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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건축

[지구칼럼] '정원사·사랑꾼' 바우어새 구애법의 불편한 진실…"감사·열정이 당연함·권태로 변질" 인간과 '데자뷰'

 

[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숲 속에 사는 바우어새는 ‘정원사새(gardener bird)’ ‘오페라하우스 건축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나무 위가 아닌 땅 위에 정자 모양의 구조물을 짓고, 꽃·열매·조개껍데기·심지어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조각까지 모아 색과 크기별로 정교하게 배열하기 때문이다.

 

행동생태학 연구에 따르면 일부 바우어새 수컷은 번식기 동안 하루 활동 시간의 최대 80%를 집 꾸미기에 쏟는다. ‘사랑의 정원’을 꾸미는 데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가까이 같은 장소를 집요하게 손질하는 모습이 반복 관찰된다.

 

바우어새의 구조물은 알과 새끼를 키우는 둥지가 아니다. 순수하게 구애를 위한 무대, 일종의 콘서트홀에 가깝다. 나무 가지 200~300개를 세워 만든 아치형 통로 앞에는 돌·조개껍데기가 작은 것에서 큰 것 순으로 배열되고, 일부 종은 식물즙과 침을 섞어 벽을 칠하는 ‘천연 페인트’까지 사용한다는 보고가 있다.

 

호주 디킨대 존 엔들러(John A. Endler) 교수팀은  큰바우어새 수컷이 이 크기 배열을 통해 암컷의 시야에서 부자연스러운 원근법(forced perspective)’이라는 착시 효과를 만들어내고, 이 효과가 흐트러지면 며칠 안에 다시 원래 패턴으로 복원하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사랑을 위한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정성 뒤에는 불편한 진실도 숨어 있다. 바우어새의 번식 시스템을 보면, 구애와 ‘공연’은 철저히 수컷의 몫이지만, 교미 이후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모든 부담은 암컷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된다. 암컷은 여러 수컷의 구조물을 둘러본 뒤 한 마리를 선택해 정자(바우어) 안에서 1~2초 남짓 짧게 교미가 이뤄지며, 그 뒤 암컷은 숲 속 다른 나무 위에 전혀 다른 둥지를 짓고 홀로 알을 낳아 양육한다.

 

놀랍게도 수컷은 다시 정자를 손질하며 새로운 암컷을 기다린다. 이 때문에 바우어새는 대중 매체에서 ‘가장 뻔뻔한 새’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다. 사회적 표현으로 옮기면 “연애는 화려하게, 양육은 모른 척”하는 구조다. 초기 집중투자를 통해 선택을 얻은 뒤, 실질적 돌봄과 책임에서 발을 빼는 ‘연애는 퍼포먼스, 관계유지와 돌봄은 타자 몫’이라는 인간 사회의 일부 관계 패턴과 불편할 정도로 닮아 있다.


또 행동생태학자 제럴드 보르지아(Gerald Borgia)가 정리한 바우어새 연구에 따르면, 렉(lek)형 혼인 전략의 대표 사례로 다뤄진다. 렉(lek)형 혼인 전략은, 여러 수컷이 한 공간에 모여 ‘쇼룸’을 열고, 암컷이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수컷을 골라 교미하는 방식의 번식 전략을 말한다. 렉(lek)은 스웨덴어에서 온 생태학 용어로, 수컷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구애 행동을 벌이는 집단 디스플레이 장소를 뜻한다. 

 

이때 수컷은 먹이·보호·양육 같은 실질적 자원을 제공하지 않고, 거의 오로지 구애 퍼포먼스와 외형으로만 선택 경쟁을 한다. 암컷은 그 렉 장소를 돌아다니며 여러 수컷을 관찰한 뒤, 한두 수컷을 골라 짧게 교미하고 떠난다. 이후 알 낳기와 양육은 대부분 암컷의 몫이다. 렉형 전략은 '여러 후보가 한 공간에서 어필하고, 그중 한 명을 고르는 구조'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소개팅 파티·스피드 데이팅, 심지어 일부 SNS·데이팅 앱의 매칭 구조와도 비유적으로 닮았다는 분석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새의 구애 전략을 인간 관계 데이터와 겹쳐볼 때 드러난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소냐 류봄미르스키(Sonja Lyubomirsky) 교수팀은 2013년 논문 「Making it last: Combating hedonic adaptation in romantic relationships」에서, 연애·결혼 초기의 강렬한 만족감이 시간이 지나며 점차 평준화되는 과정을 실증 연구들을 기반으로 모형화했다. 

 

이는 심리학 연구들이 밝혀낸 연애와 결혼에서의 ‘헤도닉 적응(hedonic adaptation)’ 곡선과 흥미롭게 겹친다. 즉 처음의 강렬한 감정이 시간이 흐르며 점차 평준화되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또 이 적응을 늦추기 위한 네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관계 속에서 긍정적 경험의 빈도를 늘리고, ▲함께 하는 활동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상대를 ‘당연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의도적으로 자주 감사와 인정의 표현을 늘리라는 것이다.

 

숲 속 바우어새의 행동은 이 이론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한 번의 화려한 공연이 아니라, 번식기 내내 수컷이 구조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장식이 시들면 실제로 교체하는지, 방해를 받았을 때 얼마나 빨리 복구하는지까지 포함한 ‘장기 패턴’을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이벤트가 아니라 유지보수다. 인간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연애 초반의 이벤트보다 매일 반복되는 말투, 작은 배려, 갈등 이후의 복구 방식 같은 미시적 패턴이 관계 만족도를 결정한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즉, 결혼이라는 ‘한 번의 이벤트’는 긴 시간축에서 보면 영구적인 행복 보증 수표가 아니며, 관계 안에서 반복적으로 생성되는 작은 경험과 태도가 만족도를 결정한다.

 

 

문제는 인간이 관계를 한 번 ‘성사된 상태’로 착각하는 순간, 바우어새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다는 점이다. 수컷 바우어새는 선택을 받기 위해 구조물을 계속 손질해야 한다. 반면 많은 인간은 선택이 끝났다는 안도감 속에서, 더 이상 장식을 교체하지 않고, 페인트칠을 멈추고, 심지어 상대를 위해 마련한 정자 자체를 돌보지 않는다. 초기의 정성과 투자에 기대 현재의 소홀함을 정당화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소중함은 ‘감사’에서 ‘당연함’으로, 뜨거움은 ‘권태’라는 관성으로 서서히 변한다.

 

결국 인간 관계의 ‘권태 곡선’은 바우어새의 정자에서 이미 예고되고 있다. 관계는 처음의 불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자주, 얼마나 다양하게, 얼마나 의식적으로 서로를 위해 장식을 갈아 끼우는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공자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차와 같다. 처음에는 뜨겁고 강렬하지만, 갈수록 은은하고 깊은 맛을 내는 인연이 진짜다”라는 말처럼, 중요한 것은 뜨거움 자체가 아니라, 식어가는 온도를 알아차리고 다시 덥히는 기술이다.

 

숲의 작은 정원사는 오늘도 조약돌 하나, 꽃잎 하나, 조개껍데기 하나를 다시 배치하며 암컷을 기다린다. 인간에게 필요한 일도 그리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권태가 찾아왔을 때, 상대가 우리를 위해 치워놓았던 보이지 않는 장식들을 한 번 천천히 세어보는 일. 그 사소한 회상과 감사의 언어화가, 이미 굳어져 버린 권태 곡선을 살짝 위로 휘게 만드는 첫 손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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