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스페이스X의 초대형 IPO가 가시권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머스크 제국’의 대표 상장 창구였던 테슬라를 둘러싼 투자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한국 개인투자자들은 지난 한 달간 테슬라를 6억8,200만 달러(약 1조300억원) 순매도하며 사실상 ‘머스크 갈아타기’를 예고했고, 시장에선 테슬라–스페이스X 합병 시나리오와 이에 따른 보잉의 ‘최대 피해자’ 가능성까지 겹쳐 글로벌 항공·우주 패러다임의 변화가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개미, 테슬라서 1조원 넘게 발 빼다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 이른바 ‘서학개미’들은 최근 한 달간 테슬라를 6억8,193만 달러(약 1조300억원) 순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3억3,008만 달러가 가장 최근 1주일에 집중돼, 사실상 ‘패닉성 이탈’에 가까운 매도세가 연출됐다. 테슬라 관련 국내 상장 ETF에서도 동반 자금 유출이 발생해 ACE 테슬라밸류체인액티브 ETF에서만 같은 기간 1,242억원이 빠져나갔다.
이는 불과 1~2년 전까지 한국 투자자들이 테슬라를 해외주식 포트폴리오의 ‘절대 1순위’로 올려놨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한국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2026년 3월 24일부터 4월 23일까지 한 달간 한국 투자자들은 테슬라를 2억7,877만 달러(약 4,133억원) 순매수하며 해당 기간 해외주식 순매수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2024~2025년에도 한국 투자자들의 테슬라 순매수는 월간 10억 달러를 넘나들며 글로벌 개인투자자 중 손꼽히는 ‘테슬라 팬덤’을 형성했었다.
BNP파리바 애널리스트 제임스 피카리엘로는 “전 세계 소액 투자자들이 테슬라 지분의 약 40%를 보유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스페이스X IPO가 “친머스크 성향의 소액 투자자 기반을 분산시켜 테슬라 주가에 구조적인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룸버그 역시 “수년간 머스크의 비전에 투자하는 유일한 상장 수단은 테슬라였다”며, "스페이스X 상장이 테슬라 주주에게 새로운 핵심 리스크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주가도 이를 반영하고 있다. 테슬라는 올해 들어 11% 이상 밀렸고, 나스닥에 스페이스X가 티커 ‘SPCX’로 IPO 서류를 제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5거래일 동안 추가로 8% 하락했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선 “머스크 프리미엄”이 더 이상 테슬라 한 종목에 집중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매도로 직결된 셈이다.
스페이스X, 시가총액 2조 달러 겨냥한 ‘괴물 IPO’
시장의 시선은 이제 테슬라에서 스페이스X라는 ‘새로운 별’로 이동하고 있다. 싱가포르 기반 투자 플랫폼 고트레이드와 글로벌 투자정보 사이트 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스페이스X는 나스닥 상장을 앞두고 1조7,500억~2조 달러 수준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빠르면 6월 12일 ‘SPCX’라는 티커로 데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750억~800억 달러(약 1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조달해, ‘역사상 최대 규모 IPO’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는 전통적인 빅테크·우주·방산 기업과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밸류에이션이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2조 달러 기준 스페이스X의 예상 매출 대비 주가매출비율(PSR)은 90~120배 수준까지 치솟을 수 있는데, 이는 과거 고평가 논란을 받았던 성장주들보다도 한 단계 높은 ‘우주 프리미엄’이라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선 위성 인터넷(스타링크), 발사체(팰컨·스타십), 국방·정부 프로젝트 등에서 이미 사실상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해 가고 있다는 점이 투자 매력을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국 투자자에게 스페이스X는 그동안 비상장 프리미엄 탓에 접근이 쉽지 않은 자산이었다. 일부 해외 비상장 플랫폼이나 사모펀드를 통해 제한적으로만 투자 창구가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상장이 현실화되면 한국 개인투자자도 ‘머스크 제국의 원조 코어’에 직접 자금을 배분할 수 있게 되면서, 테슬라·스페이스X 간 자금 재배치(리밸런싱)는 불가피해 보인다.
“2027년 테슬라–스페이스X 합병설”…韓 투자자에겐 세금 폭탄
이번 IPO 기대감과 함께 또 하나의 변수가 된 것은 테슬라–스페이스X 합병 가능성이다. 블룸버그는 2026년 1월 보도에서 스페이스X가 테슬라 또는 인공지능 스타트업 xAI와의 합병 옵션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이어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3월 리포트와 방송 인터뷰에서 “2027년까지 두 회사가 어떤 형태로든 합쳐질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발표된 ‘테라팹(Terafab)’ 반도체·AI 칩 제조 시설이 양사 통합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는 내용이 시장에 퍼져 있다.
합병설에 기름을 부은 단서는 미국 네바다주에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V)들이다. 현지 법인 등기 서류에서 ‘X-A 머저 서브(Merger Sub)’와 ‘X-S 머저 서브’라는 이름의 페이퍼컴퍼니가 잇따라 확인됐고, 스페이스X 최고재무책임자(CFO) 브렛 존슨이 등기 임원으로 올라 있다.
통상 대형 M&A에서 활용되는 구조라는 점 때문에, 시장에선 “머스크식 빅딜의 초석”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다만 양사 모두 공식적인 합병 추진 계획은 부인하고 있어, 현재까지는 ‘고위험 시나리오’ 수준의 가설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가설만으로도 세금 리스크가 현실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한국 세법상 해외주식이 포함된 주식교환·합병은 ‘간주 양도’로 처리돼, 실질적으로 매도하지 않았더라도 미실현 이익에 대해 최대 22%(지방세 포함)의 양도소득세가 즉시 부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를 장기 보유해 큰 평가차익이 쌓인 투자자일수록, 향후 합병 시 예상치 못한 세금 폭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잉, ‘머스크 통합 법인’ 등장 시 최대 피해자
스페이스X 상장과 테슬라–스페이스X 합병 시나리오는 전통 항공·우주산업의 대표주자인 보잉에도 직접적인 위협 요인이다. 미국 금융매체 24/7 월스트리트와 야후파이낸스 등은 최근 분석 기사에서 “머스크가 두 회사를 통합할 경우 보잉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슬라의 수직계열화된 제조 역량과 인공지능(AI)·로봇 기술, 스페이스X의 로켓 발사·위성 네트워크·국가안보우주(NSSL) 사업 역량이 결합하면, 유인 캡슐(보잉 스타라이너 vs 스페이스X 드래곤), 위성 생산·운영(전통 통신위성 vs 스타링크), 군·정보기관 발사 수주 등에서 보잉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질 수 있다는 논리다.
보잉은 2026년 1분기 매출 222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14% 성장했지만, 상업용 항공기 부문에서는 여전히 영업 손실과 마이너스 잉여현금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잇단 기체 결함과 안전성 논란으로 브랜드 신뢰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방산·우주 부문마저 ‘머스크 통합 법인’에 잠식될 경우 재무 복원력에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다.
딥워터 에셋 매니지먼트의 진 먼스터와 일론 머스크 전기 작가 월터 아이작슨도 인터뷰와 강연 등을 통해 “10년 안에 테슬라–스페이스X 통합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머스크 프리미엄’ 분산의 시대…한국 투자자의 숙제
결국 스페이스X IPO와 합병설, 보잉 리스크까지 맞물린 이번 변동성의 핵심은 ‘머스크 프리미엄의 분산’이다. 그동안 머스크의 장기 비전에 베팅하고 싶었던 전 세계 개인투자자들은 사실상 테슬라라는 한 종목에만 올라탈 수 있었다. 이제 우주·위성·방산·AI·로봇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분화되면서, 테슬라–스페이스X–xAI–스타링크 등 머스크 생태계 내부에서도 자본 배분의 세밀한 전략이 요구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여기에 ‘세금’이라는 독특한 제약이 더해진다. 스페이스X 상장 이후 테슬라에서 일부 차익 실현 후 스페이스X로 갈아타는 전략, 장기적 합병 가능성을 전제로 한 포트폴리오 조정, 국내 세제 혜택과의 조합 등 여러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