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이 열흘 넘게 이어지는 이란 중부 사막 한가운데서, 전기도 선풍기도 없이 실내 온도를 20도대까지 낮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 비밀은 지붕 위로 우뚝 솟은 흙빛 굴뚝, 페르시아 선조들이 남긴 무동력 냉방 병기 천연 에어컨 '바드기르(Badgir)'에 있다.
2500년을 이어온 바람의 건축
바드기르는 페르시아어로 '바드(바람)'와 '기르(잡다)'가 합쳐진 말로, 영어권에서는 '윈드캐처(Windcatcher)'로 번역된다. 그 기원은 페르시아 제국이 중동 대부분을 지배했던 약 2500년 전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야즈드의 바드기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4세기에 지어졌다.
야즈드에는 현재까지도 700개에 달하는 바드기르가 남아 있으며, 이 중 1747년 지어진 돌라트아바드 정원(Dowlatabad Garden)의 바드기르는 높이 33미터(약 108피트)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윈드캐처로 꼽히면서도 완공된 이후 단 한 번도 전기를 쓰지 않고 지금까지 파빌리온 실내를 식히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이러한 독창적 적응력을 인정받아 유네스코는 2017년 야즈드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사막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자원을 지혜롭게 활용한 살아있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바람 한 줄기로 20~30도를 떨어뜨리는 3단 냉각의 비밀
바드기르의 원리는 복잡한 기계장치 없이도 물리 법칙 세 가지만으로 완성되는 정교한 열역학 시스템이다.
첫째는 '코안다 효과(Coanda effect)'로, 탑 상단에 뚫린 여러 통풍구 중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구멍으로 공기가 밀려 들어가면 반대편 구멍에서는 압력차가 발생해 실내의 뜨거운 공기가 저절로 빨려 나가는 구조다. 탑 내부는 십자형 격벽으로 나뉘어 있어 바람 방향이 어느 쪽이든 유입과 배출이 서로 섞이지 않고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설계됐다.
둘째는 밀도차를 이용한 '스택 효과(stack effect)'다. 바람이 거의 없는 날에도 실내의 더운 공기는 밀도가 낮아 자연스럽게 위로 떠오르고, 탑을 통해 대기 중으로 빠져나가면서 그 자리를 상대적으로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채운다. 이 원리는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밤에도 냉각 순환을 멈추지 않게 해주는 이중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셋째, 가장 극적인 온도 하강은 지하수로 '카나트(Qanat)'와의 결합에서 나온다. 태양이 전혀 닿지 않는 지하 수로에는 밤사이 식은 차가운 공기와 물이 고여 있는데, 바드기르가 만들어내는 압력차가 이 냉기를 서서히 위로 끌어올리면서 물 표면을 지나는 공기 중 일부가 증발하며 한 번 더 냉각되는 '증발냉각(evaporative cooling)' 과정을 거친다.
실제로 열교환 장치를 결합한 윈드캐처의 전산유체역학(CFD)·풍동 실험에서는 외부 조건에 따라 공급 공기 온도를 최대 섭씨 12도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고, 카나트와 직결된 구조에서는 실외 기온이 섭씨 43도(화씨 110도)에 이를 때도 실내 바닥면 온도가 섭씨 7~10도(화씨 45~50도) 수준까지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1978년 이란 출신 공학자 메흐디 바하도리(Mehdi Bahadori)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에 게재한 현장 측정 자료에서는, 제대로 설계된 바드기르의 성능계수(COP)가 약 28대 1로 나타나 현대식 에어컨(약 3대 1)보다 약 9배 높은 효율을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흙벽돌 자체가 낮 동안 열을 흡수해 뜨거운 태양을 차단하고 밤에 서서히 방출하는 높은 열용량을 지녔기에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고대 기술, 현대 도시 건축에도 부활?
이 고대 기술은 21세기 친환경 건축의 실험대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탄소중립 신도시 마스다르시티(Masdar City)는 높이 45미터의 대형 현대식 윈드타워를 설치해 광장 온도를 최대 섭씨 20도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상단의 루버가 바람을 잡아 좁고 그늘진 통로로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만 담당 연구진은 "냉방 효과와 에너지 절감 효과는 아직 제한적"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는데, 이는 고대 기술의 현대적 재현이 규모와 재료의 차이로 성능 재현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두바이를 비롯한 걸프 지역에서는 실용적 바드기르 대신 장식적 요소로 변용된 형태가 많아, 기능은 사라지고 미학과 정체성의 상징으로 남은 경우도 관찰된다.
과학·철학·문화가 교차하는 건축장치
바드기르는 단순한 건축 장치를 넘어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성찰하게 하는 철학적 텍스트로도 읽힌다. 전기와 화석연료 없이 오직 바람의 물리 법칙과 흙의 열용량만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는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명제를 가장 극적으로 증명한 사례이며 흰개미집의 자연 환기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이집트의 말카프(malqaf), 파키스탄의 망(mangh), 예멘 사나(Sana'a)의 타워하우스, 걸프 지역의 바르질(barjeel) 등 서로 교류가 없었던 여러 문명이 각자 독립적으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점도 이 원리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야즈드 주민들이 대대로 "바드기르 덕분에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다"고 증언하는 대목은, 기술이 반드시 복잡하고 값비싸야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통찰을 던진다.
무엇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위기가 전 지구적 화두인 지금, 2500년 전 사막의 지혜가 마스다르시티 같은 미래도시 설계의 참고서로 재호출되는 현상은 '오래된 미래'라는 역설을 그대로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