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희선 기자] 독일 자동차의 상징 메르세데스-벤츠가 ‘중국 자본’과 ‘미국 안보 규제’ 사이에 끼인 채 사상 초유의 미국 시장 퇴출 압박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독일차의 상징이지만 현재는 중국 국유 베이징자동차집단(BAIC)이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의 최대 단일 주주로 올라선 데다, 미국 의회가 ‘외국 적대국 지분’ 보유 자동차회사의 수입·생산·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벤츠의 미국 전략 자체가 재설계를 요구받는 국면이다.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AG의 지배구조를 보면 중국 자본은 이미 수치상으로 명백한 ‘최대 세력’이다. BAIC는 2025년 기준 벤츠 지주사 지분 9.98%를 보유한 최대 단일 주주이며, 지리자동차(Geely) 창업자 리수푸(리슈푸)가 9.69%를 쥔 2대 주주다.
두 주주 지분을 합산하면 중국계 자본 비중은 19.67%로, 쿠웨이트 투자청(5.57%)을 포함한 기타 외국 자본을 압도하는 단일 국가 최대 지분이다. 중국·독일 관련 보도에서도 벤츠 그룹의 소유구조는 기관투자가 43.15%, 개인 31.61%, BAIC 9.98%, 리수푸 측 9.69%, 쿠웨이트 투자청 5.57%로 나타나, 중국 자본이 ‘지분 20%에 육박하는 2대 세력’이다.
다만 벤츠는 독일식 지배구조를 통해 지분율과 경영권을 분리하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변수로 꼽힌다. 그럼에도 미국 의회가 추진 중인 ‘자동차 현대화법(Motor Vehicle Modernization Act of 2026)’은 지배구조의 실질 통제 여부보다 ‘외국 적대국’ 지분율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벤츠의 법적 리스크를 키우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가 된 자동차 현대화법은 미국 하원에서 논의 중인 초당적 법안으로, ‘외국 적대국 정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지분을 보유한 자동차 제조사의 미국 내 차량 수입·판매·제조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정부는 기존 법령에서 중국을 러시아·북한과 함께 ‘foreign adversary(외국 적대국)’로 분류해 왔으며, 이번 법안 초안은 ‘외국 적대국이 지배하는 기업’을 외국인 또는 외국인 집단이 1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경우로 정의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BAIC(9.98%)와 리수푸(9.69%)로 대표되는 중국계 자본의 합계 19.67%는 명백히 ‘15% 기준’을 상회하는 수치다.
법안 적용 시나리오는 벤츠에 치명적이다. 한국무역협회와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해당 법안은 법 시행 후 5년간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의 미국 내 차량 제조·판매·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 2026년 1월 1일 이전 최소 5년 이상 미국에서 승용차를 생산한 기업은 예외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외국 적대국 정부의 직접·간접 지분 보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 예외 적용에서 배제된다. 벤츠처럼 미국 현지 생산 거점과 긴 생산 역사에도 불구하고 중국 국유·민간 자본이 결합한 지분 구조를 가진 기업이 오히려 가장 애매한 경계선에 서게 되는 셈이다.
벤츠 입장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미국 시장에서의 실질 비중과 생산·고용 규모 때문이다. 벤츠는 2025년 기준 미국에서 28만4600대를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 대비 12% 감소한 수치이면서도 글로벌 판매의 약 13%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중국에서는 같은 해 55만1900대를 판매해 전년보다 19% 줄었지만, 여전히 전체의 33%를 차지해 최대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양대 시장에서 동시 타격을 받은 결과, 벤츠의 글로벌 판매는 2025년에만 10% 가까이 감소하며 3년 연속 내리막을 기록했고, BMW에 프리미엄 시장 1위 자리를 내줬다.
생산 측면에서도 미국은 단순 수출 시장이 아니라 ‘전략 거점’이다. CNBC 보도에 따르면 벤츠의 미국 최대 생산기지인 앨라배마주 투스컬루사 공장은 1997년 가동 이후 누적 생산량이 500만대를 넘었고, 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은 2006년부터 45만대 이상 승합차를 생산해 왔다.
벤츠는 두 공장에서만 1만명 이상을 직접 고용하고 있다고 밝히며, 미국 내 생산·고용·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의 스티븐 에젤 글로벌 혁신정책 부사장은 CNBC를 통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중국이 지배하는 자동차 기업에 비해 국가안보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법안 포함 시 미국 일자리와 수익 손실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경고했다.
벤츠의 미국 전략은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자동차 관세 인상으로 균열 조짐을 보인 바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벤츠는 2025년 4월부터 부과된 미국 수입 자동차 25% 관세 여파로, 소형 SUV GLA 등 보급형·저가형 모델의 미국 판매 중단을 검토했다. 번스타인리서치는 이 관세로 벤츠의 영업이익률이 2.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으며, 미국에서 최저 4만3000달러에 판매되는 GLA는 애초 마진율이 낮아 관세를 소비자 가격에 전가하지 못하면 오히려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벤츠는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면서도 관세 정책과 수익성을 고려해 미국 사업 계획을 재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미국 상무부가 이미 2027년형 차량부터 중국산 소프트웨어, 2030년형(또는 2029년 이후 출시)부터 중국산 하드웨어 탑재 커넥티드 차량을 제한·금지하는 별도 규정을 도입하면서, 벤츠는 지분·부품·소프트웨어 삼중 규제에 직면한 형국이다.
규제 대상은 와이파이·블루투스·셀룰러·위성 통신, 자율주행 시스템, 차량 내 통신·제어용 칩·모듈 등 광범위한 영역의 중국산 기술로, ‘연결된 자동차’ 전체를 포괄한다. 자동차 현대화법이 중국 지분을, 커넥티드 규제가 중국 소프트·하드웨어를 동시에 압박하면서, 중국과 얽힌 지분·공급망을 가진 OEM은 미국 시장에서 구조적인 재편을 강요받게 됐다.
이런 환경에서 벤츠의 선택지는 크게 두 갈래로 압축된다. 하나는 BAIC·지리 등 중국계 주주와 협의해 지분을 매각하거나 희석시켜 중국 자본 합계 지분율을 15% 아래로 낮추는 ‘지분 정리 카드’다. 이는 미국 법안 리스크를 줄이는 대신, 중국 측과의 전략적 제휴, 현지 합작법인, 전기차 협력 구도를 일부 포기하거나 재구성해야 하는 대가를 수반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내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손질하는 ‘전면 수정 카드’다. 관세·수요·전동화 부담 속에서 이미 검토했던 보급형·저가형 라인업의 단계적 철수, 고가 프리미엄·전기차 중심으로의 포지셔닝 전환, 나아가 일부 모델·브랜드의 미국 생산·판매 축소 또는 분리 법인화까지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벤츠의 고민은 간단치 않다. 중국은 벤츠 판매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고, 중국 자본과의 지분·합작 구조는 전기차·배터리·플랫폼 개발에 깊숙이 엮여 있다. 반면 미국은 글로벌 매출 비중이 13% 수준이지만, 대형 SUV와 상위 트림 중심의 고마진 시장이자 앨라배마·사우스캐롤라이나 공장을 통한 북미·유럽 수출 허브 기능을 하는 전략 요충지다.
중국 자본을 정리하면 중국 시장·합작 파트너와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미국 시장을 포기하면 수익성과 브랜드 위상이 동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딜레마 구조다.
벤츠를 둘러싼 이번 사태는 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위기 이상의 함의를 갖는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중국 전기차 공세, 미국·중국 간 관세·보조금 전쟁, 전동화 전환 비용에 끼인 채 방산·배터리·위탁생산 등으로 ‘생존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중이다.
자동차업계 전문가는 "BAIC와 지리라는 중국 자본을 등에 업고 글로벌 확장에 나섰던 벤츠가, 역설적으로 바로 그 중국 자본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퇴출 압박을 받는 구조는 ‘중국 자본·기술 의존’에 대한 새로운 리스크 시그널로 읽힌다"며 "벤츠가 지분을 정리하며 다시 ‘독일차’ 정체성을 강화할지, 아니면 미국 시장에서의 ‘디스카운트’를 감수하고 중국과의 동맹을 택할지, 이들의 선택은 향후 글로벌 자동차 산업의 지분·공급망·안보 리스크 지형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