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편집자주> 유튜브, 인스타 등에서 활동하는 인플루언서들이 '협찬을 받지 않았다', '광고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보이기 위해 "내 돈 주고 내가 샀다"라는 뜻의 '내돈내산'이라는 말이 생겼다. 비슷한 말로 "내가 궁금해서 결국 내가 정리했다"는 의미의 '내궁내정'이라고 이 기획코너를 명명한다. 우리 일상속에서 자주 접하는 소소한 얘기거리, 궁금증, 호기심, 용어 등에 대해 정리해보는 코너를 기획했다.
미국 국방부가 ‘최후의 핵 억지력’으로 불리는 전략핵잠수함의 위치를 스스로 공개하는 이례적 조치를 단행했다. 이란과의 종전·휴전 협상이 사실상 좌초 국면으로 접어든 시점에 맞춰 핵잠수함 USS 알래스카(SSBN-732)의 지브롤터 입항을 발표한 것으로, 전통적인 핵 억지 교리에서 벗어난 공개적 과시라는 점에서 그 의도와 파장이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휴전 협상이 결렬되는 가운데 이란을 향해 계산된 압박 신호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왜 핵잠수함은 ‘보이지 않아야’ 하는가
미국의 핵전력은 지상 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 그리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전략핵잠수함으로 구성된 이른바 ‘핵 3축 체계’로 운용된다. 이 가운데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은 바닷속에서 적의 탐지를 피해 은밀하게 작전하며, 핵전쟁 발발 시에도 살아남아 보복공격을 수행하는 ‘제2격(second strike)’ 전력으로 설계돼 있다.
핵 억지력의 핵심은 상대가 “어디 있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언제 날아올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만드는 불확실성이다. 미국 언론과 국방 관련 문헌이 전략핵잠을 “최후의 핵 억지력”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위치가 노출되는 지상 ICBM 사일로, 방공망에 노출될 수 있는 전략폭격기와 달리, 심해 속 핵잠은 상대의 선제타격으로도 완전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생존성이 가장 높은 축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미국은 통상 전략핵잠수함의 구체적 위치와 기항 일정, 작전 해역을 최고 수준 군사기밀로 분류해왔고, 실시간에 가까운 형태로 위치를 공개하는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핵잠의 좌표가 공개되는 순간, 억지력의 상당 부분을 뒷받침해온 ‘불가시성’이라는 자산이 잠정적으로 상실되기 때문이다.
USS 알래스카, 지브롤터에서 모습을 드러내다
이번에 공개된 USS 알래스카는 길이 약 170m, 수중배수량 1만8000t 안팎의 오하이오급 전략핵잠수함으로, 최대 20기의 트라이던트 II D5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트라이던트 II D5의 사거리는 1만2000km 이상으로 평가되며, 이론적으로 지중해 인근에서 이란 본토를 포함한 중동 전역은 물론 유라시아 상당 부분이 타격권에 들어간다.
미 해군 제6함대는 이 핵잠수함이 5월 10일(현지시간) 스페인 남부 해안 인근 영국령 지브롤터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보도자료와 사진까지 곁들여 공개했다. 평소 수면 위로의 노출 자체를 최소화하는 전략핵잠이 지브롤터 해협을 통과하며, 영국 해군 지브롤터 전대의 경비정과 왕립해병대 함대 방호부대의 호위를 받는 장면이 언론과 SNS에 포착됐고, 항만 주변에는 반경 200m의 접근 금지 구역이 설정됐다.
미군 당국이 “미국의 역량과 유연성, 나토 동맹에 대한 공약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문구까지 담아 공식 확인에 나선 만큼, 은밀성보다 ‘보여주기’에 방점이 찍힌 연출이었다.
지브롤터는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좁은 관문으로, 중동–유럽–대서양을 연결하는 해상 교통과 군사 작전의 천혜의 요충지로 꼽힌다. 미국이 이 지점에서 전략핵잠 존재를 일부러 드러낸 것은 “중동 어느 방향으로든 바로 투사 가능한 핵 전력이 이미 배치돼 있다”는 메시지를 공간적으로 시각화한 셈이다.
‘보이지 않아야 할 무기’를 왜 일부러 노출했나
이번 조치는 시점에서도 의도가 드러난다. 이란이 파키스탄을 매개로 전쟁배상금, 호르무즈 해협 완전 주권 인정, 해상 봉쇄 해제, 대이란 제재 전면 해제 등을 포함한 수정 종전안을 전달한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를 “전혀 수용할 수 없다(TOTALLY UNACCEPTABLE)”고 공개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휴전 상태를 “극도로 위태로운 상태(massive life support)”라고 표현하며 이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70척이 넘는 유조선이 이란 항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상 봉쇄를 유지하는 가운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방어를 명분으로 소형 잠수함 전력을 전진 배치하자 이에 맞불을 놓는 형식으로 핵잠수함 존재를 공개했다. 이미 3월에는 미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이란 군함이 격침된 것으로 전해지는 등, 실질적 해상 교전이 발생한 상태에서 핵잠 노출은 분쟁이 ‘핵 억지 단계’로 비약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배경 속에서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는 “핵잠수함 위치 공개는 극히 이례적이며, 이란을 겨냥한 군사적·정치적 압박 메시지”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제6함대가 오하이오급 잠수함을 “탐지 불가능한 SLBM 발사 플랫폼, 미국 핵전력 3축 가운데 생존성이 가장 높은 축”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그 위치를 공개한 것은, 평시 억지력 논리(은밀성 중시)에서 위기시 강압 외교 논리(가시성 중시)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된다.
핵잠수함이 감춰져 있을 때 주는 메시지는 “어디선가 보고 있다”라면, 이번처럼 일부러 노출할 때의 메시지는 “지금 여기에 와 있다, 필요한 경우 바로 쓸 수 있다”에 가깝다. 군사전략적으로 보면, 평시에는 은밀성을 통해 상대의 계산을 어렵게 만들고, 위기 국면에서는 제한적 노출을 통해 ‘의지와 능력’을 부각시키는 이중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핵 억지에서 ‘핵 강압’으로의 절묘한 선 긋기
미국은 이번 공개가 “나토 동맹 방어와 역내 안정을 위한 역량 과시”라는 외교적 수사를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란뿐 아니라 주변을 주시하는 중국·러시아 등 전략 경쟁국에도 신호를 보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2022년에도 미 중부사령부는 장거리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의 위치를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와 점점 강경해지는 중국을 동시에 겨냥한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 USS 알래스카 공개 역시 동일한 ‘핵 신호 보내기(play of nuclear signaling)’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방식의 노출은 핵 억지의 안정성을 훼손하고, 위기 관리의 안전판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미 국방부의 핵잠 위치 공개를 두고 “불량국가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 핵전력을 외교 카드처럼 ‘보여주는’ 행위가 오히려 상호 불신과 오판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핵잠의 좌표가 알려지는 순간, 상대는 그 해역 주변의 군사 활동을 과대 해석하거나 선제적 대응에 나설 유인을 가지게 되며, 이는 곧 우발적 충돌과 급격한 확전 리스크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이 ‘보이지 않아야 할’ 전략핵잠수함의 위치를 이 시점에, 이 장소에서, 이 방식으로 밝힌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단순한 기항 일정 공지가 아니라, ‘외교적 인내’에서 ‘명시적 전략적 강압’으로의 체제 전환을 선언하는 고강도 시그널링이다.
이란과 국제사회가 이 메시지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USS 알래스카의 지브롤터 입항은 ‘핵 없는 마무리’를 위한 마지막 압박 카드가 될 수도, 새로운 핵위기 시대의 출발점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