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SK그룹과 엔비디아가 단순 HBM(고대역대역폭 메모리) 공급 관계를 넘어, 한국을 기점으로 한 글로벌 ‘AI 인프라 동맹’의 청사진을 공식화했다.
8일 서울 종로 SK 서린빌딩에서 열린 공동 브리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미래 AI 팩토리를 함께 만들겠다”며 반도체·클라우드·제조·로보틱스를 아우르는 장기 협력 구상을 내놓았다. AI 팩토리는 전력·데이터를 원료로 토큰을 대량 생산하는 일종의 ‘지능 공장’으로, 범용 데이터센터를 넘어선 차세대 AI 산업 인프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엔비디아는 이미 SK하이닉스로부터 연간 수십억달러 규모의 메모리를 조달하고 있으며, 향후 베라 루빈, 그레이스 블랙웰 등 차세대 플랫폼 매출 기회만 1조달러 수준으로 내다보고 있다.
젠슨 황 CEO는 “그 안에는 엄청난 양의 칩과 메모리, 인터커넥트, 패키징이 필요하다”며 SK하이닉스를 ‘핵심 메모리 파트너’로 재확인했다. 최태원 회장 역시 “엔비디아는 SK의 가장 큰 고객”이라고 언급하며, 향후 AI 데이터센터·AI 팩토리 구축에 그룹 차원의 역량을 집결하겠다고 응수했다.
GPU 5만장·2027년 첫 가동…숫자로 보는 ‘AI 팩토리’
양사가 그리는 AI 팩토리의 스케일은 수치로 보면 더 분명해진다. SK그룹은 엔비디아와 협력해 향후 5만개 이상의 GPU를 탑재한 국내 최대 규모 AI 팩토리를 구축할 계획이며, 1단계 완공 목표 시점은 2027년 말로 제시돼 있다. 이 AI 팩토리는 SK하이닉스와 SK텔레콤 등 그룹 계열사는 물론 외부 기업·기관을 대상으로 ‘GPU as a Service(GPUaaS)’를 제공하는 국가급 AI 인프라 허브로 설계되고 있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의 AI 인프라 플랫폼 ‘DSX’를 기반으로 AI 학습·추론에 최적화된 전용 데이터센터, 즉 ‘AI 팩토리’를 구축해 2027년 한국에서 첫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를 통해 양사는 한국에서 운영 구조와 사업 모델을 검증한 뒤, 아시아 전역으로 인프라를 확장하는 단계적 전략을 추진한다. 네이버가 엔비디아와 함께 세종 데이터센터 ‘각’을 기반으로 2027년 100MW, 2028년 200MW 규모의 AI 팩토리를 계획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AI 인프라는 복수의 ‘기가와트급’ 거점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국면이다.
HBM·차세대 메모리, ‘AI 팩토리 메모리’로 진화
이번 발표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협력이 ‘HBM 공급사-고객’ 관계에서 ‘AI 팩토리 메모리 공동 설계자’로 격상됐다는 점이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와 차세대 AI 팩토리용 메모리를 공동 개발하고, 엔비디아의 베라 루빈 AI 슈퍼컴퓨터, 베라 CPU, RTX 스파크 PC, 젯슨 토르 로보틱스 플랫폼에 탑재될 메모리 솔루션을 함께 설계·공급하기로 했다.
양사는 또 반도체 설계자동화(EDA)와 시뮬레이션, 디지털 트윈 기반 자율 제조(AI 자율 팹)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이천·용인 캠퍼스에서 엔비디아 옴니버스와 RTX 프로 서버를 활용한 디지털 트윈 팹 구현에 나서고 있으며, 이는 제조 공정을 가상 공간에서 검증해 비용을 줄이고 수율을 높이는 ‘제조 AI 클라우드’ 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기능한다. 젠슨 황 CEO가 “AI 팩토리는 차세대 산업혁명의 엔진이고, 첨단 메모리는 그 성능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SK텔레콤, ‘풀스택 AI 클라우드’로 아시아 노린다
인프라 레벨에서 SK텔레콤의 역할도 분명해졌다. SK텔레콤은 엔비디아와 함께 칩부터 데이터센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AI 클라우드’ 협력을 추진하고, 아시아 대표 AI 클라우드 사업자로의 도약을 명시적 목표로 내걸었다. 첫 AI 팩토리는 양사 AI 클라우드의 운영 구조와 요금·서비스 모델을 검증하는 레퍼런스로 활용되고, 이후 한국 제조업·스타트업·공공기관으로 개방되는 ‘제조 AI 클라우드’와도 연동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은 이미 컴퓨텍스·CES 등 국제 무대에서 엔비디아, 리벨리온, Arm 등과의 협력을 통해 추론 특화 AI 서버와 통신사형 데이터센터 수요를 선점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AI 팩토리 프로젝트는 이러한 개별 프로젝트들을 하나의 ‘AI 산업 클러스터’로 묶는 상위 구상으로 제시됐다. 젠슨 황 CEO가 “한국에는 아직 AI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다”며 “SK텔레콤과 함께 엄청난 규모의 구축을 시작하겠다”고 밝힌 것도, 한국을 아시아 AI 허브로 키우겠다는 공동 전략 선언으로 읽힌다.
한국, ‘피지컬 AI·로보틱스 테스트베드’로 부상
향후 파급력은 반도체나 클라우드에 그치지 않는다. 젠슨 황 CEO는 “로보틱스 시대와 피지컬 AI 시대가 시작됐으며, 한국만큼 로보틱스에 잘 준비된 나라는 없다”고 평가했다. 제조업 경쟁력과 우수한 AI 연구 인력이 결합된 한국이 피지컬 AI와 로보틱스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진단이다.
엔비디아가 젯슨 토르 로보틱스 플랫폼, 디지털 트윈 공장, 지능형 에이전트를 포함한 로봇·제조 생태계를 ‘AI 팩토리’ 위에 얹겠다고 밝힌 만큼, SK-엔비디아 동맹은 한국 제조업의 구조 전환과도 직결될 수 있다.
흥미로운 건 국내 증시 조정에 대한 젠슨 황 CEO의 시각이다. 한국 증시 하락세와 관련한 질문에 그는 “모두가 아주 기뻐해야 마땅하다. 주식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라며 “AI의 미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망하고, 우리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다”고 말했다.
단기 변동성보다 장기 AI 사이클에 방점을 찍은 발언으로, SK-엔비디아 ‘AI 인프라 동맹’이 결국 한국 자본시장의 중장기 스토리, 특히 반도체·통신·클라우드·로봇 섹터의 밸류에이션 리레이팅과도 맞물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