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나스닥에 상장한 SK하이닉스 ADR(미국주식예탁증서)이 265억달러(약 40조원)를 조달하며 알리바바를 넘어선 ‘외국기업 최대 IPO’ 기록을 세우고, 미국 반도체 패권 전략의 한복판으로 직행했다.
‘프리미엄 프라이싱’으로 연 미국 ADR 새 역사
SK하이닉스 ADR 공모가는 주당 149달러로 확정됐다. 이는 코스피에 상장된 SK하이닉스 보통주(한국시간 9일 종가 218만60000원)를 동일 기준으로 환산한 가격보다 약 2.9% 높은 수준으로, 기존 주가보다 비싼 이른바 ‘프리미엄 프라이싱’ 사례다. SK하이닉스 측은 “미국 IPO 역사에서 외국기업 ADR 공모가가 기존 주가를 웃도는 프리미엄 프라이싱은 사실상 첫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공모 규모는 265억달러(약 40조원)로, 2014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중국 알리바바의 250억달러를 넘어 외국기업 기준 뉴욕증시 사상 최대 IPO로 기록됐다. 공모 물량의 7배를 웃도는 수요가 몰리면서 JP모간, 뱅크오브아메리카,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등 주관사단은 약 0.5%의 수수료율을 적용받고도 2000억원 안팎의 수수료 수익을 거둘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 대형 IPO에서 통상 수수료율이 1%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모 규모 자체가 워낙 컸다는 방증이다.
뉴욕 밤 하늘 밝힌 ‘초대형 태극기’
나스닥 입성을 하루 앞둔 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JP모간 본사 상층부에는 태극기 문양 조명이 켜져 SK하이닉스의 상장을 환영하는 상징적 이벤트가 연출됐다. 공모 흥행을 이끈 주관사단이 한국 기업의 ‘빅딜’을 기념해 초대형 태극기를 띄운 셈으로, 한국 메모리 업계의 미국 자본시장 진출이 갖는 상징성과 정치·경제적 의미를 동시에 보여줬다는 평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직접 나스닥 오프닝 벨을 울리기 위해 뉴욕에 머무르며 글로벌 투자자와의 IR 및 미국 빅테크와의 협력 논의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증권가는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이 단순 자본조달을 넘어 글로벌 메모리·AI 생태계와의 연동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외 애널리스트들은 AI 서버용 HBM(고대역폭 메모리)과 D램 수요 확대를 감안할 때, 이번 자금조달이 미국 내 생산·연구개발 투자와 설비 증설로 이어질 경우 밸류에이션 재평가 여지가 크다고 분석한다.
마이크론의 2500억달러 역공, 美 상무장관의 ‘투자 압박’
같은 날 미국 메모리 경쟁사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2035년까지 미국 내 반도체 제조공장과 기술 투자를 2500억달러(약 375조원)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투자 계획에는 뉴욕주 클레이타운에 건설 중인 반도체 공장과 아이다호·버지니아주 공장 증설 비용 등이 포함돼 있으며, 마이크론은 “향후 자사 D램 생산의 40%를 미국에서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뉴욕 클레이타운 공장의 첫 콘크리트 타설도 예정보다 한 분기 이상 앞당겨 같은 날 진행돼, SK하이닉스 나스닥 상장에 맞춘 ‘견제 시그널’이라는 해석이 업계에서 나온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미국 내 메모리 생산 확대를 직접 촉구했다. 그는 “마이크론의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며 “마이크론이 앞장서고 있으니 다른 기업들도 질투를 느끼고 결국 뒤따라올 것”이라고 발언했다.
블룸버그는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SK하이닉스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시점에 나온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보조금과 규제, 안보 이슈를 지렛대로 글로벌 메모리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 확대를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반도체 40% 미국 생산’ 공약과 SK하이닉스의 전략 과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40%를 미국 내에서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는 현행 글로벌 분업 구조를 부분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으로, 마이크론의 2500억달러 투자 선언과 SK하이닉스 ADR 상장, 그리고 삼성전자의 미국 파운드리·메모리 투자 확대 논의 등이 한축으로 맞물린다.
SK하이닉스가 이번에 확보한 265억달러는 HBM·차세대 D램 증설, 미국·유럽·아시아를 아우르는 다각적인 생산기지 재편, 그리고 AI·클라우드 빅테크와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국내외에서 동시에 제기된다.
다만 SK하이닉스가 TSMC처럼 글로벌 분산 생산과 미국 전략기지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지, 그리고 미국의 안보·보조금 정책과 중국 리스크 사이에서 어느 정도까지 미국 쪽으로 ‘몸을 더 기울일지’는 향후 이사회와 주주, 정부 간 치열한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기업거버넌스 전문가들은 “나스닥 상장과 최대 1100조원에 달하는 장래 투자 계획은 이사회의 독립적 심의·공시가 기업가치를 좌우할 핵심 변수”라며, SK하이닉스가 이번 ‘40조 잭팟’을 단순 재무 이벤트가 아닌 지배구조·전략의 전환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