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을 ‘참수’한 인물이 술 취한 일본 현직 경찰관으로 드러나면서, 단순 기물훼손을 넘어 일본 사회의 공직 윤리와 역사 인식, 관광자산 관리 문제까지 한꺼번에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고야 상징물’의 한밤 참수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니시구 엔도지(円頓寺) 상점가 입구에 설치된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은 2013년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기증된 조형물로, 나고야 상점가를 상징하는 관광 포토존 역할을 해 왔다. 성인 허리 높이 정도의 강화 플라스틱 재질 동상으로, 설치 후 10여 년간 오다 노부나가·도쿠가와 이에야스 동상과 함께 이른바 ‘전국시대 3영웅 코스’의 한 축으로 소개돼 왔다.
그러나 2025년 8월 25일경 동상이 목이 잘린 채 발견되면서 분위기는 단숨에 뒤집혔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상점가 조합은 “고의 훼손 가능성이 높다”며 방범용 CCTV 분석에 착수했고, 목 부분은 임시로 박스 테이프로 감긴 채 ‘참혹한 관광 명소’로 국내외 언론에 포착됐다.
용의자는 ‘만취 공무원’…경찰관과 민간인 2명 입건
NHK와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 등 일본 주요 매체 보도에 따르면, 아이치현 경찰은 에히메현 경찰 소속 남성 A경찰관과 나고야시에 거주하는 민간인 B씨 등 남성 2명을 기물손괴 혐의로 수사 중이다. 수사 결과 A경찰관은 2025년 8월 19일 밤 출장차 나고야를 방문했다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동상의 머리 부분을 양손으로 잡고 여러 차례 비트는 방식으로 목을 부러뜨린 것으로 드러났다.
방범 카메라에는 나흘 뒤인 8월 23일, 또 다른 남성 B씨가 이미 부러진 동상의 머리 부분을 발로 차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경찰은 두 사람 모두를 형법상 기물손괴 혐의 대상으로 보고 서류 송치·입건 절차를 진행 중이며, 특히 공무원 신분인 경찰관에 대해서는 형사책임과 별도로 징계 수위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되는 ‘역사 동상’ 훼손…관광자산 관리의 빈틈
이번에 훼손된 도요토미 동상은 지역 자영업자 도키타 가즈히로 씨가 2013년 상점가 활성화를 위해 무료 기증한 작품으로, 약 10년 넘게 상점가의 ‘관문 조형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엔도지 상점가 일대에서는 과거에도 오다 노부나가 동상의 팔이 뜯겨 나가는 등 역사 인물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여러 차례 훼손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상 재질이 강화 플라스틱인 만큼 구조적으로 금속상보다 파손 위험이 크고, 야간에 인파와 음주가 겹치는 상점가 특성상 ‘쉬운 표적’으로 방치돼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TBS와 NHK가 보도한 현장 영상을 보면 동상 주변에 별도의 보호 펜스나 안내 표지, 감시 인력이 전무한 채 관행적으로 방범 카메라에만 의존해 온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요토미를 둘러싼 ‘영웅 vs 가해자’의 시선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국내에서는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로 이어지는 정치 질서를 연출한 ‘통일의 영웅’이자 나고야 지역 출신 상징 인물로 홍보돼 왔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을 일으킨 침략의 기획자로 기억되면서, 일본의 ‘영웅 마케팅’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사건 소식이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로 전해지자 “공공기물 훼손은 명백한 범죄”라는 법치주의적 비판과 함께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복잡한 감정이 든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동상 파손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일본이 침략자를 관광자산으로 소비하는 방식에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으며, 전후 일본의 역사 기억 방식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확장되는 분위기다.
공직 윤리와 ‘술 문화’…일본 사회에 던진 질문
이번 사건이 특히 큰 파장을 낳는 이유는 범행 주체가 치안과 법 집행을 책임지는 현직 경찰관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본 언론 역시 “술에 취한 경찰관이 역사적 조형물을 훼손했다”는 점을 부각하며, 수사기관 내부의 기강 해이와 음주 문화에 대한 자성론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은 방범 카메라 영상과 주변 탐문을 통해 피의자들을 특정하는 데 성공했지만, 사건 발생 시점과 용의자 특정까지 수개월이 소요된 점,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이 아직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나고야시와 상점가 조합이 동상 복구와 추가 방지책을 어떤 수준으로 마련하느냐에 따라, 이번 사건은 단발성 해프닝으로 끝날지, 일본이 공공 공간과 역사 상징물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계기적 사건으로 남을지 갈릴 전망이다.
한·일에 던지는 함의…‘기물손괴’ 너머의 역사 감수성
이번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 참수 사건은 형식상으로는 일본 형법이 규정한 전형적인 기물손괴 사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세 가지 층위의 질문을 던진다. 첫째, 치안을 담당하는 공권력 주체가 공공기물을 훼손한 데 대해 일본 사회가 어느 수준의 책임 추궁과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마련할 것인가라는 공직 윤리의 문제다.
둘째, 나고야 상권이 ‘관광 자산’이라는 이유로 역사적 인물을 어떻게 소비해 왔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피해국과의 역사 인식 충돌을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했는지에 대한 문화정책의 질문이다. 셋째, 한국 사회 역시 이번 사건을 단순한 통쾌함이나 국뽕 감정으로 소비할 것이 아니라, 침략자와 피해자, 가해 기억과 피해 기억을 둘러싼 한·일 간 시선 차를 차분하게 드러내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지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이름이 다시 한 번 한·일 온라인 공간을 달군 사건이, 기물손괴 처벌 수위와 공직사회 음주 관행을 넘어 동아시아 전쟁 기억과 역사 감수성을 되짚는 계기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