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와이어카드와 밸리언트를 무너뜨리며 ‘저격수(The Assassin)’로 불린 공매도 투자자 파미 콰디르가 첫 롱 전략의 시험무대로 한국을 택했다. AI 대형주가 아니라 지배구조 왜곡으로 저평가된 재벌·중소형주에 장기 주주 행동주의 펀드를 띄우겠다는 선언은, 구조적 리레이팅 초입에 선 한국 증시에 적잖은 파장을 예고한다.
콰디르가 본 한국… ‘반대 방향의 사기’
콰디르는 블룸버그 ‘Odd Lots’ 공개 녹음에서 한국 진출을 “사기 탐지 역량을 반대로 쓰는 실험”이라고 정의했다. 미국·유럽에서 회계부정·사기를 찾아 공매도로 수익을 냈다면, 한국에서는 재벌 오너 일가가 상속세 절감을 위해 의도적으로 눌러놓은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쪽에 베팅하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를 “반대 방향의 사기”라고 표현하며, 저평가 해소 과정에서 나오는 리레이팅 이익을 장기적으로 수취하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콰디르는 특히 한국이 최근에서야 주주에 대한 신인의무를 상법에 명문화하고, 금융당국이 장부가 밑으로 거래되는 기업들을 ‘이름을 공개해 망신 주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한 점에 주목했다. 제도 변화로 재벌 중심의 폐쇄적인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판단이다. 전통적으로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해 국내 주식을 기피하던 개인투자자들이 다시 코스피로 돌아오는 흐름도 같은 맥락에서 읽었다.
첫 롱 무대에 한국을 택한 배경
콰디르가 한국 시장을 레이더에 올린 계기는 2023년 11월 단행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였다. 공매도 전략이 봉쇄된 시장을 분석하던 과정에서, 그녀는 “지배구조 개선 여력이 크지만 시장 가격에 거의 반영되지 않은 나라”라는 결론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콰디르는 인터뷰에서 “한국 증시는 여전히 싸다”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 펀더멘털이 더 선명히 드러나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새 펀드의 성격은 분명하다. 콰디르는 한국에서 초기 운용자산(AUM) 3억 달러, 한화 약 4500억원 규모의 롱 전용 펀드를 조성해 여름께 첫 매수를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타깃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초대형 수출주가 아니라, 재벌 지배구조와 순환출자, 비핵심 계열사 문제로 PBR(주가순자산비율)이 장기간 1배를 밑도는 중소·중형주다. 초기에는 소수 종목으로 시작해 3~4개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되, 새 세대 경영진이 해외 자본과 지배구조 개선에 비교적 개방적인 기업을 선별하겠다는 방침이다.
콰디르는 인터뷰에서 한국 내 역할을 “소액주주를 대변하는 ‘로빈후드’”로 규정하며, 배당 확대·자사주 소각·이사회 독립성 강화 등 전형적인 행동주의 의제를 앞세우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전통적인 ‘숏 전업 펀드’가 한국에서는 첫 롱·행동주의 캠페인을 예고한 셈이다.
ETF에 61조 쏟아진 한국…‘자금의 강’ 위에 서는 콰디르
콰디르의 전략 전환은 한국 자본시장의 수급 지형이 빠르게 재편되는 시점과 맞물린다. 국내외 자금은 이미 ETF를 통해 한국 주식에 대거 유입되고 있다. 2025년 한 해 국내·해외 ETF 설정액에는 61조93억원의 자금이 새로 들어와, 전체 공모펀드 설정액 증가분의 약 60%를 ETF가 가져갔다. 이로써 국내·해외 ETF 설정액은 218조1944억원까지 불어났고, 약 500조원 규모 공모펀드 시장의 220조원 안팎을 ETF가 차지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특히 국내 ETF로의 쏠림이 두드러졌다. 2022년 14조3244억원, 2023년 24조2347억원, 2024년 33조9849억원으로 ETF 자금 유입이 매년 ‘10조+α’씩 늘어난 데 이어 2025년에는 유입 규모가 61조원으로 전년의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같은 해 국내 ETF에는 31조4968억원이, 해외 ETF에는 29조5125억원이 유입됐으며, 이 가운데 국내 주식 ETF에만 15조9147억원이 몰리며 코스피 사상 최고치 경신을 견인했다.
미래에셋증권 리포트에 따르면 2025년 이후 2026년 들어서도 한국 ETF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이어지고 있다. 2026년 연초 이후 한국 ETF 시장에는 52조1113억원이 순유입돼, 2025년 한 해 유입액(76조7783억원)의 67.9% 수준을 이미 채웠다. 이 가운데 주식형 ETF로만 44조4564억원이 들어오며, 실질적인 수급의 중심이 한국·글로벌 주식 ETF에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외인은 판다, 기관·개인은 산다…콜라보 수급 속 콰디르의 롱
지수 차원에서도 수급 구조는 의미 있게 바뀌고 있다. 2026년 초 코스피가 4900선까지 치솟는 과정에서 외국인이 단기간 14조원 규모를 순매도하는 사이, 기관과 개인이 각각 8조3294억원, 4조7913억원을 순매수하며 수급을 떠받쳤다. 개인은 같은 기간 삼성전자 8조5876억원, SK하이닉스 1조2449억원을 순매수하며 국내 증시의 대표주자격인 반도체주를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반면 기관 중에서도 증권사 등 금융투자는 특정 구간에서 코스피를 사실상 ‘견인’했다. 한국거래소 통계에 따르면, 2026년 1월 13~19일 일주일 동안 코스피 시장에서 기관 투자자는 2조6200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개인은 4조2448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개인은 삼성전자를 1조6531억원 순매도하고, 외국인은 SK하이닉스를 1조233억원 순매도했지만, 기관이 이를 대거 받아내면서 지수 상단을 끌어올렸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처럼 외국인 매도가 강화되는 구간마다 기관·개인이 동학개미 시즌2 격으로 매수에 나서는 가운데, 콰디르의 롱 펀드는 중소형주 지배구조 개선을 고리로 ‘제3의 매수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한국 ETF와 국내 기관이 코스피 대형주의 수급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만큼, 행동주의 자금은 재벌 계열사·지주사·비핵심 사업부 분할 이슈가 잠재된 종목으로 유동성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월가의 암살자’가 쏘는 신호…한국 지배구조 개혁의 리트머스 시험지
파미 콰디르의 한국 롱 펀드는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지배구조 딥체인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상법·금융당국 규제, ETF 자금 유입, 외국인 이탈과 기관·개인 동반 매수라는 세 가지 축이 이미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공매도 저격수가 “이 시장은 싸고, 구조적으로 바뀔 것”이라며 3억 달러를 들고 들어오겠다고 선언했다는 점은 상징성이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