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마이클 잭슨의 사생활을 다룰 때 언론이 가장 자주 꺼내는 장면은 침팬지와 함께 있는 모습이다. 1980년대 중반, 그는 버블스(Bubbles)라는 이름의 침팬지를 반려 동물로 키우며, 투어와 촬영에 동행하게 했다. 버블스는 기자회견장과 공연 준비 현장에 등장하며 일종의 부캐 같은 존재가 되었고, 각종 다큐멘터리와 기사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됐다.
버블스는 네버랜드의 일부였다.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네버랜드 목장은 놀이공원과 동물원, 개인 저택이 결합된 복합 공간으로, 놀이기구, 동물, 영화관, 공연장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라마·호랑이·코끼리 등 각종 동물이 이곳에서 함께 지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린 시절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고 호소했고, “나에겐 어린 시절이 없었다”는 그의 육성이 다양한 미디어에서 소개된다. 아버지 조 잭슨은 어린 아들에게 강압적인 훈육과 공연을 강요했고, 이는 그의 트라우마로 평생 남았다.
영화에서도 조셉은 마이클에게 "넌 주먹코라 못생겼다"고 하는데, 이 말에 마이클은 상처를 받아 심각한 콤플렉스됐으며, 나중에 코 성형수술을 하게 만든다.
여러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대한 공포와 상처를 반복적으로 언급했고, 영화 ‘마이클’ 역시 “아버지로부터의 해방 서사”를 중심축 중 하나로 다루고 있다. 마이클 잭슨보다 잭슨의 아버지 조 잭슨이 더 오래 살았다. 마이클 잭슨은 사망 당시 유서에서 재산 비율을 어머니 캐서린 40%, 잭슨의 세 자녀에게 40%, 그리고 나머지는 자선 기관에 유산을 남겼다. 아버지 조잭슨에게는 유산을 넘긴다는 말이 없었다.
즉 자신을 ‘피터팬’으로 동일시하며, 자라기를 거부하는 아이의 상징을 네버랜드에 구현했다. 이곳은 단순한 호화 저택이 아니라, 피터팬을 자처한 그가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세계”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공간이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마이클 잭슨은 “자본주의 하에서 유년기를 완전히 빼앗긴 노동 아동의 귀환”이다. 그는 어른이 된 뒤에도 자라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동물과 아이들을 곁에 두며, 유년기의 시간성을 현실 공간에 고정시키려 했다.
의미와 해석을 잠시 접어두더라도, 사실만 놓고 보면 마이클 잭슨은 ▲침팬지 버블스를 포함한 여러 동물과 함께 살았고 ▲놀이공원·영화관·동물원을 한 공간에 모은 네버랜드를 운영했으며 ▲네버랜드는 어린이들을 초대하는 각종 자선 행사 무대로도 활용됐다.
그는 한국 내한 당시에도 2.5톤 트럭에 장난감을 가득 싣고 소외계층 어린이를 찾아가는 일정을 소화했고,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를 지원해 5명의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기록들을 모아 보면, “침팬지와 함께 살며,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결합된 사적 왕국을 꾸리고, 그 공간을 어린이들을 위한 이벤트 장소로 활용한 세계적 팝스타”라는 설명은 팩트다. 의미와 평가는 보는 이의 몫이지만, 최소한 네버랜드는 단순한 괴벽이 아니라, 구체적인 공간으로 구현된 사례였다.
침팬지 버블스를 비롯해 라마, 호랑이, 코끼리와 함께 살았던 네버랜드는, 사치와 기행의 무대라기보다 “어린이와 동물이 함께 노는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상상력이 구체화된 공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상품’처럼 소비됐던 자신과 달리, 말 못 하는 존재들을 보호하고 돌보려는 태도에는, 폭력과 통제를 경험한 사람이 취약한 생명에 투사하는 연민이 겹쳐져 있다.
그가 동물을 곁에 두고, 그들을 친구이자 가족으로 호명했던 행위는, 결국 효율과 성과로 환산되지 않는 생명과 시간을 지키고 싶었던 몸부림으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