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이탈리아 로마 외곽 카스텔 디 구이도(Castel di Guido)에서 불법 도굴 수사 과정에 우연히 드러난 로마 황제 시대 별장이 제국 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생생히 복원해주고 있다.
라치오 주 소유 농지에서 시작된 도굴 사건이 국가 차원의 긴급 발굴로 전환되면서,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이 드나들었다고 전해지는 로리움(Lorium) 일대의 숨겨진 핵심 거점이 구체적 유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불법 도굴이 연 ‘황제 별장’ 수사 드라마
발단은 2026년 2월 16일, 로마 수도경찰이 라치오 주 소유 토지에서 진행 중이던 중장비 불법 굴착을 문화재 당국에 신고하면서였다. 이튿날 카라비니에리 문화유산보호대가 투입됐고, 23일까지 현장에는 포토트랩과 감시 장비가 설치되며 사실상 ‘범죄 현장 보존선’이 쳐졌다.
도굴범들은 이미 톱니형 버킷을 단 굴착기를 동원해 유구 층에 깊은 도랑을 낸 상태였고, 문화재청은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긴급 발굴 체제로 전환해 정식 학술 조사를 확대했다.
2m급 벽과 모자이크가 말해주는 ‘클래스’
문화재청 고고학자 알레시아 콘티노가 총괄한 발굴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것은 임플루비움(빗물 집수조)을 중심으로 한 아트리움(중앙 홀)이었다. 바닥 전체를 덮은 흑백 모자이크는 기하학·식물 문양 위에 다색 대리석 조각을 끼워 넣은 고급 사양으로, 일부 공간에서는 최대 1.5m 높이까지 보존된 벽체와 붉은 하단 띠, 노랑·파랑 패널 흔적이 함께 확인됐다.
홀 주변 최소 4개 방에서 서로 다른 패턴의 모자이크 바닥이 연속적으로 확인된 점은 이 공간이 단순 농가가 아니라 다수의 응접·거주 공간을 갖춘 상류층 레지던스였음을 시사한다.
실바누스일까, 이상화된 목동일까…80cm 대리석상의 정체
언론의 관심을 가장 끈 유물은 높이 약 80cm의 백색 대리석 조각상으로, 짧은 튜닉을 입은 수염 난 남성이 새와 과일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상은 임플루비움 수조 안에서 발견됐으며, 일부 매체는 남성이 송아지나 새끼돼지를 안고 있었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농경·목축을 관장하는 실바누스 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실라누스(디오니소스의 동행 신), 이상화된 목동상 등 다른 해석도 병존하고 있다.
안토니누스 왕조 리조트 벨트의 퍼즐 조각
이번 유적은 고대 로리움 영역, 즉 오늘날 카스텔 디 구이도 농지 일대에서 확인됐으며, 이 구역은 이미 문헌상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황제 장원으로 기록돼 있다. 고고학자들은 빌라가 대체로 서기 1세기 초반에 조성돼 3세기 무렵 사용이 중단된 것으로 보며, 일부 매체는 건축 시기를 1세기 후반으로 좁히기도 한다.
하드리아누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역시 이 로리움 일대를 자주 찾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번 발굴은 이른바 ‘안토니누스 왕조 별장 벨트’의 실체를 공간 데이터로 보강해준 사례로 평가된다.
6월 20일, 1km 도보로 들어가는 “현장 공개”
이탈리아 문화부와 로마 특별 문화재청은 6월 20일 하루 동안 대중에게 현장을 개방하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예고했다. 사전 예약은 이벤트브라이트를 통해 진행되며, 1.5~2시간짜리 투어 코스 약 1km를 도보로 이동하면서 모자이크와 복원 중인 구조물을 관람하도록 설계됐다. 알레산드로 줄리 문화부 장관은 “며칠 만에 불법 굴착을 중단시키고, 고고학 지역을 보호했으며, 황제 시대의 화려한 빌라를 세상에 드러냈다”며 이번 작전을 “모범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함의… ‘도굴과 공권력, 그리고 공공의 접근권’
이번 사건은 도심에서 불과 19km 떨어진 농지에서 중장비 도굴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지정학적·행정적 리스크를 동시에 드러낸다. 동시에, 신고 접수 후 1주일 안에 현장 봉쇄와 학술 발굴이 이어지고, 4개월 만에 대중 공개 일정까지 잡혔다는 점에서 문화재 행정의 ‘스피드’와 ‘개방성’이 수치로 확인된 사례이기도 하다.
도굴이 없었다면 유적은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번 케이스는 “범죄가 촉발한 공익적 발견”이라는 역설적 교훈도 함께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