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부산 벡스코에서 7월 19일 개막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155개국 2,929명의 각국 대표단을 맞아 33건의 세계유산 심의를 이어가는 가운데, 한국이 1988년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이 회의를 주최하는 역사적 순간을 맞았다.
이 시점에 전 세계유산 '1호'들을 되짚어보면, 단순한 숫자 이면에 숨겨진 흥미로운 역사와 '서열화의 함정'이라는 철학적 질문이 함께 드러난다.
세계유산 1호, 그 오해와 진실
인터넷에는 "세계문화유산 1호는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파르테논이 포함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는 1987년에야 등재됐고, 신청서 번호도 404번에 불과해 애초에 '1호'와는 거리가 멀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제도를 도입한 뒤 최초로 등재된 유산은 1978년 제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선정된 12곳이다. 독일의 아헨 대성당,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 캐나다의 나한니 국립공원,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외에도 란세오메도스(캐나다), 키토(에콰도르), 시미엔·랄리벨라(에티오피아), 크라쿠프·비엘리치카(폴란드), 고레섬(세네갈), 메사버드(미국)가 포함돼 총 12건이다.
특히 아헨 대성당은 서기 790년~800년경 신성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샤를마뉴 대제가 궁정 예배당으로 건립한 건축물로, 1978년 독일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며 12개 '창립 멤버' 유산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굳이 신청서 접수번호를 기준으로 '1호'를 따진다면 갈라파고스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1호'라는 타이틀이 절대적 가치 서열이 아니라 등재 시점과 행정 절차의 우연한 산물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문화유산에 '순위'를 매기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망과, 유산 자체의 보편적 가치는 별개라는 점을 이 사례는 철학적으로 시사한다.
세계유산 3대 분류…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유네스코는 1972년 채택된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에 근거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지닌 유산을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의 세가지 범주로 나눈다.
2026년 3월 기준 유네스코 공식 발표에 따르면, 세계유산은 170개국 1,248곳으로 확대됐다. 이 중 77%가 문화유산(유적, 건축물,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장소)이며, 그 뒤를 이어 자연유산(생물학적 군락, 지질학적 생성물, 멸종위기 동식물 서식지), 복합유산(문화·자연유산 특징을 동시에 충족)으로 문화유산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한다.
문화유산은 다시 기념물, 건조물군, 유적지라는 세 갈래로 세분된다. 기념물은 건축물, 기념 조각·회화, 고고 유물 및 구조물, 금석문, 혈거 유적지 등 역사·예술·학문적으로 탁월한 가치를 지닌 대상을 뜻하고, 건조물군은 독립적이거나 서로 연결된 구조물들의 집합체로 역사·미술적 가치가 인정되는 유산을 가리킨다. 유적지는 인공물이나 인공과 자연이 결합된 산물, 고고 유적을 포함하는 구역으로 역사·경관·민족학·인류학적 가치를 지닌 곳을 의미한다.
자연유산은 무기적 또는 생물학적 생성물로 이뤄진 자연의 기념물로 관상·과학적 가치가 뛰어난 것, 지질학적·지문학적 생성물과 멸종위기종의 생식지·자생지, 그리고 과학·보존·자연미 관점에서 탁월한 가치를 지닌 자연지역이나 자연유적지 등 세 갈래로 나뉜다. 위키백과가 정리한 등재 기준(criteria) 체계를 보면 자연유산은 총 4개 기준(VII~X)으로 평가되는데, 여기에는 뛰어난 자연미와 지질학적 과정, 생태학적 진화 과정,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핵심 서식지 등이 포함된다.
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으로, 전체 유산 중 가장 희소한 범주에 속한다.

문화유산·자연유산·복합유산 판단의 10가지 기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등재 여부를 판단하는 세부 기준은 총 10가지(I~X)로 나뉜다.
문화유산은 창조적 걸작(I), 문화적 교류의 증거(II), 독특하거나 희귀한 문명의 증거(III), 건축·기술 양식의 대표성(IV), 전통적 인간 정주 양식(V), 역사적 사건·사상과의 연관성(VI) 등 6개 기준으로, 자연유산은 자연미(VII), 지질학적 과정(VIII), 생태학적 진화 과정(IX), 생물다양성 보전(X) 등 4개 기준으로 평가된다. 하나의 유산이 문화유산 기준과 자연유산 기준을 동시에 충족하면 복합유산으로 분류되는 구조다.
이 밖에도 유네스코는 세계유산 외에 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기록물),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 별도의 국제 등재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 '유네스코 유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점도 함께 짚어볼 만하다.
세계유산 제도의 출발점 1978년…세계자연유산 1호는 갈라파고스 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문화·자연·복합유산 각 범주에서 '1호'를 따지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1978년 등재 당시 총 12곳이 동시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등재번호(ID) 순서가 사실상의 '1호' 기준으로 통용된다.
유네스코는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한 뒤, 1977년 제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운영 지침을 마련하고 1978년 9월 5일부터 8일까지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제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처음으로 문화유산 8건, 자연유산 4건 등 총 12건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했다. 기네스 세계기록도 이 12곳을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공식 인정하고 있으며, 참조번호(reference number) 순서에 따라 갈라파고스 제도(에콰도르)를 1번으로 기록하고 있다.
등재 ID 1번을 부여받은 자연유산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제도로, 화산 활동으로 형성돼 지금도 화산활동이 이어지고 있으며 섬마다 독특한 아종이 서식해 찰스 다윈의 진화론 연구에 결정적 영향을 준 곳이다. 자연유산 등재 기준 4가지(자연미, 지질학적 과정, 생태학적 진화, 생물다양성 보전) 중 무려 4개 기준을 모두 충족하며 등재됐다는 점에서 자연유산으로서의 완결성이 매우 높은 사례로 평가된다.
같은 해 함께 등재된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ID 28번)도 1872년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상징성 덕분에 흔히 '세계자연유산 1호'로 언급되지만, 등재 ID 기준으로는 갈라파고스가 우선한다.
세계문화유산 1호를 둘러싼 두 개의 답
한국 대중매체와 블로그, 여행 콘텐츠에서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아크로폴리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1호"로 널리 소개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아크로폴리스는 1987년에야 등재됐고 등재 ID도 404번에 이르러, 등재 시점이나 번호 어느 기준으로도 '1호'라는 표현은 성립하지 않는다.
등재 ID 순서로 문화유산 1호를 따지면 에콰도르 키토 구시가지(ID 2번)가 최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건설해 '아메리카 대륙의 수도원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이 도시는 성당과 수도원이 밀집한 식민지 시대 도시경관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4개의 등재 기준 으로 볼 때 가장 완성도 높은 문화유산으로는 독일 아헨 대성당(ID 3번)이 꼽힌다. 8세기 말~9세기 초 건립돼 10세기부터 16세기까지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린 장소로서 창조적 걸작성(기준1), 문화교류(기준2), 건축양식 대표성(기준4), 역사적 사건 연관성(기준6) 등 4개 기준을 모두 충족했다.
주목할 점은 1978년 최초 등재 12건 중 복합유산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문화유산 8건, 자연유산 4건으로 구성됐을 뿐 복합유산 항목은 0건이었다. 이는 문화·자연 두 가치를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을 심사하는 기준 자체가 아직 정교화되지 않았던 초기 제도의 한계를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