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히로시마 원폭 투하 80년 만에, 과학자들이 폭발 직후 몇 초 사이에 생성된 미지의 금속 합금을 규명했다. 이번 발견은 핵폭발이 단순히 파괴에 그치지 않고,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의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phys.org, science.org, gizmodo.com, wionews.com에 따르면, 이탈리아 피렌체대학교 루카 빈디(Luca Bindi) 교수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한 이번 논문은 1945년 8월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금속 합금을 만들어냈다는 연구 결과다. 즉 핵폭발이 단순 파괴가 아니라 극한의 '미시 실험실' 역할을 하며 자연계에 없던 물질을 빚어낸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무엇이, 어디서 발견됐나
연구팀은 히로시마만 해변 모래에서 채취한 '히로시마이트(Hiroshimaite)'라 불리는 유리질 미세 구체 34개를 현미경 분석, 화학 분석, X선 회절법으로 정밀 분석했다. 히로시마이트는 원폭 폭발 당시 건물·토양·금속·유리·물이 순간적으로 기화된 뒤 급속 냉각되며 형성된 입자로, 크기는 사람 적혈구 정도인 수 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다.
이 구체 내부에서 발견된 신합금은 전체 입자 질량의 약 3%에 불과할 정도로 미세한 방울과 뭉치 결정 형태로 유리 기질 속에 박혀 있었다. 성분 분석 결과 철 약 63%, 크로뮴 약 15%, 니켈 약 9%, 규소 약 7%의 비율로 구성돼 있었으며, 여기에 망가니즈·몰리브데넘·알루미늄이 더해져 균일한 입방 결정격자를 이룬 것으로 확인됐다.
스테인리스강과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원자 배열
이 합금의 원소 구성비는 흔히 쓰이는 민간용 스테인리스강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연구팀이 이 결정 구조를 기존 수천 종의 광물·합금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결과, 완전히 일치하는 사례를 찾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원소 조합은 더 단순한 결정 구조로 안정화되지만, 이번 합금은 훨씬 복잡한 입방형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빈디 교수는 매체 기즈모도와의 인터뷰에서 "이 입자들은 단순히 녹아내린 잔해가 아니라 폭발의 물리적 기록보관소"라며, "단 몇 분의 1초 동안만 존재했던 조건의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과정으로 형성됐나… 7000도 화염구와 초고속 냉각
1945년 8월 6일 투하된 원폭 '리틀보이'는 폭발 순간 화염구 내부 온도가 섭씨 7,000도를 넘어서면서 도시 전체의 건물·토양·금속 구조물을 순식간에 금속 증기 구름으로 기화시켰다. 이후 화염구가 급속히 팽창하며 주변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자, 혼합된 금속 증기가 수천 분의 1초 만에 응축·냉각되면서 원자들이 통상적으로는 형성될 수 없는 독특한 결정 구조 안에 그대로 '갇혀버렸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을 "우연히 발생한 수많은 미시 실험(uncontrolled microexperiments)" 중 하나로 규정하며, 히로시마 폭발 당시 이 같은 미시적 반응이 수천 개, 혹은 수백만 개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트리니티 핵실험 준결정과의 연결고리
이번 발견은 빈디 교수가 앞서 미국 뉴멕시코주 트리니티 핵실험(1945년 7월) 잔해에서 '준결정(quasicrystal)' 구조를 확인한 연구의 후속작이다. 당시 트리니티 핵실험에서도 자연계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희귀 준결정 구조가 발견됐는데, 두 사례를 종합하면 핵폭발이 "구조적·화학적 상평형의 비정상적인 영역"을 체계적으로 탐색하며 새로운 물질군을 만들어낸다는 가설에 힘이 실린다.
핵 법의학과 신소재 개발에 던지는 시사점
빈디 교수팀은 이러한 합금 화합물이 "폭발 당시의 장치 재료, 주변 환경, 열화학적 조건에 관한 진단 정보를 담고 있다"고 밝혀, 향후 핵 법의학 분야에서 폭발원 규명 등에 활용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중국 매체들은 이번 발견이 극한 조건에서 견딜 수 있는 새로운 특수 소재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이 같은 핵폭발 조건이 "행성 간 고속 충돌, 운석 충돌, 낙뢰와 본질적으로 유사한" 극한 환경에 해당한다고 언급했으며, 이러한 소재들이 대체로 뛰어난 기계적 강도·열 안정성·내부식성을 갖는 만큼 극한 사건 잔해물에 대한 "체계적이고 윤리적·법적으로 관리된"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참고로 앞선 별도 연구에서는 히로시마 해변 지표면 약 10㎝ 깊이에 남아 있는 유리 입자량이 1㎢당 약 2,300~3,000톤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 바 있어, 이번 신합금 연구를 위한 시료 자원은 여전히 풍부하다는 점도 시사한다.
이번 발견이 히로시마라는 단일 사례에 그치는 '이례적 현상'인지, 혹은 극한 열충격 사건이 만들어내는 더 넓은 물질군의 일부인지는 아직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