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폴리마켓(Polymarket)이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Nasdaq Private Market·NPM)과 손잡고 비상장 기업 이벤트에 직접 연동된 예측 시장을 출범시키면서, 예측 시장(prediction market)이 ‘정치·스포츠’에 머물던 주변부 놀이판에서 비상장 자산을 겨냥한 새로운 자산군으로 진화하고 있다.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이 ‘공식 판정관’으로 들어왔다
폴리마켓은 5월 19일(현지시간)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의 데이터를 활용해 비상장 기업의 핵심 이벤트에 베팅하는 신규 마켓을 선보였다고 밝혔다. NPM은 나스닥 그룹 산하 비상장 주식 거래·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폴리마켓의 새 상품에서 ‘공식 결과 데이터 제공자(source of truth)’ 역할을 수행한다.
새로 열린 시장의 구조는 단순하다. 오픈AI, 앤트로픽, 스페이스X 등 비상장 스타트업의 특정 시점까지의 기업가치(Valuation), IPO(기업공개) 시기, 세컨더리(비상장 지분) 거래 발생 여부와 같은 이벤트를 예/아니오(또는 다중 선택) 형태로 거래하게 하고, 만기 시점의 판정값은 NPM이 보고하는 ‘NPM 가격(NPM Price)’과 공식 공시 정보를 기준으로 확정한다.
실제 폴리마켓에 개설된 앤트로픽 가치평가 시장은 “2026년 12월 31일까지 앤트로픽의 기업가치가 특정 구간에 도달하는지 여부를, Nasdaq Private Market, LLC가 보고하는 NPM Price로 해석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오픈AI 관련 시장도 동일한 룰을 따른다.
그동안 예측 시장이 뉴스 기사, 사설 통계, 애매한 ‘보도 기준’ 등에 의존해 분쟁 소지를 키웠던 것과 달리, 이번 파트너십은 기관급 가격 데이터를 정산 기준으로 가져오며 규칙을 대폭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비상장 시장의 ‘마지막 프런티어’에 소액 투자자들 입장하다
이번 시도는 “비상장 시장은 기관·고액자산가의 놀이터”라는 오랜 구조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에 따르면 전 세계 수많은 유니콘과 데카콘이 수년간 비상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일반 투자자가 이들의 밸류에이션에 직접 노출될 수 있는 창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폴리마켓 CEO 셰인 코플란(Shayne Coplan)은 여러 인터뷰에서 비상장 시장 접근을 “개인 투자자들이 한 번도 접근할 수 없었던 금융 시장의 마지막 개척지(last frontier)”라고 표현해 왔고, 이번 상품 역시 이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 플랫폼 측은 “새로운 마켓이 리테일(trader)에게는 비상장 자산에 대한 간접 노출 수단을, 기관투자가에게는 시장 기반 가격발견 도구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폴리마켓에는 스페이스X의 IPO 시기를 두고 거래하는 시장이 열려 있으며, 트레이더들은 2026년 12월 31일까지 상장될 확률을 약 98%로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앤트로픽과 오픈AI의 상대적인 기업가치를 둘러싼 시장에서도 “어느 쪽이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먼저 기록할 것인가”를 놓고 수요가 형성되고 있는데, 이제 이 결과 역시 NPM의 가격 정보가 판정 기준이 된다.
ICE의 20억달러 베팅, 월가가 던진 신호
이번 나스닥 제휴는 폴리마켓의 ‘체급 업그레이드’ 과정에서 나왔다. 인터컨티넨탈 익스체인지(ICE·뉴욕증권거래소 모회사)는 2025년 10월 폴리마켓에 최대 2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히며, 블록체인 기반 예측 시장을 기업가치 8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했다. 이후 2026년 3월 말까지 약 6억달러 현금 투입을 완료하며 초기 약정된 20억달러 커밋먼트를 채웠고, 폴리마켓 지분 약 20%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ICE의 투자 논리는 ‘베팅 플랫폼’이 아니라 ‘데이터 사업’에 가깝다. ICE는 투자 발표 당시부터 폴리마켓의 이벤트·확률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에 배포하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밝혔고, 2026년 2월에는 폴리마켓의 확률 데이터를 구조화해 제공하는 ‘Signals and Sentiment’ 도구를 론칭했다.
20년 연속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연간 99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ICE가 규제 리스크가 큰 예측 시장에 20억달러를 실어준 것은, 군소 크립토 스타트업이 아니라 “월가 데이터 인프라의 일부”로 편입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규제 측면에서도 폴리마켓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인가 파생상품 거래소 QCEX를 1억1200만달러에 인수한 뒤 2025년 하반기 미국 내 합법 영업을 재개했다는 점에서, 단순 해외 역외 플랫폼과는 다른 트랙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측 시장, ‘정치 놀이터’에서 데이터 인프라로
시장 통계에 따르면 예측 시장 전체는 2026년 들어 사상 최대 거래를 기록했다. 한 업계 조사에서는 2025년~2026년 누적 기준 주요 온체인 예측 플랫폼 가운데 폴리마켓이 약 215억달러, 경쟁사 칼시(Kalshi)가 약 171억달러 규모의 명목 거래액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한다.
규제·정책 분야만 놓고 봐도 2026년 5월 현재 100개가 넘는 시장이 개설돼 있으며, 개별 마켓의 거래 규모가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 가운데 비상장 기업 이벤트는 이제 막 열린 신규 섹터지만,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이라는 ‘기관급 판정관’을 등에 업으면서 전통 금융과의 접점이 가장 빠르게 넓어지는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나스닥 NPM은 이미 다수 비상장 유니콘의 주식 매각·세컨더리 거래를 중개하며 기관투자가·임직원 지분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상장 밸류에이션의 ‘군중 지표’가 된다면
이번 폴리마켓·나스닥 제휴가 던지는 함의는 크다.
첫째, 비상장 자산의 가격발견 메커니즘이 기관 투자자 중심의 폐쇄형 구조에서, 군중의 확률 평가와 기관 데이터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구조로 이동할 가능성이 열렸다. 둘째, 예측 시장이 정치·스포츠를 넘어 비상장 주식이라는 새로운 자산 클래스에 발을 들이면서, 향후 규제당국이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라이선스로 관리할지라는 법·제도 이슈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 ICE가 폴리마켓 데이터를 기관용 신호로 재포장해 배포하기 시작했고, 나스닥 프라이빗 마켓이 비상장 이벤트의 ‘판정 기준’을 제공하는 구조가 자리 잡는다면, 비상장 유니콘의 밸류에이션과 IPO 시기에 대한 “시장 공감대”를 파생상품·데이터 인프라 수준에서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길이 열린다.
폴리마켓이 출발은 크립토 기반 예측 플랫폼이었지만, 이번 딜 구조를 보면 점점 더 “실시간 군중 확률을 수집·정제해 월가에 판매하는 데이터 기업”으로 포지셔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예측 시장의 위상 자체가 바뀌는 변곡점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자본시장·핀테크 업계 역시 비상장 플랫폼, STO(증권형 토큰), 크라우드펀딩 등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비상장 이벤트에 대한 집단지성 확률”을 어떻게 금융상품·데이터로 편입시킬지에 대한 논의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감안하면, 폴리마켓과 나스닥의 이번 실험이 글로벌 자본시장에 던지는 파장은 단순한 ‘새로운 베팅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