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한국과 세계 재벌가의 이혼소송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주식'이다. 부부가 함께 쌓아온 부(富)를 어떻게 나누느냐를 둘러싼 법정 다툼이 곧 그 사회의 재산 개념과 성역할 인식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다.
[랭킹연구소] 세계에서 가장 비싼 이혼 TOP10…빌 게이츠·제프 베이조스·알렉 와일든스타인·루퍼트 머독·버니 에클스톤 順
최태원-노소영, 국내 최고액 갱신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은 파기환송심에서 9440억원으로 판결이 선고됐다. 하지만 재상고 여부가 남아있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는 종전 항소심이 인정한 1조3808억원보다 4368억원 줄어든 금액이지만, 공개된 국내 재벌가 이혼소송 가운데 여전히 역대 최대 규모다.
재판부는 노 관장의 기여도를 33.3%로 인정하면서도, SK 주식 가치 산정 시점을 파기환송심 선고 시점의 급등한 현재가가 아닌 2024년 4월 16일 종전 항소심 변론종결 당시 가격(1주당 16만원)으로 계산해 액수를 낮췄다.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는 연 5%의 지연이자까지 붙는데, 이는 하루 이자만 약 1억3000만원에 달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주식이 부부 공동재산인가'라는 법리적 판단이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혼인 기간 30년 동안 가사·양육은 물론 SK그룹 관련 대외 활동으로 재산 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며 주식을 분할 대상에 포함시켰다. 반면 대법원은 앞선 항소심이 인정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을 노 관장 측 기여로 볼 수 없다고 파기 환송하며 액수를 조정하게 만들었다.
8조 권혁빈, 한국 최고액 뒤집을까
관심은 이제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책임자(CVO)의 이혼소송으로 옮겨간다. 2022년 11월 제기된 이 소송의 1심 선고는 오는 9월 9일로 예정돼 있으며, 배우자 이모씨 측은 스마일게이트 지분의 절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마일게이트의 기업가치가 4조~8조원대로 평가받는 만큼, 5대 5 분할이 인정될 경우 최태원 회장의 9440억원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 최고액 이혼소송 기록을 새로 쓸 가능성이 거론된다.
재벌가 재산분할, '주식 인정' 여부가 갈랐다
국내 재벌가 이혼소송을 관통하는 핵심 변수는 결국 '주식을 공동재산으로 볼 것인가'였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임우재 전 삼성전기 상임고문과의 소송에서 1조2000억여원을 요구받았지만, 법원이 이 사장 보유 주식을 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최종 지급액은 141억여원에 그쳤다.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역시 한진그룹 주식이 분할 대상에서 빠지며 13억3000만원 지급으로 마무리됐다.
반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2004년 이혼 당시 회사 지분 1.76%(당시 시가 300억원대)를 재산분할로 증여해, 최태원-노소영 이혼에 이어 국내 역대 2위를 유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임세령 대상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배우 고현정의 이혼은 모두 소송이 아닌 조정으로 조기 마무리돼 구체적 분할 규모가 공개되지 않았다.

세계 최고액과 비교하면…가장 비싼 이혼 1위는 빌 게이츠
한국의 9440억원은 세계 최상위 이혼소송과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가 크다. 빌 게이츠와 멀린다 프렌치 게이츠의 이혼은 총 760억달러(약 100조원 상당)에 달하는 자산 분배로 마무리됐으며, 이 중 최근 공개된 세금 서류에는 게이츠가 멀린다의 재단에 78억8000만달러(약 10조원)를 지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2위는 제프 베이조스와 매켄지 스콧의 2019년 이혼으로 아마존 지분 4%를 매켄지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약 380억달러(약 50조원) 규모로 합의됐다.
세계 최고액 이혼과 견줘보면 한국 최고액인 최태원-노소영 사건의 9440억원은 빌 게이츠 부부 합의액의 약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단순한 재산 규모의 차이라기보다, 상장 대기업 지분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인정하는 법리 자체가 한국 재판부에서 뒤늦게, 그리고 매우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혼소송이 비추는 재벌가의 초상
재산분할 소송의 액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 사회가 '결혼 내 여성의 기여'를 얼마나 인정하는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읽힌다. 최태원-노소영 사건에서 재판부가 30년 혼인 기간 중 가사·양육·대외활동을 재산 형성의 기여로 인정한 대목은, 과거 재벌가 이혼에서 배우자의 '보이지 않는 노동'이 법적으로 평가절하됐던 관행에 균열을 낸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동시에 이 소송들은 재벌 지배구조의 취약점을 노출시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창업자 일가의 이혼이 경영권 방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최 회장 측은 이번에도 현금 지급 방식을 택함으로써 SK 주식 자체의 경영권 희석은 피했다.
이는 한국식 재벌 이혼소송의 독특한 딜레마 즉 '개인의 이혼'과 '기업의 지배구조'가 분리되지 않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반면 미국의 게이츠·베이조스 사례는 이미 지분 자체를 대거 넘기는 방식이 익숙하게 통용된다는 점에서, 두 사회의 자본과 결혼에 대한 문화적 태도차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비교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