과거 고점인 30배를 밑돈다고 평가했다.
AI 서버가 만든 ‘부품 병목’
이번 최선호주 변경의 중심에는 MLCC가 있다. MLCC는 전력의 저장·안정화와 노이즈 제거를 담당하는 필수 전자부품으로, AI 서버는 고성능 연산 칩과 전력 사용량 증가로 일반 서버보다 훨씬 많은 고사양 제품을 필요로 한다. AI 가속기와 맞춤형 반도체(ASIC)의 성능이 올라갈수록 단순한 부품 물량보다 고용량·고내열·소형화 MLCC의 안정적 조달 능력이 중요해지는 구조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6월 말 기준 주요 MLCC 공급사의 수주 대비 출하 비율(Book-to-Bill Ratio)이 무라타 1.30, 삼성전기 1.31, 타이요유덴 1.25로 코로나19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고 집계했다. 통상 이 비율이 1을 웃돌면 신규 주문이 출하보다 많아 수주잔고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업계 전체 비율도 1.04를 기록했다.
특히 트렌드포스는 구글 TPU, 아마존웹서비스(AWS)의 트레이니엄, 메타 MTIA 등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의 자체 AI 가속기 양산 확대가 고용량·저전압·초소형 MLCC 수요를 밀어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AI용 고사양 제품에 생산능력이 집중되면서 자동차와 소비자 전자제품용 공급에도 압박이 전이되고 있으며, 중국 유통시장에서는 6월 범용 X5R MLCC 가격이 평균 15~25% 올랐다고 밝혔다.
이는 모건스탠리가 제시한 ‘AI와 무관한 고객의 선주문 확대’ 논리와 맞닿아 있다. AI 고객이 물량을 선점하면 스마트폰·PC·전장 고객도 조달 차질을 우려해 재고 확보에 나설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수요 가시성과 평균판매가격(ASP)이 함께 오를 수 있다. 다만 이는 모든 MLCC 제품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상은 아니다. 트렌드포스는 고사양 AI용 수요가 강한 반면 전통적인 소비자 전자제품 수요는 상대적으로 약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적으로 확인된 고부가 전환
삼성전기는 이미 AI 서버·데이터센터·전장 부품 중심의 성장세를 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회사가 발표한 올해 1분기 연결 매출은 3조209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일회성 퇴직급여 비용 714억원을 반영하고도 2806억원으로 40% 늘었다. 1분기 영업이익률은 약 8.7%다.
회사 측은 1분기 성장 배경으로 AI 서버·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MLCC와 AI 가속기·서버 중앙처리장치(CPU)용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공급 확대를 꼽았다. 컴포넌트 부문 매출은 1조408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6% 늘었고, 패키지솔루션 부문은 7250억원으로 45% 증가했다. 특히 패키지 부문의 성장률이 전체 매출 성장률을 크게 웃돌았다는 점은 AI용 고다층·대면적 기판 비중 확대로 사업 믹스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2분기에는 성장 속도가 더 빨라졌다. 삼성전기는 2분기 매출 3조4572억원, 영업이익 4404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 영업이익은 107% 증가한 수치다. 단순 계산한 영업이익률은 약 12.7%로, 1분기 약 8.7%에서 4%포인트가량 개선됐다. 매출 증가율보다 이익 증가율이 훨씬 높은 것은 고부가 제품 비중 상승과 가격·가동률 개선이 동시에 작용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모건스탠리가 삼성전기의 AI 관련 매출 비중이 2026년 20%에서 2027년 31%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한 것도 이 같은 실적 흐름에 기반한다. AI 매출 비중이 11%포인트 확대되면 회사의 성장 동력은 스마트폰 등 세트 수요의 경기 변동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데이터센터 투자와 고성능 부품의 공급 제약에 더 크게 연동될 수 있다.
ABF, 물량보다 기술 난도가 관건
두 번째 축은 ABF 기판이다. ABF는 고성능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패키지 기판의 핵심 소재로, AI 가속기와 대형 ASIC은 더 많은 회로층, 더 넓은 면적, 더 높은 전력 안정성을 요구한다. 여러 칩을 한 패키지로 묶는 멀티 칩렛 설계가 확산할수록 기판의 미세회로 구현력과 열·전력 관리 능력은 중요해진다.
모건스탠리는 2030년까지 ABF 기판 공급 부족률이 25%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며, 삼성전기가 글로벌 ASIC 업체들로부터 여러 건의 AI 칩 기판 수주를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AI용 ABF 매출은 2030년까지 4~5배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서버 출하량 증가보다 칩당 기판 면적과 층수, 내장 부품 수가 늘어나는 ‘콘텐츠 증가’에 투자 논리가 놓여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기도 1분기 실적 발표에서 글로벌 빅테크향 AI 가속기·서버 CPU·네트워크용 고부가 기판 공급이 패키지솔루션 매출 확대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회사는 AI 가속기와 서버 CPU용 차세대 고다층·대면적·임베디드 기판 공급을 확대하고, 신규 빅테크 고객의 AI 데이터센터 네트워크용 제품 공급도 본격화하겠다고 설명했다.
‘톱픽’ 변경이 남긴 세 가지 검증 과제
모건스탠리의 판단은 AI 투자 확대가 반도체 칩만이 아니라 전력·패키지·수동부품 공급망의 병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삼성전기는 MLCC와 패키지 기판을 동시에 보유해 AI 서버의 전력 안정화와 반도체 연결이라는 두 영역의 수요 증가를 함께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그러나 목표주가 실현 여부는 세 가지를 검증해야 한다. 첫째, MLCC 가격 상승이 고사양 제품을 넘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는지다. 둘째, 고객의 선주문이 실제 최종 수요 증가인지, 공급 불안을 반영한 재고 축적(선구매)인지 구분해야 한다. 셋째, ABF 시장의 공급 부족 전망이 실제 수주와 가동률, 수익성으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트렌드포스는 엔비디아·구글·AMD의 신규 AI 플랫폼이 3분기 양산에 들어가면서 하반기 고사양 MLCC의 리드타임 연장과 추가 가격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동시에 4분기는 고사양 MLCC 시장이 전면적 공급 부족 국면으로 들어갈지를 가늠할 분기라고 짚었다. 삼성전기 투자 논리의 진짜 시험대도 결국 하반기 주문 증가가 일회성 재고 축적을 넘어 장기공급계약, 판가, 마진으로 이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