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한국 법원이 미성년 K팝 아이돌의 얼굴이 합성된 딥페이크 누드 이미지를 구매한 2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체계의 구조적 허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판결은 ‘실제 신체 촬영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동·청소년성착취물에서 제외한 사법부 판단과, 급증하는 미성년 딥페이크 피해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판결 핵심 “실제 신체 아니면 아청물 아냐”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형사1부(재판장 조영진)는 6월 8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7세 걸그룹 멤버 등 미성년 아이돌의 얼굴을 성인 여성 나체 사진에 합성한 딥페이크 이미지를 2만원가량에 구매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문제의 합성물이 “실제 아동·청소년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 아니라, 얼굴 사진을 다른 나체 이미지에 붙인 허위 이미지”라며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정의에 포함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들이 아이돌이라는 사정만으로 “19세 미만이라는 점이 공지의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고”, 화질이 조악해 합성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숫자로 드러난 딥페이크 급증과 솜방망이 처벌
이번 사건이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와 가해가 모두 급증하는 와중에 ‘구매·소지’ 단계만 사각지대로 남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신고자는 3,052명으로 관련 조사를 시작한 2018년(111명) 대비 30배 가까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 드러나지 않는 피해를 감안할 경우 실제 피해 규모가 신고치의 10배를 넘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21~2023년 경찰에 신고된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사건 피해자 527명 가운데 59.8%인 315명이 10대였고, 미성년 피해자 수는 2년 사이 3.4배 증가했다는 국회 제출 자료도 위험 신호를 뒷받침한다.
처벌 강도는 피해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대법원 딥페이크 성착취물 관련 판결 87명을 전수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 비율이 39%(34명)로 가장 높았고 실형은 27.5%(24명)에 그쳤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1심 판결문 152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딥페이크 성범죄 가해자의 47.17%가 집행유예에 그쳤다는 결과도 나왔다. 처벌 조항은 존재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초범’, ‘어린 피고인’, ‘반성’ 등이 양형에서 크게 작용하며 실질적 억제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거듭 제기돼 왔다.
법은 강화됐지만, ‘합성 신체’는 사각지대
딥페이크 성착취 실태가 사회문제로 부상하자 한국 국회는 2023~2024년 잇따라 법을 손질해, 유포 목적이 아니어도 허위영상물의 단순 제작·소지·시청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강화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관계 부처는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 방안’을 통해 플랫폼 책임과 삭제 의무를 확대하는 정책 방향도 내놨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이런 법·제도 강화 흐름과 별개로, 현행 아청법 규정이 “실제 아동·청소년의 신체를 촬영한 영상”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
실제 대법원 역시 과거 판례에서, 미성년자의 얼굴 사진을 이용해 성인 신체에 합성한 허위 성적 이미지의 ‘아청물 해당 여부’를 놓고 좁은 해석을 해 온 바 있어, 하급심의 이번 무죄 판단이 갑작스러운 예외라 보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실제 미성년자의 얼굴과 이름, 팬덤까지 동원돼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하는 딥페이크물이어도, 신체가 ‘가짜’라는 이유만으로 구매·소지는 아청법 바깥에 서 있는 모순이 제도적으로 고착되는 셈이다.
‘제작·유포’는 실형, ‘구매’는 무죄…책임 구조 논란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자구책에 나서고 있지만, 사법 시스템의 불균형이 오히려 더 부각되는 모양새다. SM엔터테인먼트는 2026년 4월, 소속 아이돌 딥페이크 불법 음란 합성물을 제작·유포한 피의자 12명이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허위영상물 반포 등)으로 징역 2년 6개월에서 4년까지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공개했다. 이들에겐 5년 취업제한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 명령도 함께 내려졌고, 항소·상고가 모두 기각돼 형이 확정된 상태다.
반면 이번 미성년 아이돌 딥페이크 구매자는 동일한 딥페이크 생태계 안에 있음에도, “합성 신체”라는 이유로 아청법 위반 혐의에선 벗어났다. 디지털 성범죄 사슬 전체를 놓고 보면, 실질적 수요를 형성하는 구매·소지 단계에 대한 형사책임이 오히려 가장 약하거나, 아예 빠져 있는 기형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얼굴도 신체다” 입법 보완 없으면, 무죄 판결 이어질 것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향후 유사 사건에서 사실상 ‘가이드라인’처럼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이미 2024년 BBC 조사에서 한국 내 딥페이크 포르노 네트워크가 500개가 넘는 학교와 대학을 표적으로 삼았고, 상당수 피해자가 16세 미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에서, 미성년 얼굴 합성물만 법 밖에 두는 것은 법의 취지와 사회적 직관 모두에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자료에서도 2021~2023년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피해자의 60%가 미성년자였던 만큼, ‘얼굴만 빌린 허위 이미지’라는 논리를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입법 방향으로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정의에 ‘실제 얼굴을 이용한 합성·변형물’ 명시 ▲합성물 구매·소지에 대한 독립 처벌 규정 신설 ▲양형 기준에서 ‘미성년 얼굴 사용’ 자체를 가중 사유로 명문화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딥페이크 기술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얼굴과 정체성을 강제로 벗겨가는 행위”를 단지 ‘가짜 신체를 쓴 허위 이미지’로 치부한다면, 한국 사회가 이미 현실화된 AI 성착취 시대를 시대착오적 법률로 감당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