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한국 토익(TOEIC) 시험장에서 AI 스마트 글라스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처음 적발되면서, 전 세계 시험장에서 ‘안경·귀·손목’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기술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토익·학교·수능까지 번지는 ‘AI 안경 경보’
지난 5월 10일과 31일 치러진 정기 토익 시험에서 응시자 2명이 AI 글라스를 착용한 채 부정행위를 시도하다 감독관에 적발됐다. 감독관은 일반 안경보다 다리(템플)가 두껍고 형태가 부자연스럽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 시험 종료 후 기기 확인에 나섰고, 최종적으로 부정행위가 인정돼 두 사람의 성적은 전부 무효 처리됐으며 향후 4년간 토익 응시가 금지됐다. YBM 한국토익위원회는 최근 감독관 대상 AI 글라스 식별 교육을 강화하고, 시험 공고문에도 관련 주의를 명시하기 시작했다.
이보다 앞서 국가기술자격시험에서도 생성형 AI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글라스를 활용한 부정행위 시도가 적발됐고, 인천 지역에서는 한 응시자가 시험 도중 스마트폰으로 챗GPT를 사용하다 적발되는 등 ‘AI 커닝’ 사례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6월 11일 자로 각급 학교에 발송한 ‘2026학년도 1학기 기말고사 학업성적관리 유의사항’ 공문에서 AI 안경을 반입 금지 물품에 명시하고, 시험 중 소지 시 곧바로 부정행위로 처리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교육청은 “안경 다리가 지나치게 두껍거나 시험 중 안경 다리를 자주 만지는 등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이는 수험생을 예의주시하고, 의심스러울 경우 시험 종료 직후 확인하라”고 감독관들에게 주문했다.
교육부는 오는 11월 치러질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도 이미 전자기기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지만, AI 안경을 금지 품목에 따로 명시하고 감독관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일본 “AI 안경 쓰면 상위 5%”…렌탈시장까지 호황
AI 스마트 안경을 활용한 시험 부정행위는 이미 중국 대학가에서 하나의 ‘시장’이 된 수준이다. IT 전문매체 ‘레스트 오브 월드(Rest of World)’에 따르면, 중국 일부 대학생들은 로킷(Rokid), 쿼크(Quark), 메타 계열 AI 안경 등을 AI와 연결해 시험 문제를 스캔하면 곧바로 화면에 해석과 정답을 띄워주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다. 중국 허베이성의 한 여대생은 “이 안경을 쓰고 시험을 봤더니 점수가 평균 72점인 반에서 92.5점을 받았다”고 증언했는데, 이는 같은 반 평균을 20점 이상 웃도는 수치다.
레스트 오브 월드에 등장하는 한 중국 사업자는 AI 안경을 하루 6~12달러에 대여하며 4개월 동안 1,000명 이상에게 빌려줬다고 말했다. 이 중 상당수가 영어·수학 시험을 치르는 대학생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대학·공무원·수능격 시험에서 스마트 안경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외형이 일반 안경과 비슷해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에서도 와세다대 입시에서 스마트 안경을 이용해 화학 시험지를 촬영한 뒤 SNS로 외부에 전송해 유료 과외진에게서 정답을 받아본 사례가 2024년 적발됐다. 같은 해에는 스마트 안경과 초소형 마이크를 결합한 조직적 토익 대리시험 사건이 드러나 수백 명의 성적이 한꺼번에 무효 처리되면서, 일본 교육계에 “AI 안경 한 개가 시험 제도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됐다.
영국·미국, 스마트폰 다음 타깃은 ‘스마트 안경·펜·이어피스’
스마트폰을 둘러싼 통제에 어느 정도 성공한 영국은 이제 스마트 안경과 초소형 이어피스를 ‘다음 세대 컨닝 도구’로 지목하고 있다. 영국 시험 규제기관 오프콸(Ofqual)에 따르면, 2025년 여름 GCSE·A레벨 등 주요 시험에서 적발된 부정행위 7,615건 가운데 2,225건(44.3%)이 휴대전화와 기타 스마트 기기 관련이었다. 이는 2024년(2,140건, 41.5%)보다 비중과 절대 건수 모두 증가한 수치다.
이언 보컴 Ofqual 최고규제책임자는 2026년 6월 공개된 팟캐스트와 언론 인터뷰에서 “스마트 안경과 초소형 이어폰, 내부에 미니 화면이 들어간 펜까지 시험 공정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시험 감독관들에게 “이제는 학생 주머니보다 얼굴과 귀, 손목을 더 주의 깊게 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들 기기를 이용하다 적발되면 최악의 경우 모든 A레벨 성적을 잃을 수 있다”며 ‘미래가 날아갈 수 있다(future‑altering)’는 강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영국 대학가도 이미 AI 기반 부정행위의 충격을 받고 있다. 가디언이 정보공개법(FOI)을 통해 131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2023~2024학년도에 챗GPT 등 AI 도구를 이용하다 적발된 사례는 7,000건에 이르며, 이는 전년(1,000명대 초반) 대비 약 세 배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1,000명당 적발 건수도 1.6건에서 5.1건으로 껑충 뛰었다.
미국에서는 SAT·ACT·GRE 등 주요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들이 이미 스마트 안경, 스마트워치, 블루투스 이어피스 등을 반입 금지 목록에 올렸고, 2026년 초 칼리지보드는 스마트 안경 전면 반입 금지 방침을 공식화했다.
‘스마트 컨닝’의 공통 패턴…실시간·조직화·상업화
전 세계 사례를 종합하면 AI 기반 시험 부정행위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첫째는 ‘실시간(real‑time)’이다. 중국 대학생들은 로킷·쿼크 같은 안경으로 문제를 촬영하면 몇 초 안에 정답과 풀이가 렌즈에 표시된다고 증언하고, 일부 제품은 통합 번역 기능까지 지원해 외국어 시험에서는 사실상 ‘동시 통역+정답 제공’ 도구로 변신한다.
둘째는 ‘조직화(organized)’다. 일본 토익 대리시험 사건처럼 스마트 안경·초소형 마이크·외부 답안팀이 하나의 패키지로 움직이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과거 스마트폰·무선통신을 활용한 조직적 대리 응시 사례가 반복적으로 적발돼 왔다. 태국 의대 시험에서는 안경에 심은 스파이 카메라가 문제를 찍어 밖으로 전송하고, 외부 인력이 정답을 찾아 스마트워치로 돌려보내는 방식이 사용됐다.
셋째는 ‘상업화(commercialization)’다. 중국의 AI 안경 렌털업자처럼 하루 6~12달러를 받고 기기를 빌려주는 사업 모델이 등장했고, 영국·한국에서도 SNS·틱톡을 통해 ‘절대 안 걸리는 컨닝 안경·이어피스’ 등 이름으로 광고하는 판매업자들이 포착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영국 Ofqual, 한국 교육부, 중국·일본 교육당국 모두 공통적으로 “기술의 속도를 규제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시험의 미래… ‘디바이스 금지’에서 ‘행위 중심 보안’으로
각국 규제 당국의 첫 반응은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스마트 안경, 무선 이어피스 등 특정 기기를 시험장 반입 금지 목록에 추가하는 것이다. 한국 수능과 국가시험, 영국 GCSE·A레벨, 미국 SAT는 이미 이러한 방식으로 규정을 정비했거나 정비 중이다. 그러나 기기 종류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에서 ‘리스트를 계속 늘리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정답 재생산형 필기시험 비중을 줄이고, 응시자 개별 풀이과정·사후 인터뷰·프로젝트형 평가를 늘려 ‘AI가 대신 치르기 어려운 시험 구조’로 재설계하는 평가 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만 2024~2025학년도에 AI 도구를 이용하다 적발된 대학생이 7,000명에 육박하고, 영국 중등·고등학교 시험에서도 스마트 기기 연루 부정행위가 전체의 44%를 넘기면서, 시험을 둘러싼 ‘AI 보안’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의 과제가 됐다. 한국 토익 시험장에서의 첫 AI 글라스 적발은, 이 글로벌 흐름이 마침내 국내 공인 어학시험까지 파고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