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라오스 북부 ‘항아리 평원(Plain of Jars)’의 거대 석항아리 한 기에서 최소 37명의 유해가 확인되면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고고학 미스터리가 사실상 해부됐다.
sciencedirect, ScienceAlert, GreekReporter, Phys.org, Archaeology Wiki에 따르면, 이번 발견은 이 거석 항아리들이 일회성 매장이 아니라, 약 270년에 걸쳐 여러 세대를 차례로 받아들인 ‘공동 조상 무덤’이었음을 입증하는 첫 직접 증거라는 점에서 동남아 고고학계의 판도를 바꾸는 성격을 지닌다.
1,000년 전 ‘공동 조상 무덤’이 드러나다
연구팀이 발굴한 것은 시엥쿠앙(Xiangkhoang) 고원 폰사반(Phonsavan) 북동쪽 약 70km 지점에 위치한 75번 유적의 ‘1번 항아리’로, 높이 약 1.3m, 직경 2m를 넘는 거대 석조 용기다. 항아리 내부에서는 빽빽하게 쌓인 인골이 확인됐는데, 대퇴골·두개골 등 주요 뼈를 기준으로 한 최소 개인수(MNI)가 37명으로 추산됐고, 연령대는 영아(최소 생후 18개월 추정)부터 성인까지 세대를 아우른다.
그동안 일부 항아리 주변에서 개별 매장 흔적과 소량의 뼈, 재 등이 발견된 적은 있었지만, 이처럼 한 항아리 내부에서 30명이 넘는 인골이 집단 형태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는 이 ‘죽음의 항아리’가 단발성 집단 매장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반복 사용의 현장이었음을 뒷받침한다. 항아리에서 채취한 뼈·치아 8점의 연대는 대체로 서기 890년에서 1160년 사이로, 최대 약 270년에 걸쳐 새로운 유골이 추가로 안치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대 범위상 9~12세기, 즉 중세 초기~중기 동남아 역사와 겹치며, 기존에 일부 학계에서 제기하던 “철기시대(기원전~기원후 수세기) 유물” 가설을 상당 부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차 매장, 그리고 ‘가족 항아리’ 가설
이번 연구의 핵심 키워드는 이차 매장(secondary burial)이다. 항아리 내부에서 확인된 뼈들은 관절이 모두 분리된 해부학적 비연속 상태였으며, 온전한 전신 골격이 아니라 해체·선별된 뼈들이 뒤섞인 구조였다. 연구를 이끈 니컬러스 스코팔(Nicholas Skopal) 제임스쿡대 연구진은 “시신이 처음에는 다른 곳(소형 항아리·노지 등)에 안치돼 부패가 진행된 뒤, 일정 기간이 지나 뼈만 추려 이 대형 석항아리로 옮겨졌다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장례 방식은 ‘죽음’을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부패–정리–재안치에 이르는 장기간의 과정으로 인식한 세계관을 시사한다. 특히 한 항아리 안에 37명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인원이 세대에 걸쳐 안치된 점은 이 항아리가 특정 ‘공동체 단위’의 조상집합체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스코팔 연구진은 “개인 수와 사용 기간을 고려할 때, 항아리는 혈연 중심의 가족 혹은 대가족(extended family) 집단이 소유하거나 관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조상 제의를 반복적으로 거행하는 성소이자, 조상 집단을 물리적으로 수용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부분은 아직 DNA 분석이 진행 중이어서, 실제 혈연관계 구조는 후속 연구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항아리 평원’ 전체 기능 재해석
이번 ‘죽음의 항아리’ 한 기의 발굴은 시엥쿠앙 고원 전역에 흩어진 수천 기의 석항아리 해석에도 직접적인 파장을 던진다. 라오스 정부와 국제 연구팀이 집계한 메갈리식 석항아리 유적은 2020년대 조사 기준 100여 개 사이트, 수천 기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일부 항아리는 무게가 수 톤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다.
1930년대 프랑스 고고학자 마들렌 콜라니(Madeleine Colani)가 처음 학계에 본격 소개한 이후, ‘곡물 저장용기’, ‘물 저장시설’, ‘카르스트 지형 표식’ 등 온갖 가설이 제기됐지만, 가장 유력한 설명은 오랫동안 ‘장례·의례용 용기’였다.
이번 연구는 그동안 주변부 매장 흔적과 단편적인 인골에 의존해왔던 추정을, 하나의 실체적 증거로 고정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9~12세기 이차 매장, 270년에 걸친 반복 사용, 다수 개인의 집단 수용이라는 세 가지 데이터는 ‘항아리 평원 전체가 조상숭배를 위한 광역 장례 복합체였을 것’이라는 기존 가설을 강하게 지지한다. 과학전문 매체들은 “수천 개의 석항아리가 흩어진 평원이 사실상 거대한 선조들의 도시, 혹은 조상 공동묘지에 가까운 성격을 띠었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한편 일부 항아리에서는 화장으로 탄 뼛조각과 재, 도기편, 유리구슬, 철기류 등 부장품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불교 전래 이후 기존 조상 항아리가 화장 유골을 수용하는 방식으로 재활용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동일한 석항아리 시스템이, 선불교적 조상숭배 장례에서 불교 장례로 연속·재편되는 종교·의례사의 변화를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동남아 장례문화·권력구조 연구의 ‘키 스톤’ 될까
이번 연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발행 국제 학술지 Antiquity 2026년 5월 18일자 온라인판에 ‘The death jar: a new mortuary tradition at the Plain of Jars, Lao PDR’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논문은 라오스 문화유산청, 제임스쿡대, 호주국립대(ANU) 등 국제 공동연구 성격을 띠며, DOI는 10.15184/aqy.2026.10352로 등록됐다. 고고학 전문지와 과학 뉴스 매체들은 이번 연구를 “동남아 메갈리식 유적 연구의 전환점”이자 “철기시대 중심으로 짜여진 기존 동남아 선사 연대기를 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