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한국 정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AI 수요 폭증을 계기로 반도체 투자·주주환원·보상 체계를 동시에 손질하며 ‘초대형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러나 코스피 10% 폭락, 양사 주가 12% 급락이라는 쇼크 속에서 이 시도가 ‘체질개선의 분기점’이 될지, ‘고점 방어전’으로 끝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90조원 자사주 매입, 보상·방어·밸류에이션 3중 포석
연합뉴스·로이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향후 3년간 약 90조원(약 586억~650억 달러 규모로 보도 기관별 환율 차이 존재)의 자사주를 단계적으로 매입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다. 이 프로그램이 이르면 다음 달 이사회 결의를 거쳐 시작되며, 총 매입 물량은 약 2억9000만주 수준이 될 것이란 보도도 나왔다. 이 액수는 지난 10년간 삼성전자가 집행한 자사주 매입 총액의 약 세 배에 달하며, 회사 역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자사주 매입의 1차 목적은 최근 임금·단체협상에서 합의된 ‘성과 연동 스톡 보너스’ 지급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특히 AI 호황으로 늘어난 영업이익을 임직원과 주주에게 직접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점에서,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메모리·AI 반도체 시장에서 ‘보상 체계 리셋’의 의미를 가진다.
동시에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이익(EPS)을 끌어올리고, 최근 글로벌 AI주 조정 속에서 삼성전자 주가의 하방을 방어하려는 의도도 뚜렷하다.
AI가 10년 앞당긴 반도체 클러스터, 300~400조원 베팅
투자 측면에서는 ‘속도전’이 전면화됐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보좌관은 패널 토론에서 “AI 산업으로 인한 반도체 수요가 기하급수적이고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당초 계획보다 10년 이상 앞당겨 신규 팹을 완공해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양사가 진행 중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공정 일정 역시 크게 당겨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보도에 따르면 정부와 양사는 광주·전남을 포함한 호남권과 충청권을 아우르는 신규 대규모 반도체 벨트를 협의 중이며, 이 안에는 메모리 생산 팹과 첨단 패키징 공장이 모두 포함된다. 현재 첨단 팹 한 기당 건설비는 최소 60조원 수준으로 추산되며, 계획대로 복수의 팹과 패키징 라인이 들어설 경우 삼성·SK 합산 투자 규모는 300조~400조원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SK그룹은 오는 6월 30일 광주 반도체 클러스터 세부 청사진을 공개할 예정이며, 삼성전자도 해당 지역을 포함한 남부권에 대한 중장기 팹 구축 계획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피 10% 급락과 ‘AI 버블’ 논쟁, 정책·기업의 대응 시험대
이같은 초대형 계획은 역설적으로 ‘AI 랠리의 부작용’ 위에서 발표됐다. CNN과 현지 외신에 따르면, 코스피는 최근 글로벌 AI 기술주 조정이 가속화되던 23일 장중 10%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2% 이상 빠지며 지수를 끌어내렸는데, 두 종목이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쏠림 구조’가 충격을 증폭시켰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코스피는 AI 반도체 랠리에 힘입어 사상 처음 8000선, 9000선을 돌파하며 올해 주요국 증시 중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급락으로 ‘AI 프리미엄’이 과도했는지, 아니면 일시적 과민 반응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됐다. 정부가 삼성·SK와 함께 대규모 설비 투자와 지역 클러스터 계획을 앞당기고,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자사주 매입으로 신뢰 회복에 나서는 흐름은 결국 “AI 버블이 아니라 구조적 수요”라는 ‘정책+기업 합동 베팅’으로 해석할 수 있다.
‘AI 코리아’의 기회와 리스크, 결국 수익성·사이클 관리가 관건
국내외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은 2022년 411억 달러에서 2028년 1,330억 달러 수준으로 세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 중심 AI 메모리 투자 계획을 앞당기고 있으며, SK그룹은 2028년까지 103조원 투자와 2026년까지 80조원의 AI·반도체·주주환원 재원 확보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추세를 감안하면 용인·광주·충청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클러스터는 단순한 국내 증설이 아니라, 글로벌 AI 공급망 재편 속에서 ‘메모리·패키징 허브’로의 도약을 노린 전략적 인프라 구축이다.
이번 90조 자사주 매입과 300~400조 설비 투자 논의는 모두 ‘장기 수익성’이라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AI 수요가 예상대로 구조적 성장 경로를 탈 경우 한국은 메모리 슈퍼사이클과 AI 패키징 허브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지만, 수요·단가 사이클이 흔들릴 경우 막대한 설비 투자와 인건비, 주주환원 부담이 오히려 수익성을 잠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I 랠리의 거품 논쟁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삼성과 SK가 선택한 ‘자사주+클러스터’ 병행 카드는 한국 반도체 산업과 자본시장의 향후 10년을 가를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