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7월 19일(현지시간)부터 유럽연합(EU) 전역에서 팔리지 않은 의류와 신발, 액세서리의 소각·매립이 전면 금지됐다.
environment.ec.europa.eu, fibre2fashion.com, amp.dw.com에 따르면, 소비자가 반품한 제품도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되며, 과잉 재고를 소각하거나 매립해 온 패션 업계의 오랜 관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규정이라는 점에서 패션기업 특히 명품브랜드 기업에게는 새로운 리스크가 생긴 셈이다. 반면 지속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에 근거한 이번 조치는 순환경제를 향해 내딛은 가장 구체적인 조치라는 긍정적 평가도 나온다.
규제 골자와 적용 대상
이번 조치는 직원 수 250명, 연간 순매출액 5,000만 유로를 초과하는 대기업에 우선 적용되며, 중견기업은 4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30년 7월 19일부터 동일한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소기업과 영세기업은 원칙적으로 면제되지만, EU 집행위원회는 대기업이 이들 소기업을 통해 재고를 우회 폐기하는 사례가 확인될 경우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하고 있다. ESPR 자체는 2024년 7월 18일 발효됐으며, 올해 2월 9일 집행위가 세부 위임규정과 이행규정을 채택하면서 구체적 기준이 확정됐다.
예외적으로 폐기가 허용되는 경우는 제품이 건강·안전에 위해가 있거나, 위조품이거나,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됐거나, 자선단체가 기부를 거부한 경우 등으로 제한된다. 이런 예외를 적용한 기업은 사유별 증빙 자료를 5년간 보관해야 하고, 매년 미판매 재고 규모와 폐기 내역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대기업은 2027년 초부터 표준화된 보고 양식으로 이를 공시해야 하며, 규정을 위반할 경우 각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수치로 본 섬유 폐기 실태
유럽환경청(EEA)에 따르면 유럽에서 판매되는 섬유 제품의 4~9%가 한 번도 사용되지 못한 채 폐기되며, 연간 규모는 약 26만4,000~59만4,000톤에 달하고 이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560만 톤으로 추산된다. 국가별로도 낭비 규모가 상당한데, 프랑스에서는 연간 약 6억3,000만 유로 상당의 미판매 비식품 제품이 폐기되고, 독일에서는 온라인 반품 상품만 연간 약 2,000만 개가 버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명품업계에 특히 뼈아픈 규제…샤넬·LVMH·케링 등 대형 명품그룹, 재고관리 전면 재검토
명품업계는 그동안 브랜드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미판매 재고를 의도적으로 폐기해온 관행이 있어, 이번 규제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주 공개된 법원 자료에 따르면 샤넬은 재고 관리 전략의 일환으로 홍콩에서 수천 개의 미판매 제품을 정기적으로 폐기해온 것으로 드러났으며, 샤넬 측은 현재는 재활용 전문 법인 '라틀리에 데 마티에르'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샤넬뿐 아니라 루이비통·디올 등을 보유한 LVMH, 구찌·발렌시아가를 산하에 둔 케링과 같은 대형 명품 그룹들도 이번 규제로 재고 관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들은 모두 직원 250명, 매출 5,000만 유로 기준을 훌쩍 넘는 대기업으로 규제 즉시 적용 대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명품 브랜드들이 앞으로 재고 보유 비용을 늘리거나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방안을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번스타인의 루카 솔카 애널리스트는 "새 규정으로 브랜드들이 생산 계획과 재고 관리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라면서도, "시즌 종료 후 남는 재고를 브랜드 가치 훼손 없이 처리하는 할인 판매 운영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베인앤드컴퍼니와 이탈리아 명품산업협회 알타감마 조사에 따르면 2025년 명품 판매의 최대 40%가 이미 할인 판매를 통해 이뤄졌으며, 이번 규제로 이런 흐름이 더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패스트패션 진영도 사정권…H&M·자라 모기업 예의주시
규제의 원안 논의 단계부터 강하게 반발해온 스웨덴 H&M, 이탈리아 패션업계, 그리고 자라의 모기업인 스페인 인디텍스 등 패스트패션 대기업들도 이번 조치의 핵심 타깃으로 지목된다. 이들은 과잉 생산과 빠른 재고 순환을 사업 모델의 근간으로 삼아온 만큼, 미판매 재고를 폐기가 아닌 기부·재판매·재활용으로 처리해야 하는 데 따른 물류·비용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대중 브랜드의 경우 기부·재사용 확대가 새로운 재판매 채널이 될 여지도 있어, 명품업계보다는 충격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아웃렛·리세일 업체엔 반사이익 기대
한편 이번 규제가 오히려 새로운 사업 기회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유럽과 중국, 미국 뉴욕에서 명품 아웃렛을 운영하는 영국 밸류리테일 같은 유통업체는 명품 브랜드들의 할인 판매 확대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명품 브랜드가 EU 역외 유통망을 활용해 미판매품을 해외에서 폐기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우회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는 브랜드 이미지 훼손 리스크를 동반하는 만큼 실행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한편 국내 패션·섬유업계도 EU 수출 비중이 있는 기업을 중심으로 리사이클·리세일·기부 등 대체 처리 루트 확보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