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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동산

[이슈&논란] “암호화폐 방치하면 테러 공범”... 마크롱의 ‘크립토 규제 빅뱅’ 경고가 의미하는 것

 

[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파리에서 열린 제5회 ‘테러에 돈은 없다(No Money for Terror)’ 국제회의에서 암호화폐를 사실상 ‘제2의 조세·규제 피난처’로 지목하며 강도 높은 글로벌 규제를 촉구했다.

 

그는 “신흥 대륙 전체를 규제 밖에 방치한다면 우리는 테러와 조직범죄의 공범이 되는 것”이라며, 암호자산을 둘러싼 새로운 ‘와일드 웨스트(Far West)’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규제 없는 신흥 대륙은 테러 공범”이라는 메시지


마크롱은 프랑스가 2026년 G7 의장국을 맡은 가운데, 파리 베르시 재무부 청사에서 열린 제5차 ‘No Money for Terror’ 각료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연설을 통해 암호화폐를 테러자금 조달과 조직범죄의 최전선 리스크로 규정했다. 프랑스 외무부와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번 회의에는 약 60~90개국의 대표단과 20여 개 국제기구가 참석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글로벌 기준 설정을 겨냥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그는 암호자산이 “익명성에 의존해 불투명성을 조장하고, 우리가 세워온 모든 규칙을 우회하는 거대한 수단이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암호자산 주변에 범죄자와 테러리스트에게 기회가 되는 환경이 형성되도록 내버려 두지 말자”며, 규제 사각지대를 용인하는 국가들은 결국 “사실상의 공범(complicité de fait)”이 된다는 강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G7 무대에서 커지는 ‘크립토 테러 자금’ 경계심


이번 발언의 파장은 단지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같은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3월 출범시킨 ‘이코노믹 퓨리(Operation Economic Fury)’의 성과를 소개하며, 이란 정권 및 연계 네트워크와 관련된 암호화폐 자산 약 5억 달러를 압수했다고 공개했다. 이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개 수치였던 3억4,400만 달러 규모 동결 건을 훌쩍 상회하는 금액으로, 제재 회피 수단으로서 암호화폐가 이미 ‘국가급 타깃’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미 재무부와 관련 보도에 따르면 이 가운데 최소 3억4,400만 달러 상당은 스테이블코인 USDT(테더) 동결 조치에서 나왔고, 주로 트론(Tron) 네트워크 상의 지갑들이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베센트는 “온체인 투명성과 중앙화 스테이블코인 구조를 결합해 이란 연계 자금을 추적·차단했다”고 평가하며, 유럽을 포함한 파트너 국가들에 이란의 그림자 금융망(shadow banking network)에 대한 공조 강화를 촉구했다.

 

홍콩의 폴 찬 모포 재무장관 역시 같은 자리에서 “각 관할당국이 디지털자산 플랫폼에 적절한 규제를 도입하고, 국경 간 불법 자금 추적에 블록체인 분석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해, 아시아 주요 금융허브도 규제 공조 전선에 올라탔음을 시사했다.

 

블록체인 위크서 ‘친크립토’ 외치던 마크롱, 왜 톤을 바꿨나


눈에 띄는 대목은 불과 한 달 전, 마크롱이 파리 블록체인 위크에서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유로, EU의 MiCA(암호자산 시장 규제 프레임워크)를 언급하며 프랑스를 유럽의 디지털 금융 허브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당시 그는 블록체인과 암호자산이 “유동성 개선과 국경 간 결제 비용 절감 등 상당한 혁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며 산업 육성과 규제의 균형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No Money for Terror’ 연설에서는 “이제는 경제정책의 선택이 아니라 대테러의 책무”라는 프레이밍으로 한층 강경한 메시지를 던졌다.

 

현지 암호화폐 전문매체들은 이번 발언을 “주요 유럽 정상 가운데 가장 직접적으로 암호자산 업계를 겨냥한 정치 신호”라고 평가한다. 특히 그는 규제의 초점을 익명성·가명성(pseudonymity) 기능 차단, 테러·조직범죄와의 “명확히 식별된 연계”에 대한 정보 공유, 그리고 테러 해방 지역의 경제·행정 정상화를 통한 재점화 방지라는 세 가지 축으로 구조화했다.

 

이는 단순한 자금세탁방지(AML) 수준을 넘어, 암호자산 구조 자체의 설계와 국가 간 수사·정보 협력 체계까지 겨냥한 접근으로 풀이된다.

 

암호화폐, 정말 테러 자금의 ‘게임체인저’인가

 

그렇다면 실제 데이터는 어떨까. EU 테러대응 조정관 및 관련 보고들에 따르면, 테러단체들의 자금 조달에는 여전히 현금, 비공식 송금망(하왈라), 기존 은행 계좌, 무역 기반 자금세탁(TBML) 등이 주요 수단으로 남아 있다. 암호화폐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지만, 익명성이 강화된 코인(프라이버시 코인), 믹서(mixer), 탈중앙거래소(DEX) 등을 통해 소규모·고빈도 자금이동에 활용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재무부와 글로벌 분석업체 자료를 종합하면, 현재까지 적발·동결된 이란 연계 암호화폐 자산 약 5억 달러는 전통 금융 시스템에서 이루어지는 수십억·수백억 달러 규모의 제재 회피 흐름과 비교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G7과 FATF가 암호자산을 ‘우선순위 리스크’로 올려놓는 이유는, 속도·국경 초월성·자금추적 난이도가 테러·제재 회피 시나리오에서 전략적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테러가 ‘비대칭 전쟁’이듯, 암호자산은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비대칭 금융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규제 피난처 압박과 한국에 주는 시그널


마크롱의 발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새로운 규제 피난처(regulatory havens)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고다. 그는 “전통 금융시장의 조세·규제 피난처를 정리하는 데 수년이 걸렸는데, 암호자산에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G7 및 FATF 기준에 맞지 않는 완화적·방임적 암호화폐 규제 체계에 대해 향후 금융·외교적 압박이 수반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미 EU는 MiCA를 통해 발행자·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등록·자본규제, 시장남용 방지, 소비자 보호, AML·CFT 의무를 제도화하고 있고, 미국도 이란 사례처럼 제재 대상 지갑에 대한 스테이블코인 동결, 거래소·지갑업체에 대한 2차 제재 등 ‘암호자산 제재 도구 상자’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여기에 마크롱이 던진 “공범”이라는 단어는, 규제 강도가 낮거나 집행이 느슨한 국가들이 향후 국제무대에서 방어하기 어려운 도덕적·정치적 압박론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역시 특금법,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FATF 권고안 이행 등을 통해 규제 체계를 정비하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 디파이(DeFi), 프라이버시 코인, 믹서 서비스 등 ‘익명성 증폭 수단’에 대한 규율은 여전히 과도기적이다. 이 지점에서 마크롱의 메시지는 “혁신과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규제 공백을 방치한다면, 곧 국제 공조의 압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힐 수 있다.

 

‘테러 프레임’이 가져올 글로벌 규제의 다음 단계


결국 마크롱의 파리 연설은 암호자산 논의를 ‘투자·혁신’ 프레임에서 ‘테러·안보’ 프레임으로 전환시키는 정치적 사건이다. 이는 규제 당국에게는 강력한 정당성을 제공하는 대신, 산업계에는 “규제 협력에 참여하지 않는 플레이어는 곧 테러와 조직범죄의 편에 선 것”이라는 도덕적 낙인을 동반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5억 달러 규모 이란 연계 암호화폐 압수 사례에서 보듯, 온체인 분석과 중앙화 스테이블코인·거래소의 협력만으로도 상당한 수준의 추적·차단이 가능하다는 점은 ‘암호화폐=추적 불가능한 검은 돈’이라는 단순한 공포론 역시 수정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향후 관건은, 각국이 테러·제재 회피 리스크를 억제하면서도 합법적 금융 혁신과 프라이버시 보호를 어느 수준까지 허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기준을 누가 설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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