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아기의 머리와 산도 사이의 극도로 좁은 간격으로 인한 어려운 출산이 인간만의 특징이라는 오랜 통념이 뒤집혔다.
EurekAlert!, nature, UCL Discovery, Phys.org, Particle News, primatology에 따르면, 인간의 출산이 두개골과 산도의 극도로 좁은 간격 때문에 유독 위험하다는 ‘산과적 딜레마’ 통념이 뒤집힌 것으로, 다른 많은 영장류 종들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분만 시 산도가 매우 협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위험한 출산”이 인간 고유 현상이 아니라, 영장류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공유된 진화적 압력임을 수치로 입증했다.
29종·130개 골반·40개 두개골로 다시 쓴 산과 해부학
영국 UCL과 카탈루냐 고생물학연구소(ICP)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암컷 성체 130개 표본과 신생아 두개골 40개 표본을 토대로, 29종 영장류의 두개골–골반 적합도(cephalopelvic fit)를 3D 지오메트릭 모폴로지로 재측정했다. 기존 아돌프 슐츠(Adolph Schultz) 이후 사용돼 온 ‘인간 기준’ 계측점을 버리고, 각 종의 실제 분만 자세(머리·얼굴·후두 방향 등)에 맞는 종 특이적 랜드마크를 적용한 것이 핵심이다.
그 결과 과거 추정치에 비해 비인간 영장류의 골반 입구 크기가 평균 11% 작게 나왔고, 세 줄무늬밤원숭이와 울리원숭이 등 일부 종에서는 18% 이상 차이가 났다. 이는 “다른 영장류의 골반은 넉넉하고, 인간만 극도로 좁다”는 오랜 도식을 계측 방법론 차원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수치다.
다람쥐원숭이·부시베이비, 인간보다 더 ‘위험한 출산’
이번 논문이 가장 강하게 던지는 메시지는 “출산 시 산도 협소성은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점이다. 연구에 따르면 부시베이비, 타마린, 티티, 다람쥐원숭이 등 소형 영장류에서 신생아의 머리 크기가 어미 골반 입구보다 더 크거나, 거의 두 배에 근접하는 극단적 cephalopelvic(머리와 골반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의학·해부학 용어) 불일치가 관찰됐다.
UCL 보도자료는 “다람쥐원숭이의 경우 신생아 머리가 어미 골반 공간의 거의 두 배에 달할 수 있다”고 전하며, 인간이 아닌 종들에서도 잠재적으로 ‘난산’이 구조적으로 내재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반면 인간은 현존하는 대형 유인원 가운데 가장 좁은 cephalopelvic fit을 보이지만, 고릴라·오랑우탄 등 다른 유인원의 신생아 머리는 상대적으로 넉넉한 공간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인간은 “대형 유인원 중 가장 좁은 골반”이지만, “영장류 전체 중에서도 유일하게 극단적”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얼굴 먼저 나오는 원숭이…종별 ‘출산 전략’의 다변화
연구진은 인간 중심적 가정이었던 “모든 영장류는 머리를 먼저 내밀고 태어난다”는 전제를 폐기하면서, 젤라다원숭이처럼 주둥이가 돌출된 종에서는 얼굴·후두 방향 분만이 일반적이라는 점을 수치에 반영했다. 이 수정만으로도 과거 데이터에서 과대평가됐던 골반 여유가 상당 부분 사라졌고, 실제 분만 동선은 인간보다 더 타이트한 종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부시베이비처럼 골반뼈가 성체가 되어도 완전히 유합되지 않아 분만 시 골반이 벌어질 수 있는 구조, 붉은털원숭이(레서스 마카크) 암컷의 골반 유합 시점이 수컷보다 늦어 출산기 유연성이 확보되는 구조 등, 종별 ‘출산 대응 전략’이 정량적으로 확인됐다. 인간의 경우 직립보행과 내상(內傷) 위험 때문에 이런 극단적 골반 이완을 사용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각 종은 서로 다른 해부학적 타협을 택해 온 셈이다.
“산과적 딜레마”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이번 Nature Ecology & Evolution 논문은 셔우드 워시번이 1960년대 제시한 ‘산과적 딜레마’ - 직립보행으로 인한 좁은 골반과 대뇌 확대가 결합해 인간에게만 위험한 출산을 낳았다는 가설 - 에 대해 “딜레마 자체는 영장류 전반의 현상”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안한다. 이는 2026년 5월 빈 대학교 연구진이 Biological Reviews에 발표한 “태반 포유류 전반에서 난산이 흔하다”는 메타 분석 결과와도 맞물린다.
빈 대학 연구는 가축과 야생 포유류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데이터에서, 일부 종에서는 난산과 산모·신생아 사망률이 현대 의료 접근성이 낮은 인류 집단(예: 일부 수렵채집 사회)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UCL–ICP 연구가 영장류 내에서의 산과적 압력을 정밀 해부학 데이터로 보여준다면, 빈 대학 연구는 포유류 전체에서 난산이 자연선택에도 불구하고 상당 수준 유지되는 “진화적 절벽(edge) 타협”임을 강조한 셈이다.
인간 출산, ‘특이’가 아니라 ‘연속선 위의 한 지점’
결국 이번 연구가 주는 전략적 인사이트는 명확하다. 인간 출산은 대형 유인원 중 가장 협소한 골반과 큰 두개골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해 있어 의학적 개입이 없을 경우 위험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딜레마의 구조 자체는 영장류·태반 포유류가 공유하는 더 넓은 진화적 문제의 한 변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만 특별하다’는 진화 서사를 상대화하고, 산과 의료 정책과 출산 문화 논의에서도 인간–자연의 관계를 보다 냉정하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난산은 인류 문명과 직립보행의 대가이기 이전에, 다수 종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보편적 생명 탄생의 리스크라는 점을, 29종 영장류와 수십 종 포유류의 객관적 숫자가 일깨워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