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빌 게이츠가 결국 미 의회 증언대에서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혼외 관계를 둘러싼 협박 의혹까지 모두 공개했다. 글로벌 자선의 상징이었던 인물이 성범죄자와의 교류, 반복된 불륜, 협박 시도라는 삼중 리스크에 휘말리면서 ‘이미지 자산’의 구조적 훼손이 불가피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핵심 발언
게이츠는 6월 10일(현지시간) 미 하원 감독위원회 비공개 청문회에 출석해 엡스타인과의 교류를 “심각한 판단 착오”라고 규정하면서도, 엡스타인의 성범죄에는 “가담하거나 목격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엡스타인이 지속적으로 범죄 행위에 가담하는 모습을 본 적도, 그런 정황을 알지도 못했다”며 “나는 그의 섬이나 목장, 플로리다 자택에 간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다만 자신이 혼외 관계를 저질렀고, 엡스타인이 이 민감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우리 가족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토로했다.
게이츠는 엡스타인이 이 불륜 정보를 활용해 교류를 이어가도록 ‘압박’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용하려 했는지 보여준다”며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청문회는 미 법무부가 ‘엡스타인 파일’ 관련 문건을 추가 공개하면서 게이츠와 엡스타인의 이메일·서신 내용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데 따른 후속 조치다.
2011년 첫 만남, 2014년 결별…그러나 남은 이메일
게이츠는 2011년 엡스타인을 처음 소개받았고, 당시 엡스타인이 “글로벌 보건 사업을 위해 수십억달러를 모금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엡스타인이 과거 성범죄로 처벌된 전력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그가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며 사전 검증의 실패를 인정했다. 또 엡스타인과의 교류를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하며 2014년 12월 관계를 완전히 끊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수사 기록 속 ‘엡스타인 파일’에는 게이츠와 엡스타인 간 이메일과 서신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문건에는 게이츠가 러시아 여성과의 혼외 관계로 성병에 걸린 뒤 엡스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취지의 주장이 담겨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게이츠는 엡스타인 범죄와 자신의 불륜은 “무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불륜 사실 자체는 인정하는 전략을 택했다.
되풀이된 ‘혼외 관계’ 리스크
게이츠의 혼외 관계는 이번이 처음 불거진 사안이 아니다. 2021년 워싱턴포스트 등은 그가 약 20년 전 마이크로소프트(MS) 여직원과의 불륜 관계를 맺었고, 이 사실이 2019년 회사에 문제 제기되면서 공식적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대변인은 “20년 전에 불륜 관계가 있었고 원만히 해결됐다”고 인정했다.
2023년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엡스타인이 게이츠의 ‘러시아 여성과의 불륜’을 알고 이를 지렛대로 협박하려 했다”고 보도하면서, 성범죄자와의 네트워크가 개인 스캔들과 결합해 ‘복합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는 단초를 보여줬다. 2026년 2월에는 게이츠가 재단 내부 미팅에서 러시아 여성 두 명과의 외도를 공식 인정했다는 보도가 다시 나오면서, 혼외 관계가 단발 사건이 아닌 ‘패턴’으로 인식될 여지를 남겼다.
자선가 이미지와 ‘레퓨테이션 갭’
게이츠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2000년 출범 이후 누적 590억달러 이상을 공중보건·교육·빈곤 감소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 자선가다. 그러나 성범죄자 엡스타인과의 반복된 만남과 혼외 관계, 협박 의혹이 뒤섞이면서 ‘공익을 위한 냉철한 기부자’라는 외부 이미지와 ‘사적 영역의 판단 실패’ 사이에 구조적 괴리가 드러난 모양새다.
특히 엡스타인이 “글로벌 보건 사업을 위한 수십억달러 모금”을 미끼로 접근했고, 게이츠가 이를 계기로 최소 3년 이상 교류를 이어간 정황은 자선 활동이 결과적으로 고위험 인물과의 접촉 창구가 됐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는 ESG 경영, 필란트로피 거버넌스를 중시하는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기부자 본인의 행동 규범’까지 투명성과 책임성을 요구하는 흐름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사법 리스크’보다 ‘평판 리스크’가 더 크다
현재까지 공개된 문건과 보도만 놓고 보면, 게이츠가 엡스타인의 성범죄에 직접 가담하거나 공범으로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대부분 보도의 공통된 뉘앙스다. 게이츠 본인도 “엡스타인의 범죄 행위에 가담하거나 목격한 적이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첫 만남부터 2014년 결별 주장까지 최소 수년간 교류했다는 사실, 그 사이 여러 차례 혼외 관계가 드러났다는 타임라인은 ‘판단력’과 ‘도덕성’에 대한 시장의 의심을 키우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다.
결국 이번 청문회는 ‘법정 공방’이 아니라 ‘레퓨테이션 관리’ 전쟁의 서막에 가깝다. 미국 의회라는 공식 무대에서 “심각한 판단 착오였다”는 표현을 반복하고, 불륜 사실과 협박 시도까지 먼저 꺼내든 것은 향후 추가 문건 공개와 조사에 대비한 선제적 방어막으로 읽힌다.
다만 성범죄자와의 교류, 반복된 혼외 관계, 협박 시도라는 세 개의 서사가 이미 전 세계 미디어와 SNS의 아카이브에 각인된 이상, 게이츠가 쌓아 올린 ‘선한 자본가’ 브랜드가 어느 수준까지 복원할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