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승원 기자] 구글이 양자 컴퓨팅과 인공지능(AI)을 앞세워 생명과학 패러다임 전환을 노리는 1000만달러(약 136억원) 규모의 ‘REPLIQA’ 프로그램을 공식 출범시켰다.
단순한 연구기금이 아니라, 향후 10년을 내다본 양자 생물학 생태계 선점 전략이라는 점에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빅테크, 학계의 시선이 동시에 쏠린다. Google Quantum AI 창립자 하트무트 네벤(Hartmut Neven)이 발표한 이 프로그램은 하버드, MIT, UC 샌디에이고, UC 샌타바버라, 애리조나대학교 등 5개 대학의 연구를 지원한다.
구글, 5개 명문대에 1000만달러…양자 생물학 ‘앵커 테넌트’ 확보
REPLIQA는 ‘Research Program at the Intersection of Life Sciences & Quantum AI’의 약자로, 이름 그대로 생명과학과 양자 AI의 교차지대에 연구 자원을 집중하겠다는 구글 Quantum AI의 중장기 프로젝트다. 구글은 이번 프로그램에 총 1000만달러를 투입하며, 하버드대, MIT, UC 샌디에이고(UCSD), UC 샌타바버라(UCSB), 애리조나대 등 5개 대학을 초기 파트너로 선정했다.
google.org가 전액을 출연하는 이 기금은 양자 센서와 양자 알고리즘을 활용해 분자 상호작용을 시뮬레이션하고 세포 수준의 생명 현상을 정밀 관측하는 연구에 쓰인다. 이미 각 대학은 양자 정보과학, 계산생물학, 천문·우주 탐사 등에서 선도적인 연구 실적을 보유한 만큼, 구글 입장에서는 ‘검증된 파일럿 허브’ 5곳을 한 번에 확보한 셈이다.
애리조나대에서는 NASA OSIRIS-REx 소행성 샘플 귀환 임무의 수석 연구책임자이기도 한 단테 라우레타(Regents Professor)가 프로그램을 이끈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를 두고 “우주 탐사에서 요구되는 엄밀함을 세포라는 미시적 프런티어에 적용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구글이 우주·행성 과학에서 검증된 정밀 계측·데이터 분석 문법을 생명과학에 이식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왜 지금 양자 생물학인가…“양자 효과가 작동하는 분자 스케일”
REPLIQA가 겨냥하는 문제는 분명하다. 단백질 접힘, 약물 대사, 세포 내 신호 전달 같은 핵심 생명 현상은 모두 원자·분자 스케일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이고, 이 영역에서는 양자역학적 효과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개입한다. 현재 상용·실험용 양자 하드웨어는 수십 개 원자로 이뤄진 분자를 시뮬레이션하는 수준까지 도달했지만, 실제 신약 후보 물질과 표적 단백질이 얽힌 거대 분자계 전체를 정확히 계산하려면 오류 보정(fault-tolerant) 양자 컴퓨터가 필요하다.
아직 완전한 오류 보정 양자컴은 존재하지 않지만, 구글이 목표로 제시한 “향후 10년 안에 유용하고 오류 보정된 양자 컴퓨터 구현”이라는 로드맵과 맞물리면, 이번 1000만달러 투자는 하드웨어 성숙기에 맞춰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선점하기 위한 선행 포석으로 해석된다.
구글은 이미 2019년 세계 최고 성능 슈퍼컴퓨터에서 1만년이 걸리는 연산을 200초 만에 처리한 ‘양자 우위’ 실험을 발표했고, 2025년에는 자체 양자 칩 ‘윌로우(Willow)’와 알고리즘 ‘퀀텀 에코스(Quantum Echoes)’를 통해 “기존 최고급 슈퍼컴 대비 1만3천 배 빠른 계산 속도”를 입증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 같은 성과는 15개·28개 원자 분자를 대상으로 핵자기공명(NMR)과 비교 실험을 수행해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분자 구조 분석·신약 설계 등 화학생명과학 응용 가능성을 이미 시사했다. REPLIQA는 이러한 기술적 토대 위에서 생명과학 전용 양자 알고리즘과 데이터셋을 체계적으로 축적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구글의 전략적 포지셔닝…“하드웨어가 오기 전에 응용을 깐다”
구글 Quantum AI는 초전도 큐비트와 중성 원자 시스템을 동시에 개발하는 이중 트랙 하드웨어 전략을 취하고 있고, 2030년 안에 초전도 기술 기반의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양자 컴퓨터를 내놓겠다는 목표를 공공연히 밝혀왔다. 하드웨어 측에서 ‘검증 가능한 양자 우위’를 확보해가는 동시에, 소프트웨어·알고리즘·응용 생태계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경쟁사보다 먼저 ‘양자 생물학 플랫폼’을 띄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제임스 마니카 구글 수석 부사장은 공식 블로그에서 “양자 컴퓨팅, AI, 생명과학의 융합은 인류가 분자 수준에서 질병, 신약 개발, 단백질 상호작용, 생물학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할 잠재력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이미 2000만달러 규모로 12개 기관을 지원 중인 ‘AI for Science’ 프로그램과의 연속선상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 당시 google.org는 유전체학, 기후, 핵융합 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AI 활용을 확산시키는 데 방점을 찍었다면, REPLIQA는 그 중에서도 양자 생물학이라는 초협소·초고가치 니치(niche)에 집중하는 ‘버티컬 전략’이다. 특히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신약 후보 한 건이 임상 3상까지 가는 데 평균 10~15년, 개발 비용만 최소 수십억달러가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분자 시뮬레이션 정확도 향상만으로도 글로벌 시장 파괴력이 크다.
글로벌 양자 생물학 경쟁 구도 속 REPLIQA의 좌표
양자 생물학은 아직 명확한 시장 규모가 정의되지 않은 ‘프리-마켓’ 단계지만, 미국 국립보건원(NIH), 국립과학재단(NSF), 에너지부(DOE) 등이 양자 생물학·양자 감지 등 분야에 개별 연구비를 투입하며 생태계를 키우고 있다. 다만 NIH가 양자 생물학에 10만달러(개별 과제 기준), DOE가 양자 감지에 8만달러를 지원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일 기업이 일회성 프로그램으로 1000만달러를 집행하는 REPLIQA는 적어도 ‘규모의 신호’ 측면에서 강한 메시지를 던진다.
더구나 구글은 자사 양자 칩·알고리즘을 통해 분자 구조 분석에서 이미 기존 NMR보다 정밀한 정보 일부를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어, 대학 파트너들은 이 인프라를 활용해 곧바로 고난도 실험에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서도 구글의 ‘검증 가능한 양자 우위’ 발표는 주요 언론이 일제히 다뤘고, 일부 보도는 연구진 10명이 1년 동안 수행한 1조 회 이상의 측정을 통해 결과를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구글이 단순히 이론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대형 실험·검증에 자원을 투입할 여력이 있는 플레이어라는 점을 재확인시킨다.
한국 입장에서는 향후 REPLIQA 2기·3기에서 아시아 대학·연구기관이 편입될 여지를 주시할 필요가 있고, 국내 양자 정보과학·생명과학 커뮤니티도 이 프로그램에서 도출되는 알고리즘·오픈데이터를 어떻게 레버리지할지 전략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