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프랑스 동부 메스(Metz)의 퐁피두-메스(Centre Pompidou-Metz)에서 전시 중이던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설치 작품 ‘코미디언(Comedian)’의 바나나가 5월 30일(현지시간) 도난당하면서, 620만 달러(약 95억원)짜리 ‘바나나 예술’이 다시 한 번 글로벌 논쟁의 한복판에 섰다.
프랑스 퐁피두-메스에서 벌어진 5월 30일의 ‘실종 사건’
퐁피두-메스 측에 따르면, 바나나 도난 사실은 5월 30일 오후 2시경 전시장을 순찰하던 경비 요원이 벽에 붙어 있어야 할 바나나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면서 드러났다. 이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의 컬렉션과 함께 구성된 기획전 ‘끝없는 일요일(Dimanche sans fin, Endless Sunday)’의 핵심 작품 중 하나로, 전시는 2027년 1월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관측된 범행 직후 미술관은 곧바로 경찰에 절도 피해를 신고하고, 신원 미상의 범인을 상대로 형사 고소장을 제출했다. 퐁피두-메스는 성명에서 “이는 예술 작품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며, 가해자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형사 절차를 택했다”고 밝혔다.
다만 ‘작품 파손’은 발생하지 않았다. 바나나는 사전에 정해진 전시 매뉴얼에 따라 곧바로 새로운 과일로 교체됐고, 미술관은 “작품은 몇 시간 만에 원래의 전시 상태로 복원되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측은 이번 행위를 “전시 경험의 일부를 관람객에게서 일시적으로 빼앗은 무례한 행위”라며 강하게 규탄했다.
먹히고, 또 먹히고, 끝내 ‘훔쳐진’ 바나나
이번 사건은 이 작품을 둘러싼 ‘반복되는 도발의 패턴’을 한 단계 더 밀어 올렸다는 평가다. 퐁피두-메스에서만 보더라도, 2025년 7월 한 관람객이 동일한 작품의 바나나를 떼어 먹어치운 사건이 이미 한 차례 있었다. 당시 미술관은 바나나를 곧바로 교체하고 작품을 복원했으며, 별도의 법적 조치 없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시계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식용 퍼포먼스’는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2019년 마이애미 아트바젤(Art Basel Miami Beach)에서 작품이 처음 공개됐을 때 미국 퍼포먼스 아티스트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가 “배가 고팠다”며 12만 달러(당시 약 1억 6,500만원)에 판매된 바나나를 그대로 먹어 치웠고, 2023년에는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한 미술학도가 전시 중이던 바나나를 떼어 먹은 뒤 “예술에 대한 실험”이라고 주장한 사례도 있다.
이처럼 ‘먹힌 바나나’와 ‘훔쳐진 바나나’가 전 세계에서 반복 등장하면서, 이 작품은 단순한 설치물이 아니라 관람 행위와 미디어 반응까지를 포괄하는 ‘확장된 퍼포먼스’로 기능하고 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620만 달러 바나나…과연 무엇이 이 바나나를 비싸게 만드는가
형식만 보자면 ‘코미디언’은 벽에 덕트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한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장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전혀 ‘가볍지’ 않다. 2019년 마이애미 아트바젤에서 초기 에디션은 개당 12만 달러에 판매됐고, 2024년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이 작품의 한 버전이 수수료를 포함해 620만 달러에 낙찰되며, 사전 추정가 100만~150만 달러(약 13억~20억원)를 4배 이상 뛰어넘었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유로뉴스와 현지 매체들은 ‘코미디언’이 최대 580만 유로로 평가되고 있다고 전하며, 시장 평가와 실거래가가 모두 이 작품을 ‘수십억짜리 바나나’로 규정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퐁피두-메스는 이번 도난 사건과 관련해 “작품의 핵심 가치는 진품 증명서와 전시 방식을 규정하는 프로토콜에 있으며, 썩어 없어지는 실물 바나나 자체에는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 작품은 전시 지침에 따라 약 2~3일마다 바나나를 교체하며, 미술관은 바나나가 먹히거나 썩어도 작품의 법적·경제적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카텔란 본인도 2021년 《더 아트 뉴스페이퍼(The Art Newspaper)》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우리가 무엇을 가치 있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진지한 논평이자 성찰”이라며, “아트페어에 나간다면 나도 다른 작가들이 그림을 팔듯이 바나나를 팔 수 있다. 나는 시스템 안에서 놀지만, 규칙은 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법은 실물, 예술은 개념’…도난 사건이 드러낸 역설
흥미로운 지점은 법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실물 바나나 한 개’에 대한 절도이지만, 상징적으로는 620만 달러짜리 작품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술관은 “바나나는 몇 시간 만에 교체됐고 작품에는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이 없다”고 밝히면서도, 형사 고소를 통해 사안의 무게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이는 2025년 동일 미술관에서 발생했던 ‘관람객의 바나나 섭취’ 사건에 대해 법적 조치 없이 넘어갔던 대응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작년에는 “하나의 해프닝”으로 수습됐던 일이, 올해에는 ‘형사 범죄’로 규정된 것이다. 그 사이 작품 가치는 경매 시장에서 620만 달러라는 숫자로 공식 인증됐고, 미술관으로서는 개념 작품이라 해도 반복되는 ‘도발’에 일정한 선을 그을 필요성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미디어와 시장이 이 작품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해외 언론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 “수백만 달러짜리 바나나”라는 문구를 반복하며, 작품의 개념적 맥락보다는 가격과 사건성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 결과, 카텔란이 비틀고자 했던 ‘예술의 가치 체계’가 오히려 가격 중심의 헤드라인을 통해 다시 강화되는 역설적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코미디언’이 던지는 질문…한국 미술·문화 시장에의 시사점
‘코미디언’은 2019년 첫 공개 이후 약 7년간, 먹히고, 훔쳐지고, 되팔리며 ‘확장되는 드라마’를 만들어 왔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물질적 요소(바나나)는 수십 번 교체됐지만, 진품 증명서와 전시 프로토콜이라는 비물질적 구조는 오히려 견고해졌고, 시장 가격은 12만 달러에서 62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
한국 미술·문화 시장에도 시사점은 적지 않다. NFT, 개념미술, 퍼포먼스 아트 등 비물질·프로토콜 기반 작품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 ‘코미디언’은 “작품의 실체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전면에 올려놓는다. 동시에, 예술 작품이 언론의 헤드라인과 소셜 미디어의 밈(meme)을 타고 가격과 상징성을 키워가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가치 생성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나나는 하루이틀 만에 갈변해 버리지만, 그 바나나를 둘러싼 개념과 계약, 그리고 세계 미술·미디어 시장이 만들어내는 서사는 썩지 않고 계속 덧붙여지고 있다. 프랑스 미술관에서 다시 사라진 620만 달러짜리 바나나는, 결국 우리가 예술과 돈, 그리고 뉴스 가치를 어디에 두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비추는 일종의 ‘거울’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