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엔비디아 젠슨 황의 ‘홍대 삼겹살 회동’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HBM부터 로봇·게임·클라우드까지 한국 제조·플랫폼 기업을 한데 묶는 ‘피지컬 AI 동맹’의 상징적 출발선으로 읽힌다.
서울에 AI 기술센터를 짓겠다는 공식 발언까지 더해지며, 한국은 엔비디아 글로벌 전략에서 공급기지에서 ‘공동 연구·테스트베드’로 위상이 한 단계 격상되는 모양새다.
홍대 삼겹살에서 나온 ‘Go 코리아’… 장면보다 중요한 맥락
6월 5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 인근 삼겹살집 ‘형님 저요’에 모인 얼굴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GIO, 그리고 젠슨 황 엔비디아 CEO였다. 젠슨 황 CEO는 구광모 회장이 구워주는 삼겹살을 김치·깻잎에 싸 먹으며 한국식 회식 문화를 즐겼고, 술잔을 들고 “고 코리아!, 고 SK!, 고 LG!, 고 네이버!”라는 건배사를 외치며 사실상 ‘AI 동맹’을 선언했다.
식당 주변에는 시민·취재진 합쳐 약 1000명이 몰렸고, 이 자리의 모든 식사 비용은 이해진 GIO가 네이버페이로 결제해 자사 결제 플랫폼을 자연스럽게 노출시켰다. 회동 뒤 네 사람은 인근 치킨집으로 자리를 옮겨 ‘2차 치맥’까지 이어가며 비공식적 스킨십을 이어갔다.

‘깐부 치킨’에서 ‘형님 삼겹살’로… 7개월 만에 격상된 의제
젠슨 황 CEO의 이번 방한은 지난해 10월 말 APEC 계기 방한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전세기편으로 5일 오후 1시쯤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에 도착한 뒤 곧바로 e스포츠 구단 T1이 운영하는 PC방 ‘T1 베이스캠프’를 찾았고, 이후 홍대로 이동해 삼겹살 회동에 나섰다.
작년 강남 치킨집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갖던 ‘깐부 회동’이 HBM 공급망과 AI 칩·차량용 반도체 논의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홍대 회동은 로봇·게임·클라우드·플랫폼까지 아우르는 ‘피지컬 AI’ 동맹의 성격이 더해졌다는 점에서 한 단계 확장된 그림으로 평가된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방한 기간 황 CEO는 LG 여의도 사옥, 현대차 양재 본사, 네이버 제2사옥 ‘1784’ 방문을 조율 중이며, AI·로봇 스타트업 및 서울대 AI·로보틱스 연구진과의 접촉도 추진하고 있다.

“서울에 AI 기술센터”… 공급기지에서 공동 연구거점으로
이번 회동의 핵심 메시지는 한마디로 “서울에 엔비디아 AI 기술센터를 짓겠다”는 황 CEO의 공식 발언이다. 황은 취재진을 상대로 “한국에 AI와 로봇공학 연구를 위한 연구센터를 구축하고 있다”며 “장소는 서울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이미 채용 사이트와 국내 채용 플랫폼에 ‘NVIDIA AI Technology Center’ 소속 솔루션 아키텍트 채용 공고를 올린 상태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로41길 11, 당산 SK V1 센터를 근무지로 밝힌 이 공고는 고성능컴퓨팅(HPC), 디지털트윈, 로보틱스 등 과학·공학 응용에서 GPU 기반 AI를 함께 개발할 연구협력 역할을 요구한다. 지원 자격으로는 컴퓨터공학·전자공학·물리·수학 등 관련 박사 학위와 5년 이상 HPC 실무 경험이 명시돼 있다.
이는 한국이 단순 GPU 수요처를 넘어, 물리·로봇·산업 현장과 결합한 ‘피지컬 AI’ 연구·실증의 전초기지로 격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황 CEO는 공항에서도 “한국은 AI와 로봇공학 전문성이 뛰어난 세계적 제조 허브”라며 “로보틱스는 앞으로 한국에 매우 중요한 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HBM·데이터센터·로봇·게임… ‘피지컬 AI 동맹’의 4축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들의 이해관계는 네 갈래 축으로 구조화된다.
반도체·HBM: 한국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패키징에서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국으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글로벌 HBM 시장의 절대 강자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가 요구하는 GPU+HBM 조합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엔비디아 입장에서 한국 HBM 공급망 안정화는 곧 데이터센터 수주 경쟁력과 직결된다.
AI 데이터센터·클라우드: 국내 통신사와 클라우드 기업은 100MW급 이상 AI 데이터센터 투자계획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예컨대 SK텔레콤은 2024년 가산 AI 데이터센터를 열고 GPUaaS를 출시했으며, 100MW급 AI 데이터센터 추가 구축 계획을 갖고 있고, KT는 2028년까지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용량을 215MW까지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이들은 엔비디아 GPU를 중심으로 한 ‘국산·글로벌 모델 혼합’ 전략을 추진 중이어서 엔비디아와의 인프라 협력 여부가 수익모델을 좌우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로봇·모빌리티: LG는 가정용·서비스 로봇, 현대차는 자율주행·물류로봇, 공장 자동화까지 로봇 사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발표한 ‘피지컬 AI’ 로드맵에서 로봇·자율주행·디지털트윈을 핵심 축으로 제시했으며, 이번 방한 기간 관련 협력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게임·콘텐츠·플랫폼: 젠슨 황 CEO가 첫 행선지로 e스포츠 구단 T1의 PC방을 택하고, 세계적 LoL 스타 ‘페이커’ 이상혁과 나란히 서서 친필 사인을 넣은 지포스 RTX 5090 한 장을 “전 세계 하나뿐인 특별 에디션, 100만 달러(약 15억5000만원)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언급한 장면도 상징적이다. 그는 게임·e스포츠가 한국 AI·GPU 생태계를 견인하는 ‘킬러 콘텐츠’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부각시켰다.
RTX 5090 일반 제품이 국내에서 약 700만원에 판매되는 점을 감안하면, 황 CEO의 100만 달러 발언은 과장 섞인 상징적 메시지에 가깝지만, 엔비디아 브랜드와 e스포츠 팬덤의 결합이 만들어낼 IP·굿즈 시장 잠재력을 시사한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이는 ‘게임 강국·e스포츠 강국 코리아’를 피지컬 AI 테스트베드로 삼겠다는 의중과도 연결된다.

3박 4일 체류, 예능·야구·스타트업까지… 극대화된 ‘한국 노출 전략’
이번 방한이 단순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라 ‘한국 팬덤 구축 투어’에 가깝다는 점도 눈에 띈다. 황 CEO는 3박 4일 일정 동안 다음 행보를 이어갈 예정이다.
6일엔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 녹화 참여, 7일엔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과 회동, 게임·엔터테인먼트 AI 협력 논의가 예정돼 있다. 또 8일엔 LG 여의도 사옥, 현대차 양재 본사, 네이버 제2사옥 ‘1784’ 방문과 과기정통부 장관 면담, AI·로봇 스타트업 비공개 간담회가 예정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8일 신라호텔에서 업스테이지, 노타, 베슬AI 등 AI·로봇 스타트업 대표들과의 간담회는 엔비디아가 한국을 대기업 중심 공급망 거점에서 스타트업·학계를 포함한 ‘풀 스택 AI 허브’로 바라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젠슨 황 CEO는 서울대 AI연구원·로보틱스 연구소 방문 및 학생과의 직접 소통 의사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능 출연과 잠실야구장 시구 일정은 엔비디아 CEO로서는 파격에 가깝다. 이는 GPU·데이터센터·로봇이라는 B2B 의제뿐 아니라, 일반 대중과 젊은 개발자·게이머 세대를 겨냥한 ‘브랜드 구축’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왜 지금, 왜 한국인가… 엔비디아의 계산법
엔비디아의 선택은 숫자로도 설명된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2020년대 중반 이후 급증세를 타고 있으며, 한국 정부는 2025년 발표를 통해 민관 합작으로 최대 2조원 규모의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구축하고, 2027년 완공 전이라도 2025년 11월부터 산업·연구계에 AI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PWC컨설팅 보고서는 국내 통신사와 기업들의 AI 특화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40MW급 ‘매시브’ 규모를 넘어 100MW급 ‘AI 특화 하이퍼스케일’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는 GPU·소프트웨어 스택(NVIDIA AI, CUDA, 네모트론 등)을 제공하고, 한국은 HBM·전력·건설·운영을 담당하는 식의 분업 구조가 형성된다. 황 CEO가 “내년에는 올해보다 훨씬 바빠질 것”이라며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 확대를 예고한 것도, 2027년 국가 AI컴퓨팅센터 완공·국내 통신사 대형 센터 가동 시점과 맞물리는 중장기 수요를 고려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로봇·모빌리티·게임까지 얹힌다. LG와 현대차는 이미 로봇·자율주행·스마트팩토리 분야에서 엔비디아 플랫폼을 도입하거나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 네이버는 제2사옥 ‘1784’를 로봇과 클라우드, 디지털트윈이 결합된 ‘살아 있는 실험실’로 운영 중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선 한국이 “HBM+전력+데이터센터+로봇+게임”을 한 도시권 안에서 실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Go 코리아’ 이후 과제…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
홍대 골목에서 울려 퍼진 “Go 코리아, Go SK, Go LG, Go 네이버”라는 건배사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이 피지컬 AI 시대에 어떤 위치를 택할 것인지 묻는 하나의 질문이기도 하다.
엔비디아는 분명히 한국을 전략적 파트너로 대우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누가 데이터를 쥐고, 누가 플랫폼을 지배하며, 누가 부가가치를 가져갈 것인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결국 관건은 ‘엔비디아에 올라타는 것’을 넘어, 엔비디아와 협력하되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영역(국가 AI 인프라, 국산 반도체·로봇·게임 IP, 공공 데이터와 디지털트윈, 규제·표준)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다.
홍대 삼겹살집에서 시작된 이 ‘형님 동맹’이 5년 뒤 한국을 글로벌 피지컬 AI 허브로 만들 출발선이 될지, 아니면 또 하나의 ‘외국 빅테크 쇼케이스’로 끝날지는 이제 한국 쪽 답변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