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김정영 기자] 2026년 1분기, 장기 불황에 빠져 있던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예상 밖의 ‘깜짝 흑자’로 돌아섰다. 핵심은 수요 회복이 아니라, 이란 전쟁·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불러온 가격 왜곡과 ‘래깅(lagging) 효과’라는 일회성 요인이었다. 중동 사태의 여파로 제품 가격이 오른 데다, 분쟁이 본격화되기 전 저가에 매입해둔 원료 재고를 활용한 효과가 맞물리며 수익성이 개선됐다.
롯데케미칼, 10분기 만에 턴어라운드
롯데케미칼은 5월 11일 공시에서 2026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4조 9,900억원, 영업이익 73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영업손실 1,266억원에서 흑자로 전환한 것은 물론, 2023년 3분기 이후 이어진 10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끝낸 성과다.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시장 컨센서스(영업이익 97억원)를 7배 넘게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이기도 하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기초화학 부문이 제품 가격과 원료 가격 간 스프레드 개선에 힘입어 45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첨단소재 부문은 전방 수요 회복으로 61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글로벌 공급망 변동성과 원재료 가격 상승 영향이 커졌으나, 기민한 원료 조달과 탄력적인 가동률 조정 등 생산 운영 최적화로 수익성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또 “기초소재 기준 2,500억원 수준의 긍정적 래깅 효과가 발생했다”고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했다.
‘래깅 효과’와 스프레드 개선이 만든 1분기 ‘깜짝 실적’
이번 실적 반전의 공통된 키워드는 래깅 효과와 스프레드 확대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로 국제유가와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국내 업체들은 이미 확보해둔 저가 나프타 재고를 투입해 생산한 제품을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석화업계 수익성을 가늠하는 대표 지표인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최근 톤당 500달러를 넘어 통상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250달러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전쟁 직후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스프레드가 공급 차질 심화와 함께 역전된 것이다.
이 같은 가격 구조 변화는 업계 전반의 1분기 실적에 그대로 반영됐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은 1분기 영업이익 1,648억~1,650억원 수준을 기록하며 직전 분기 2,390억원 적자에서 단숨에 흑자로 돌아섰고,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역시 지난해 1분기 912억원 영업손실에서 올해 1분기 341억원 흑자로 전환했다.
금호석유화학은 594억원, SKC 화학 사업은 96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석유화학 부문 전반이 ‘마진 시소’의 상승 구간을 공유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이란 전쟁으로 원재료와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동반 상승한 가운데 재고로 보유한 저가 원재료를 활용한 영향이 핵심 요인"이라고 짚었다.
중국·중동 감산이 만든 ‘공급발 마진’…지속성은 미지수
이번 마진 개선은 수요 폭증이 아니라 공급 차질과 가격 왜곡이 낳은 ‘전쟁의 역설’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 이투데이는 “중동 전쟁 여파로 석유화학 제품 마진이 급반등하면서 단기적으로 실적 개선 흐름이 예상되지만, 중국발 공급 과잉이 여전해 업황의 구조적 회복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하나증권 분석을 전했다. 실제로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 급등은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로 원료 공급이 막히면서 중동과 중국 일부 설비 가동률이 낮아진 데 따른 결과로 평가된다.
‘전쟁 특수’는 중국에서도 관측된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중국 민간 석유화학 기업 헝이석화(Hengyi Petrochemical)의 1분기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0배(3,773% 수준) 폭증했다며, PTA·PET 공급 부족과 제품 가격 급등이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만성적인 과잉 생산과 마진 악화에 시달리던 중국 유화 업계가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 덕분에 “3년 치 수익을 한 분기에 벌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번 호실적이 구조적 수요 확대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2분기까진 ‘착시 호황’, 그 이후는 역래깅 리스크
단기 전망은 밝지만, 2026년 하반기 이후로 갈수록 불확실성은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싸게 산 원유로 비싸게 파는 래깅 효과 수혜”로 2분기까지 실적 개선 흐름이 이어질 수 있지만, 하반기에는 급등한 원재료 가격이 본격 반영되며 역래깅(reverse lagging)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증권가 역시 지정학적 프리미엄이 꺼지고 중국이 증설을 지속할 경우, 다시 과잉 공급과 마진 압박 국면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소개하고 있다.
또 공급 단절 우려에 따른 비축 수요와 함께 석유화학 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수익성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중동과 중국의 설비 가동률이 낮아지면서 발생한 일시적 반사이익인지, 구조적 재편의 신호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즉, 1~2분기 실적은 ‘전쟁 프리미엄’이 덧씌워진 착시일 가능성이 크고, 고가 원료가 투입된 제품을 낮은 가격에 팔아야 하는 역래깅 국면이 열리면 현재의 마진은 그대로 반납될 수 있다는 경고다.
롯데케미칼의 구조조정 실험, 업황 바닥에서 통할까
이 같은 불확실성 속에서 롯데케미칼은 이번 흑자를 ‘숨 고르기’ 계기로 삼아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롯데케미칼이 이번 실적을 국제 나프타 가격 상승에 따른 일시적 래깅 효과로 분석하고 예정된 구조 개편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라며, 여수·대산 법인 분할과 스페셜티·친환경 에너지 사업 확대 계획을 전했다. 또한 고부가 스페셜티 제품 확대와 사업 구조 재편을 병행하며 ‘전쟁 특수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한 석유화학업체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 과잉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의 구조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단기 래깅 효과가 ‘숨 고를 시간’을 벌어준 만큼, 이 시간을 활용해 설비 효율화와 포트폴리오 전환에 성공하는 기업만이 전쟁 프리미엄이 꺼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