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인공지능(AI) 칩 랠리의 급랭이 월가와 아시아 시장 곳곳에 숨겨져 있던 2,700억 달러 규모 레버리지 투기 구조를 한꺼번에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단기간 급등을 뒷받침했던 레버리지 ETF, 구조화 상품, 가상자산 연계 신용공학이 동시에 되돌림 국면에 들어가며, ‘모멘텀 위에 세워진 시장’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AI 칩 폭락이 드러낸 2,700억 달러 투기 머신 '기능'
bloomberg, Bitcoin Magazine, MEXC, letsdatascience, economictimes, Investing.com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이번 조정 국면을 계기로 AI 칩 관련 레버리지 ETF와 각종 구조화 상품을 합친 투기성 포지션 규모가 약 2,700억 달러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해당 생태계는 미국과 아시아의 반도체·테크주를 동시에 묶어 레버리지 노출을 키워온 만큼, 매수·매도 모두에서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투기 머신’으로 기능해 왔다는 분석이다.
이번 급락은 그 머신이 역방향으로 작동할 때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 보여준 사례로, 월가 일부에서는 “AI 버블의 첫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발 레버리지 ETF 쇼크
이번 조정의 방아쇠는 한국발 레버리지 ETF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는 5월 말 출시 당시 약 30억 달러 수준이던 순자산이 불과 한 달 만에 500억 달러에 육박하는 규모로 불어났다. 블룸버그와 이코노믹 타임스 등에 따르면 이 자금의 상당 부분이 개인 투자자 자금으로, 코스피는 최근 고점 대비 최대 10%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트레이더들이 ‘숏 감마’라고 부르는 레버리지 ETF 구조상 가격이 오를 때는 기계적으로 매수를, 내릴 때는 기계적으로 매도를 확대해야 해 하락 구간에서 추가 매도 압력이 중첩되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한국 금융당국도 뒤늦게 위험성을 인정했다. 블룸버그는 금융감독당국 고위 관계자가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승인을 두고 “출시에 반대하는 극단적 조치를 취했어야 했던 것 아니냐”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레버리지 ETF가 단순 파생상품이 아니라, AI 서사를 등에 업은 개인투자자 레버리지 베팅의 핵심 통로가 되면서 시스템 리스크 논쟁이 재점화된 셈이다.
미국 나스닥·AI 칩에 번진 충격
아시아에서 촉발된 ‘칩 쇼크’는 곧바로 뉴욕으로 번졌다. 블룸버그 마켓 랩에 따르면 나스닥 100 지수는 한때 3% 안팎 하락했고, 엔비디아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ARM 등 대표 AI 칩 종목들이 낙폭을 주도했다. 미국 증시에서 나스닥 100을 추종하는 약 5,000억 달러 규모 ETF까지 동반 조정을 겪으면서, 한국발 레버리지 청산이 글로벌 AI 칩 밸류에이션 조정으로 확산되는 모양새가 나타났다.
다만 마이크론의 ‘블로아웃(예상치 상회)’ 실적 발표 이후 시간외에서 나스닥 100 ETF가 약 1.5% 반등하는 등 일부 되돌림이 나타나면서, 당분간 실적 모멘텀과 레버리지 청산 압력이 맞붙는 국면이 이어질 전망이다.
세일러 STRC와 비트코인 자금사슬의 균열
주식시장 밖에서도 레버리지 사슬이 흔들리고 있다. 비트코인 최대 상장사 재무모델로 주목받아온 마이클 세일러의 스트래티지(Strategy)의 영구 우선주 STRC가 대표적이다. STRC는 연 11.5%의 변동금리 배당을 지급하는 월지급(또는 반월지급) 우선주로, 출시 9개월도 안 돼 약 85억 달러 규모로 성장하며 세일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신용 상품”이라 자평한 상품이다.
비트코인 관련 매체와 애널리스트 보고서에 따르면 STRC는 2026년 들어 약 7만7,000 BTC 매입을 금융공학적으로 뒷받침한 핵심 자금 조달 수단으로, 스트래티지의 올해 추가 자본조달 110억 달러 중 상당 부분이 STRC를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비트코인이 6만 달러 선으로 밀리면서 STRC 가격이 액면가 100달러 대비 구조적으로 할인 거래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부 매체는 장중 83달러 아래까지 떨어진 사례를 전하면서, 고배당을 감안해도 가격 디스카운트가 심화될 경우 신규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 여력이 크게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STRC는 전통 신용시장의 채권·우선주를 ‘디지털 크레딧’으로 대체하겠다는 세일러의 야심 찬 금융공학 프로젝트이기도 했던 만큼, 레버리지 칩 쇼크와 맞물린 STRC 가격 조정은 가상자산 시장의 레버리지 사슬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란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모멘텀·레버리지·리테일이 만든 ‘AI 버블 테스트’
골드만삭스는 이달 초 보고서에서 미국 내 AI 관련 레버리지 ETF 자산이 4월 390억 달러에서 5월 840억 달러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 한국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우주·가상자산 연계 구조화 상품, STRC와 같은 고배당 디지털 크레딧까지 더해지며, AI 트레이드 주변에 형성된 레버리지·모멘텀 생태계가 이미 2,700억 달러 규모 투기 머신으로 진화했다는 게 블룸버그와 이코노믹 타임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이번 칩 쇼크가 일시적 조정에 그칠지, 아니면 레버리지 사슬 전반의 강제 청산을 촉발하는 ‘버블 붕괴의 전주곡’이 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지만,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는 확인됐다. AI와 비트코인, 그리고 레버리지 ETF와 구조화 상품으로 이어진 글로벌 자본시장은 이제 단순한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복잡한 레버리지와 모멘텀 공학 위에 세워진 고위험 시스템이라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