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같은 날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하면서, 글로벌 증시의 중심축이 완전히 ‘AI 인프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됐다. 단순한 주가 랠리가 아니라, AI 시대의 필수 재료인 메모리 반도체를 둘러싼 구조적 수요 급증과 산업 판도 재편이 맞물린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같은 날 시가총액 1조 달러 돌파
27일 CNBC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한국 증시에서 주가가 11% 이상 급등하며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일본 기가진(Gigazine)은 같은 날 종가 기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을 1,592조원(당일 환율 기준 약 1조 059억 달러)으로 추산하며 ‘트릴리언 달러 클럽’ 편입을 확인했다. 이는 삼성전자에 이어 한국 증시에서 두 번째, TSMC·삼성에 이은 아시아 세 번째 1조 달러 기업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이날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뉴욕 증시에서 1조 달러를 돌파한 날과 같은 날이었다. 마이크론 주가는 UBS가 목표 주가를 기존 535달러의 세 배가 넘는 1,625달러로 대폭 상향하면서 18% 이상 폭등했다. 두 기업이 나란히 이룬 이 역사적인 이정표는, AI 붐의 하드웨어 핵심 공급자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투자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불과 5월 초까지만 해도 마이크론은 7,000억 달러대 시총에 머물러 있었으나, AI 서버용 메모리 수요 기대가 연쇄적으로 상향 조정되며 단기간에 ‘라운드 넘버’를 뚫어버렸다.
이날 두 회사가 나란히 1조 달러를 찍은 장면은 시장의 주도권이 GPU 설계사나 빅테크 플랫폼을 넘어, 그 밑단에서 데이터를 직접 받쳐주는 ‘메모리 인프라’ 쪽으로 확장됐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해석이 분분하다.
16개월 만에 10배…SK하이닉스 ‘HBM 드라이브’의 위력
SK하이닉스의 질주는 단순한 유동성 장세로 설명하기 어렵다. 로이터는 “불과 16개월 전만 해도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1,000억 달러 미만이었지만, 2026년 5월 중순에는 9,420억 달러 수준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이후 1조 달러를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1년 반 남짓한 기간에 시총이 10배 가까이 불어난 셈이다.
실적은 그 랠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97조 1,000억원, 영업이익 47조 2,063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전년 대비 매출은 46.8%, 영업이익은 100% 이상 증가했으며, 순이익도 42조 9,000억원으로 116.9% 급증했다.
HBM 지배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DBR는 뱅크오브아메리카 자료를 인용해 “SK하이닉스의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2023년 54%, 2024년 55%, 2025년 61%로 3년 연속 1위”라고 전했다. 특히 최대 고객인 엔비디아를 대상으로 차세대 HBM4 물량의 3분의 2 이상을 선점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2~3년간 실적 가시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다.
분기별로 보면 HBM 의존도는 더 극적이다. 스토리지·인프라 전문 매체 블록스앤파일즈(Blocks & Files)는 2025년 2분기 SK하이닉스 매출의 77%가 HBM에서 나왔고, 해당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5.4% 증가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HBM = SK하이닉스”라는 공식이 시장에 각인되면서, 투자자들은 AI 서버 출하량 전망이 올라갈 때마다 곧장 SK하이닉스 밸류에이션을 재평가하는 구조가 정착됐다.
‘포스트 삼성’ 꿈꾸는 한국, AI 인프라 허브로 부상
삼성전자에 이은 SK하이닉스의 1조 달러 진입으로 한국은 미국 외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1조 달러 기업 두 곳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CNBC와 블룸버그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6년 5월 초 AI 메모리 수요 급증 기대를 타고 하루 14~15% 급등, 시총 1조 달러를 선점했다. 이 과정에서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처음 7,000선을 돌파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이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의 40% 중반을 책임지는 ‘초집중 구조’가 더 공고해졌다는 점도 눈에 띈다.
공격적인 증설과 자본시장 전략도 뒤따르고 있다. 한국 언론과 업계 보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2026년 하반기 미국 예탁증서(ADR) 상장을 통해 최대 140억 달러를 조달, 경기도 용인과 미국 인디애나주에 AI 특화 반도체 팹을 건설하는 투자 계획을 추진 중이다. 미 증시에 상장한 뒤 글로벌 연기금·헤지펀드 자금 유입이 본격화되면, 현재 ‘아시아 3위’에 머무는 시가총액이 한 단계 더 점프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 경제에도 기회이자 리스크다.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지속되는 동안 한국은 ‘AI 인프라 허브’로서 글로벌 자본과 공급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는 전략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반면 반도체 두 기업에 대한 코스피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아진 만큼, AI 투자 사이클이 꺾일 경우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그만큼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AI는 CPU보다 메모리”…글로벌 자본이 읽은 빅 피처
모닝스타 기술 애널리스트 위징제(Yu Jing Jie)는 CNBC 인터뷰에서 “AI 수요 폭증으로 메모리 집약적 작업이 늘어나면서 DRAM과 낸드 플래시 반도체가 심각하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GPU당 탑재되는 HBM 용량이 세대가 바뀔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인 만큼, AI 투자 강화가 곧바로 메모리 매출·이익 레버리지로 연결되는 ‘고정비 레버리지 비즈니스’라는 점이 글로벌 자본의 시각을 바꿔놓고 있다.
실제로 2026년 들어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의 주가는 “2023~2024년 엔비디아 랠리”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와 미국 금융매체들은 “메모리 주식이 2026년 미국·한국 증시 상승을 이끄는 새로운 ‘AI 레버리지 플레이’로 부상했다”며, 반도체 장비·소재보다 한 단계 상위의 ‘핵심 인프라 자산’으로 재평가되는 흐름을 짚었다.
동시에, ‘1조 달러’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은 두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메모리 업황 특성상 공급이 동시에 늘어나는 순간 가격 조정이 불가피하고, 중국·미국·일본의 후발주자들도 HBM과 차세대 메모리 시장 진입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1조 달러 클럽 가입이 슈퍼사이클의 꼭지인지, 아니면 AI 인프라 장기 성장 스토리의 ‘전반전 종료’에 불과한지는 향후 2~3년 사이 설비투자 속도와 메모리 가격 사이클이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