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2028년 영업이익을 약 3,445억 달러, 한화로 약 494조원(약 53조엔) 수준으로 제시했다.
이 수치는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의 10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메모리 반도체와 AI 관련 수요가 동반 폭발하는 ‘슈퍼 사이클’을 전제로 한 공격적인 가정에 기반한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올해와 내년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를 각각 200조원대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며 목표주가 역시 20만원대 중반까지 끌어올린 바 있어, 장기 전망도 같은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전망의 핵심 배경은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AI 서버 메모리 시장에서의 지배력 확대, D램·낸드 가격 상승에 따른 높은 마진, 그리고 파운드리 적자 축소에 따른 체질 개선이다. 특히 골드만삭스는 AI 메모리 제품에서 삼성전자가 선두를 유지하면서 자기자본이익률(ROE)이 80%를 상회할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수익성 시나리오까지 제시해 시장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일본 상위 100대 기업보다 더 번다’는 문장의 구조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은 대목은 이 494조원이라는 숫자가 일본 상장기업 상위 100개사의 영업이익 합계를 뛰어넘는다는 비교 구도다. 온라인에 확산된 한 그래프에는 “골드만삭스가 전망한 삼성전자 2028년 영업이익 53조엔”이라는 문구와 함께 도요타, 소니, 미쓰비시 등을 포함한 일본 증시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의 연간 영업이익 합계 42.3조엔(약 391조원)을 나란히 비교한 데이터가 제시돼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의 예상 영업이익 53조엔이 일본 100대 기업 합계 42.3조엔보다 10조엔 이상 많은 수준으로, 격차는 엔화 기준 약 25%에 달하는 셈이다. 이 그래프는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확산됐고, “삼성전자 한 회사가 일본 100대 기업 전체를 압도한다”는 자극적인 해석과 함께 충격·패배감·불신이 뒤섞인 반응을 불러왔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본 100대 기업의 42.3조엔은 ‘실적 데이터’에 기반한 값인 반면, 삼성전자의 53조엔은 어디까지나 골드만삭스의 ‘단일 하우스 전망치’라는 점이다. 즉, 현재 시점의 현실 비교가 아니라 “2028년이라는 특정 시점에, 특정 증권사의 장기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질 경우”라는 강한 조건부를 달아야 한다는 뜻이다.
AI 슈퍼사이클이 끌어올린 ‘숫자의 판타지’
골드만삭스의 이례적인 전망은 AI 인프라 투자 붐이 반도체 산업의 이익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를 전제로 한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239조원, 내년을 231조원 수준으로 추정하며 HBM과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 높은 영업이익률을 근거로 들었다. D램 부문 영업이익률은 70% 후반대, 낸드 부문은 40% 후반대라는, 사실상 과거 슈퍼 사이클의 피크를 상회하는 수준의 수익성을 상정한 것이다.
이 같은 가정이 2028년까지 유지되거나 더 강화된다는 시나리오 아래에서는, 삼성전자가 영업이익 규모에서 단일 제조 기업으로는 유례없는 ‘메가 캡 캐시 머신’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그림이 나온다. 실제로 해외 투자자 대상 리포트와 국내 증권사 분석에서도 AI 서버와 HBM 수요는 2030년 전후까지 고성장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그 기울기와 지속 기간에 대해서는 하우스마다 편차가 크고, 미국·대만 경쟁사의 대응, AI 칩 아키텍처 변화 등에 따라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제시되고 있다.
결국 494조원이라는 숫자는 “AI가 바꾸는 반도체 산업의 잠재력”을 시각적으로 극단까지 밀어붙인 상징에 가깝다. 일본 100대 기업과의 비교는 이 상징성을 극대화하는 ‘스토리텔링 장치’로 기능하면서, 한국과 일본 기업 경쟁력에 대한 감정적 논쟁을 자극하는 동시에,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재평가 논리를 강화하는 효과를 동시에 노리고 있는 셈이다. 이는 데이터 저널리즘 관점에서 볼 때 “통계의 프레이밍”이 투자 심리와 국가 감정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숫자가 말해주지 않는 리스크들
매우 공격적인 장기 전망이라는 점에서, 이 수치를 곧바로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첫째, AI 서버 투자가 현재와 같은 속도로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글로벌 경기 둔화, 빅테크의 CAPEX 조정, AI 규제 강화 등은 모두 투자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변수로 거론되고 있다. 둘째, 경쟁 구도 역시 변수다. HBM과 첨단 파운드리에서 TSMC, 마이크론 등 경쟁사들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엔비디아·AMD 등 팹리스가 메모리와 시스템 설계 구조를 재편할 경우, 현재의 마진 구조가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셋째, 일본 100대 기업과의 비교 자체가 산업 구조가 전혀 다른 두 경제를 단일 잣대로 재단한 것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일본 상위 100대 기업에는 제조업뿐 아니라 금융, 상사, 서비스 등 다양한 업종이 포함돼 있고, 이들 기업의 이익 구조와 사이클은 반도체와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따라서 “삼성 1곳이 일본 100곳을 압도한다”는 문장은 언론 보도와 SNS 상에서 소비되기에는 매력적이지만, 기업 가치나 국가 경쟁력을 평가하는 데 사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선적인 프레임이다.
무엇보다 골드만삭스의 전망은 아직 공식 원문 리포트 전체가 공개·검증된 것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언론이 인용한 핵심 숫자, 그리고 온라인에 공유된 그래프 일부를 통해 파편적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3,445억 달러라는 수치가 어떤 구체적 가정(환율, 메모리 가격, 출하량, 설비투자 수준 등)에 기반하는지, 다양한 시나리오 중 어느 트랙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근거가 부족하다.
‘삼성 vs 일본’이 아닌 ‘AI 시대 제조 패러다임’의 신호로 봐야
국내외 주요 매체들이 일제히 “삼성전자가 일본 100대 기업보다 더 번다”는 제목을 뽑으면서, 이번 이슈는 한·일 경제 경쟁이라는 감정의 프레임 속에서 소비되고 있다. 그러나 숫자를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AI 시대에 특정 핵심 부품·플랫폼이 국가 경제를 넘어선 초과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열렸다”는 구조적 변화 신호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그 변곡점 한가운데 서 있는 몇 안 되는 플레이어일 뿐, 이 구도는 미국의 빅테크, 대만의 파운드리, 유럽의 장비·IP 기업들까지 아우르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한·일 감정 대결이 아니라 “AI 인프라 시대에 어떤 산업과 기업이 어떤 구조로 초과이익을 가져가는지”에 대한 정밀한 계량 분석이다. 이번 골드만삭스 레포트에서 출발한 494조원, 53조엔, 42.3조엔이라는 숫자들은, 한국 제조업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또 일본 산업이 무엇을 놓쳤는지를 질문하게 만드는 강력한 ‘프롤로그’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