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인공지능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언어 장벽을 빠르게 허물고 난 뒤 이제는 인간과 동물 간 소통이라는, 오랫동안 공상과학의 영역이었던 마지막 프론티어를 향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2020년대 중반 들어 음성·영상 인식, 대규모 언어모델, 센서 기술이 결합된 ‘AI 펫 번역기’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등장하면서 ‘내 반려견, 반려묘와 대화하는 시대’라는 상상이 구체적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AI가 찍은 다음 타깃, ‘동물의 언어’
이 흐름의 최전선에 선 기기 가운데 하나가 중국 스타트업이 내놓은 AI 반려동물 번역기 ‘페티챗(PettiChat)’이다. 짖음·울음소리뿐 아니라 귀, 꼬리, 자세 등 행동 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해 반려동물의 상태와 의도를 사람의 언어로 ‘실시간 번역’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말을 다시 동물이 이해하기 쉬운 소리로 변환하는 양방향 소통을 표방한다.
‘페티챗’이 보여준 기술 스펙과 크라우드펀딩 성적
페티챗 개발사는 반려동물 음성·행동 데이터 100만 건 이상과 3,200시간 이상의 동영상 데이터를 학습시킨 전용 AI 모델 ‘PETTI’를 기반으로 번역 정확도 94.6%, 평균 응답 시간 1.2초라는 수치를 내세운다. 동물의 생물학적 신호를 토큰으로 변환해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이며, 착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특정 개체의 습관을 반영하는 어댑티브 러닝 기능으로 ‘개별 반려동물 맞춤 번역’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시장 반응도 적지 않다. 이 기기는 홍콩 기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목표를 크게 웃도는 약 13만 3,408 홍콩 달러이상을 모았고, 얼리버드 종료 후 약 98달러(약 31만원) 선에서 판매가 책정됐다. 일회성 구매 방식에 월 구독료는 없지만, 크라우드펀딩 특성상 향후 펌웨어 업데이트와 사후 지원이 어느 수준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투자자뿐 아니라 잠재적 소비자들도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
‘양방향 실시간 번역’이라는 서사와 그 실제
페티챗의 콘셉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양방향 실시간 번역’이다. 목걸이형 디바이스에 내장된 마이크와 모션 센서가 짖음·울음과 움직임을 포착하고, 이를 클라우드 상의 대규모 언어모델이 해석해 인간 언어로 변환한다는 구조다. 대규모 언어모델로는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큐웬(Qwen)’ 계열 모델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사람의 발화를 기기가 다시 동물이 본능적으로 인식하기 쉬운 패턴의 소리로 바꾸어 재생함으로써 ‘진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개발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대화’는 어디까지나 통계적 상관관계에 기반해 특정 상황에서 특정 패턴의 소리가 특정 행동·상태와 자주 동반된다는 사실을 확률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에 가깝다. 인간 언어 번역에서처럼 “동일한 의미를 다른 상징 체계로 치환한다”는 엄밀한 의미의 번역이라기보다, ‘상황-신호-반응’ 패턴을 고도화된 형태로 매핑하는 기술이라는 점에서 과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일본 ‘바우링구얼’에서 최신 AI 디바이스까지
반려동물 번역기 자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2000년대 초 일본에서 출시된 ‘바우링구얼(BowLingual)’과 ‘미야오링구얼(MeowLingual)’이 개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감정별 문장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장난감 형태로 인기를 끈 바 있다. 당시 기술은 주파수·음압 등 몇 가지 음향 특성을 기반으로 ‘배고픔’, ‘불안’, ‘기쁨’ 등 제한적인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실시간성이나 양방향 소통과는 거리가 있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 앱과 웨어러블을 결합한 다양한 서비스가 등장했다. 예를 들어 강아지·고양이의 짖음과 울음, 사진을 분석해 욕구와 감정 상태를 추정하는 ‘Petlifly’ 같은 앱이 iOS·안드로이드에서 서비스되고 있으며, 국내외에서 여러 스타트업이 반려동물 울음소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AI 기반 욕구·감정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오디오 데이터 분석에 초점을 맞춰, 영상·동작 정보까지 통합하는 멀티모달 방식의 제품은 아직 소수에 그친다.
연구실 밖으로 나온 ‘동물 언어’ 프로젝트들
산업 현장의 기기보다 한 발 앞서가는 것은 연구 현장이다. 국제 비영리 연구단체 CETI(Cetacean Translation Initiative)는 2020년부터 향유고래의 소리를 AI와 통계 분석으로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Earth Species Project’는 다양한 종의 동물 음성을 분석해, 인간 언어와 무관한 독립된 의미 구조를 찾는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다. 또 다른 스타트업 ‘Zoolingua’는 개의 짖음과 행동을 해석하는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반려견의 감정·욕구를 분류하는 알고리즘을 실험하고 있다.
중국 대형 테크기업도 이 흐름에 합류했다. 중국 최대 검색엔진 업체 바이두는 동물의 울음소리와 행동을 인간 언어로 번역하는 AI 시스템 관련 특허를 출원했으며, 아직 상용화 단계는 아니지만 ‘동물-인간 번역 AI’에 대한 대형 플랫폼의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멀리 보면 펫 시장뿐 아니라 농축산, 야생동물 보호, 해양 생태 모니터링까지 포괄하는 ‘동물 데이터 경제’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펫 테크’ 붐과 시장 수치가 말해주는 것
반려동물 번역기를 둘러싼 시장적 배경에는 ‘펫 테크(Pet Tech)’라는 거대한 트렌드가 있다. 글로벌 컨설팅·리서치 기관들은 반려동물 관련 디지털 기기·서비스 시장 규모가 2020년대 중반까지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해 왔고, 실제로 GPS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 목걸이, 활동량·심박수를 측정하는 웨어러블, 자동 급식기, 헬스케어 모니터링 AI 서비스 등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통신·플랫폼 기업들이 반려동물용 AI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예컨대 SK텔레콤은 ‘에이닷(A.) 펫’ 서비스를 통해 반려동물 사진 한 장으로 기분을 분석하고 하루 일기를 작성하는 기능, 반려동물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구독형 멤버십 모델 등을 선보이며, ‘사람의 AI’에서 ‘반려동물의 AI’로 커버리지를 넓히고 있다. 이런 흐름과 비교해 보면, 페티챗은 ‘번역’을 전면에 내세운 상징적 디바이스로서 펫 테크 시장을 강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과학이 말해주는 가능성과 ‘한계선’
동물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AI 이전부터 이미 풍부한 사례를 쌓아왔다. 프레리도그가 포식자의 종류와 크기에 따라 다른 경고음을 내고, 침팬지가 특정 소리로 동료에게 음식 위치를 알리며, 돌고래가 복잡한 음파 신호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는 연구 결과들은 ‘동물도 언어에 가까운 체계를 가진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왔다. 여기에 대규모 언어모델과 멀티모달 AI가 더해지며, 특정 종의 소리·행동 패턴과 의미 사이의 통계적 구조를 해석하는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동시에 냉정한 한계도 지적한다. AI 기반 동물 번역 연구에 필요한 것은 방대한 양의 고품질 데이터인데, 같은 종이라도 개체별로 소리·행동이 크게 달라 일반화된 모델을 만들기가 쉽지 않고, 자연환경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는 주변 소음과 복잡한 맥락 때문에 라벨링이 어렵다.
결국 현재의 AI 펫 번역기는 ‘감정·욕구를 세밀하게 번역한다’기보다, 사람에게 익숙한 카테고리(배고픔, 불안, 놀이 욕구, 경계심 등)로 동물의 상태를 분류하는 고도화된 분류기쯤으로 보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하다.
윤리·철학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무엇을 번역하는가’
인간과 동물 사이의 ‘언어 정복’이 눈앞에 온 듯한 기술적 서사와 달리, 철학자는 다른 유형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동물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이해하기 쉽게 동물의 신호를 인간 중심 카테고리로 재구성하는 것일 뿐인가. 예컨대 고양이가 울 때마다 “밥 줘”라고 번역하는 기기가 농담처럼 회자되는 이유는, 동물의 다양한 감정과 맥락을 인간이 이미 가진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경향을 풍자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철학적 쟁점은 동물의 ‘동의’ 문제다. 웨어러블 번역기를 통해 수집되는 음성·행동 데이터는 반려인의 서비스 편의를 넘어, 향후 광고·상품 추천·보험·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 인간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데이터 수집에는 엄격한 윤리 기준이 적용되지만, 동물 데이터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국제 규범이 부재하다. ‘동물 언어’를 해석하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동물을 단순한 데이터 자원으로 볼 것인지, 하나의 주체로서 존중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펫 번역기는 인간-동물-기계라는 새로운 삼각관계 속에서, 돌봄과 책임의 재구성을 요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기술을 통해 ‘반려동물을 더 잘 이해하는 보호자’가 되고자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려동물의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설계할 것이다. 기술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검증과 더불어, ‘우리는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언어 정복’ 서사의 다음 챕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언어가 상당 부분 정복된 시대에, 인간과 동물 사이의 언어는 기술기업과 연구기관에게 남은 새로운 성장 스토리이자 도전 과제다. 페티챗 같은 디바이스는 이 서사에 구체적 얼굴을 부여하는 상징적 아이콘이지만, 동시에 그 한계와 위험까지 함께 드러내는 실험 도구이기도 하다.
AI가 동물의 마음을 완벽히 읽을 수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인간이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다시 쓰는 과정에서, 언어 혹은 그 언어를 매개하는 기술은 점점 더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