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비트코인 채굴 업계가 사상 최악의 마진 압박 속에 집단 ‘항복’ 국면으로 진입하면서, 해시파워의 상당 부분이 AI 데이터센터 인프라로 빠르게 이탈하는 구조적 전환이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과거 약세장마다 반복되던 ‘채굴자 항복 → 강제매도 → 바닥 형성’이라는 전통적 사이클 플레이북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마진 5%도 안 남은 채굴자들
MEXC, BingxOfficial, forklog.media, Let's Data Science, CoinMarketCap에 따르면, 디지털 자산 운용사 Capriole Investments의 찰스 에드워즈는 최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평균 생산 원가를 약 6만~6만3,500달러 수준으로 추정하며, “현재 가격대는 채굴자들이 사실상 손익분기점에서 버티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에드워즈는 전기료만 반영한 ‘전력 비용 바닥’을 약 5만달러로 제시하며, 채굴 수익성이 1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온체인 분석업체 CryptoQuant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수수료 비중이 3%대까지 떨어지며 채굴자 보상이 “역사적 저평가 구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거시 지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CoinShares의 ‘Bitcoin Mining Report Q1 2026’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기준 비트코인 1개당 가중 평균 현금원가는 약 8만달러에 달했고, 2026년 1분기 해시프라이스(hash price)는 PH/s/일 기준 28~30달러 수준까지 추락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채굴 장비의 15~20%가 손익분기점 이하에서 가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고비용 사업자의 항복이 상반기 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수료 버블 붕괴…‘온체인 경제’의 한계 노출
2023년 오디널스(Ordinals)·룬즈(Runes) 열풍 당시 트랜잭션 수수료가 폭등하며 채굴자들에게 ‘수수료 황금기’를 열었지만, 해당 버블이 꺼진 뒤 수수료 수익은 “자유 낙하” 수준의 조정을 겪고 있다.
CryptoQuant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하반기 이후 일부 구간에서 채굴자 수익 중 수수료 비중은 3.2%까지 떨어져, 반감기 직전 ‘온체인 과열기’와는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시장조사업체 The Block와 다수 리서치 보고서는 “온체인 활동만으로 반감 이후 보상 축소를 상쇄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현실이 드러난 셈”이라고 지적한다.
“광산 접는 대신 데이터센터로 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사이클에서 채굴자들의 ‘항복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기료조차 감당 못하는 사업자가 채굴기를 끄고 보유 비트코인을 덤핑하며 시장 저점을 형성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그러나 CoinShares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기준 상장 채굴사들은 총 12만1,516 BTC(약 86억달러)를 보유한 상태에서, 재무 여건이 취약한 기업일수록 이 물량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AI·HPC(고성능 컴퓨팅) 사업 전환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캐패시티와 전력 인프라를 보유한 대형 채굴사는 이미 ‘AI 특수’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코어 사이언티픽(Core Scientific)은 2026년 1분기에만 비트코인 2,385개를 2억830만달러에 매각해 AI 데이터센터 전환을 위한 설비 투자에 투입했으며, 같은 분기 총매출은 1억1,520만달러로 전년 동기 7,950만달러에서 45% 급증했다. 이 가운데 AI 코로케이션·호스팅 매출은 8.6백만달러에서 7,750만달러로 9배 이상 폭증한 반면, 자체 채굴 매출은 6,720만달러에서 3,010만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리서치기관 번스타인(Bernstein)은 최근 보고서에서 상장 채굴사들이 이미 700억~900억달러 규모의 AI/HPC 계약을 공시했으며, 2026년 말이면 이들 기업 매출의 최대 70%가 AI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Capriole의 에드워즈 역시 “현재 상장 채굴사의 평균 수익 구조에서 비트코인 비중은 약 90%지만, 2~3년 안에 30%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통적 ‘채굴자 항복 = 매집 타이밍’ 공식, 무너지나
온체인 투자자들은 이른바 ‘채굴자 항복(miner capitulation)’ 신호가 과거 약세장마다 비트코인 장기 매집 구간을 정확히 가리켜 왔다고 믿는다. 해시리본(Hash Ribbons) 지표를 만들어낸 에드워즈도 그간 채굴자 항복 구간을 이상적인 장기 매수 기회로 제시해왔다. 익명 트레이더 ‘Killa’는 최근 SNS에서 “지금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완벽한 매집 타이밍을 알렸던 채굴자 항복 신호가 다시 켜진 시점”이라고 주장했다는 보도도 잇따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변수가 하나 더 붙었다. 채굴자들이 단순히 파산·청산되는 대신, 비트코인 보유분을 팔아 AI 인프라 기업으로 ‘탈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찰스 슈왑(Charles Schwab) 디지털 자산팀과 다수 월가 리포트는 “채굴 수익원 다각화는 단기적으로는 매도 압력을 키우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구조적 리스크를 오히려 낮출 수 있다”고 평가한다. 반면 에드워즈는 “AI로의 급격한 전환이 장기적으로 네트워크 보안을 약화시키고, 비트코인 채굴이 ‘비주력 사업’으로 밀려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결국 이번 사이클에서 ‘채굴자 항복 = 바닥’이라는 과거 공식은 상당 부분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채굴자들이 캡튤레이션 국면에서 더 이상 순수한 매도 주체가 아니라, AI 인프라 플레이어로 재탄생하면서 시장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투자자 입장에선 온체인 지표만이 아니라, 상장 채굴사의 AI 매출 비중·설비 전환 속도·해시레이트 장기 추세를 함께 읽어야 하는, 완전히 새로운 ‘사이클 판도’에 진입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