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지구 밖 생명 탐색의 패러다임이 ‘어떤 분자가 있느냐’에서 ‘그 분자가 어떻게 배열됐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2026년 5월 11일자 《네이처 천문학(Nature Astronomy)》에 실린 기디언 요페(Gideon Yoffe)·파비안 클레너(Fabian Klenner) 연구팀의 논문은 아미노산·지방산의 분포 패턴을 통계적으로 읽어 외계 생명 가능성을 가려내는 새로운 ‘무기’를 제시했다. 이 방법은 이미 수집된 데이터에 적용할 수 있고, 화성·유로파·엔켈라두스 탐사 임무에 탑재된 저정밀 기기만으로도 활용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용성이 크다.
생태학에서 가져온 ‘풍부도·균등도’로 분자를 읽다
연구팀은 생태학에서 종(種) 다양성을 측정할 때 쓰는 두 개념, 즉 ‘풍부도(richness, 몇 종이 있는가)’와 ‘균등도(evenness, 각 종이 얼마나 고르게 분포하는가)’를 그대로 분자 세계에 가져왔다. 약 100개에 달하는 기존 데이터셋을 모아, 미생물·토양·현생 생물 샘플부터 화석, 운석, 소행성, 실험실 합성 샘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원을 지닌 시료에 포함된 아미노산·지방산 분포를 정량적으로 비교했다.
그 결과는 뚜렷했다. 생물학적 기원을 가진 시료에서는 아미노산이 비생물적 샘플보다 종류가 더 많고(풍부도↑), 개별 아미노산의 상대 농도도 더 고르게 분포하는 경향(균등도↑)을 일관되게 보였다. 지방산은 정반대 패턴이 나타났는데, 비생물적으로 생성된 지방산이 오히려 더 균등하게 분포하고, 생명체가 개입한 지방산 조성은 특정 사슬 길이·구조에 편중된 불균등 패턴을 그렸다. 요약하면 “아미노산은 생명 쪽이 더 다양·균등, 지방산은 비생물 쪽이 더 균등”이라는 이중 시그널이 통계적으로 검출된 셈이다.
UC 리버사이드 뉴스룸에 실린 파비안 클레너의 표현대로 “생명은 분자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통계를 통해 드러나는 조직 원리까지 만들어낸다”는 명제가 실제 데이터로 뒷받침된 것이다.
공룡 알 껍데기에서도 남는 ‘통계적 지문’
이번 연구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이 통계적 시그널이 상당히 ‘터프’하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잘 보존된 생체 시료뿐 아니라, 오래전 생명 활동의 흔적이 거의 사라졌다고 여겨지는 화석과 심하게 풍화·변질된 샘플까지 포함해 분석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룡 알 껍데기 화석인데, 분자가 상당 부분 분해·변질된 상태에서도 아미노산·지방산 분포에는 여전히 생명 활동이 남긴 패턴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첫째, 화성 표토나 고대 퇴적층처럼 방사선·산화 환경에서 수억 년을 버틴 시료에서도, 개별 분자는 망가졌더라도 통계적 ‘조직감’은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둘째, 유로파·엔켈라두스처럼 얼음 껍질 아래 바다에서 분출된 얼음 알갱이 샘플에도 동일한 분석 틀을 적용해, 보존 상태의 스펙트럼(신선한 생물기원–부분 변질–완전 비생물)을 연속적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기대를 낳는다.
연구진은 UC 리버사이드 및 유럽과학보도(EurekAlert 등)를 통해 “생명–비생명 구분뿐 아니라 보존·변질 정도까지 연속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이것이 화성·유로파·엔켈라두스처럼 ‘낡은’ 시료를 상대해야 하는 행성탐사에서 결정적 장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해상도’ 화성·유로파 장비도 활용 가능한 이유
이번 방법론의 또 다른 강점은 기술적 문턱이 낮다는 점이다. 요페·클레너 팀이 제안한 프레임워크는 고분해능 질량분석기처럼 특정 분자를 정확히 동정할 수 있는 첨단 장비를 필수로 요구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이 시료에 어떤 계열의 분자가 어느 정도 상대 비율로 들어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재는 능력뿐이다.
실제로 연구진은 논문과 보도자료에서 “특별한 신규 장비가 아니라, 이미 운용 중이거나 계획된 화성·유로파·엔켈라두스 탐사 임무의 기존 데이터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못박는다. 예를 들어, NASA의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로버는 화성 예제로 분화구에서 퇴적암 코어를 채취해 유기물 성분과 광물 구조를 다중 스펙트럼으로 측정해 왔는데, 이 가운데 일부 데이터는 분자 계열별 상대 강도 정보로 재해석할 수 있다.
향후 발사될 목성 위성 탐사선 ‘유로파 클리퍼(Europa Clipper)’와 토성 위성 엔켈라두스를 겨냥한 개념 임무들 역시, 얼음 분출 기둥(plume)을 통과하며 포집하는 미립자·기체 샘플에 대해 질량·비행시간 스펙트럼 등 상대 분포 데이터를 축적하게 된다. 여기에 이번 통계 프레임워크를 얹으면, 단일 분자 검출 한계 때문에 놓쳤던 “전체 패턴의 이상 징후”를 새롭게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주장이다.
“법의학처럼 여러 정황이 한 방향을 가리킬 때”
연구진은 이번 통계 방법을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하는 결정적 스모킹건이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정황 증거”로 규정한다. 기디언 요페는 UC 리버사이드 인터뷰에서 “우주생물학은 근본적으로 법의학과 비슷하다”며 “극히 제한된 단서로 과정을 역추적해야 하는 만큼, 단일 기법에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클레너 역시 “미래에 특정 천체에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주장을 하려면, 지질·화학·물리 환경을 아우르는 여러 독립적 증거가 필요하며, 서로 다른 기법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 비로소 설득력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화성·유로파에서 실제로 이 통계 시그널이 포착된다 해도, 이는 “생명 가능성이 높은 후보 지역”을 좁혀주는 역할에 가깝고, 추가적인 시추·시료귀환·정밀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전제가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축적된 데이터에 사후적으로 적용할 수 있고, 향후 수십억 달러가 들어갈 대형 탐사 임무들의 ‘성과 레버리지’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는 향후 10~20년간 화성·유로파·엔켈라두스 생명 탐사의 필수 레퍼런스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우주 전문가는 “분자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 분자들이 만들어내는 통계적 무늬를 본다는 관점이 외계 생명 찾기의 새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