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유럽 최대 지구과학 학술 행사인 ‘2026년 유럽지구과학연합(EGU) 총회’에서, 14세기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현대 행성 충돌 물리학을 500년 이상 앞서 ‘상상 모델링’했다는 도발적인 연구가 제기됐다. 5월 3~8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이번 학회에는 해마다 2만명 안팎의 연구자가 참가하는데, 문제의 연구는 이 거대 학술장의 학제 간 지구과학·지형학 세션 포스터로 공개됐다.
단테의 이 작품은 단순한 영적 알레고리가 아니라, 현대 운석학의 핵심 개념을 약 5세기나 앞서 예견한 행성 충돌 물리학에 관한 무의식적 사고 실험이었을 가능성이 제기한 것.
사탄의 추락, 거대 소행성 충돌로 재독해
연구를 발표한 이는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마셜대학교의 티모시 버버리(Timothy Burbery) 교수로, 그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묘사된 ‘사탄의 추락’을 거대 천체의 고속 지구 충돌로 해석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단테의 텍스트에서 사탄은 남반구로 추락한 뒤, 지구 중심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원형 계단식 구덩이, 곧 ‘지옥’을 형성하고, 이때 튀어나간 막대한 물질이 지구 반대편에서 봉우리 모양으로 솟아올라 ‘연옥산’을 이룬다고 설정돼 있다.
버버리의 해석대로라면, 단테가 상상한 이 지형은 현대 행성과 위성에서 관측되는 대형 충돌 분지의 형성과정과 유사한 구조를 띤다. 연구자는 이 상상도를 비조류 공룡 멸종의 원인으로 알려진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칙술루브(Chicxulub) 충돌구, 그리고 지구와 화성 크기의 천체 ‘테이아(Theia)’가 충돌해 달이 형성됐다는 가설 등과 같은 스케일의 ‘가상 충돌 시나리오’로 병치한다.
버버리는 또 사탄의 길쭉한 신체 묘사를 2017년 태양계를 스쳐 지나간 성간 천체 ‘오무아무아(ʻOumuamua)’의 장축 대비 단축이 극단적으로 긴 시가형 구조에 비유하고, 대기권 진입 과정에서 완전히 기화되지 않고 거대 질량을 유지한 사례로 무게 약 60톤의 호바(Hoba) 운석을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테의 ‘문학적 형상화’를 현존 관측 자료에 기초한 충돌체의 물리적 특성에 연결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지옥의 아홉 동심원, 달·화성의 다중 고리 분지 닮았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단테가 설계한 ‘지옥의 지형’을 현대 행성지형학의 핵심 개념인 ‘다중 고리 충돌 분지(multi‑ring basin)’로 해석한 부분이다. 단테에 따르면 지옥은 북반구 지하에 뻗어 있는 거대한 깔때기형 구덩이이며, 9개의 동심원 구조를 따라 아래로 좁아지면서 최하층(제9지옥)에 이르는 계단식 형태를 띤다.
연구는 이러한 9개 원을, 달의 남극 아이트켄(South Pole–Aitken) 분지나 화성·금성에서 관측되는 대형 충돌 분지의 계단식 구조와 대응시키고 있다. 이들 분지는 충돌 순간의 극심한 압력과 그 후 냉각·함몰 과정에서 형성된 다중 동심 단층 고리, 중심 융기(central peak 혹은 중앙 고원)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EGU 측은 관련 보도자료에서 “단테는 거대한 질량이 지각을 관통해 지구 핵 부근에서 최대 압축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종단 속도와 지각 파괴의 물리 과정을 직관적으로 구현했다”고 평가했다.
즉, 단테가 설계한 ‘지옥의 9원’이 죄의 위계라는 상징 체계를 넘어, 오늘날 달·화성 표면에서 위성 관측과 궤도탐사를 통해 확인되는 대형 충돌 분지의 링 구조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는 것이 버버리의 주장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문학 텍스트와 지형학의 상상적 연결에 머무는 가설 수준이며, 정량적 수치 모델링이 동반된 엄밀한 지구물리 논문으로 발표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학술적 장난’에 가깝다는 신중한 시각도 함께 제기된다.
“과학자가 아니었지만, 충돌 효과를 끝까지 상상한 최초급 사유자”
연구자 버버리는 단테가 본업은 시인이자 정치가였지만, “역사상 거대한 질량체가 초고속으로 지구에 추락했을 때 일어날 물리적 효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상상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테가 《신곡》을 집필한 시기는 1308~1320년 무렵으로 추정되며, 이때는 아직 ‘운석’이 우주 기원의 암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했던 시대였다.
실제로 유성·운석에 대한 현대적 연구는 19세기 이후에야 체계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과학사 연구의 대체적 결론이다. 1833년 북미지역에서 관측된 대규모 사자자리(Leonid) 유성우 이후, 천문학자들은 비로소 유성이 대기 중 일시 현상이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 유입된 물질이 연소하며 발생하는 천문학적 사건이라는 인식을 널리 공유하게 됐다.
그로부터 500여 년 앞선 단테의 상상력이 오늘날의 충돌 역학을 ‘선취’했다고 보는 시각은 다소 과장일 수 있지만, 최소한 그는 지구 내부 구조와 지형 형성에 대한 일관성 있는 가설을 시적 형식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라는 평가다.
문학과 지구과학의 파격 접속…“인문-이과 경계 허무는 사례”
EGU 총회는 2002년 설립된 유럽지구과학연합이 매년 개최하는 연례 학술회의로, 화산학·기후·행성탐사·지구 내부구조 등 지구·행성·우주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20,000명 규모의 ‘지구과학 올림픽’으로 불린다. 올해 총회는 5월 3~8일 빈 오스트리아센터에서 온·오프라인 병행 방식으로 진행됐고, 화재·폭염·에너지 전환 압력, 심해 지진해일, 인공지능과 지구과학 윤리 등 6개 주제의 공식 프레스 콘퍼런스가 별도로 운영될 정도로 언론 노출도 높았다.
이 같은 대형 지구과학 학술 무대에서 중세 서사시와 행성 충돌 물리학을 연결한 연구가 소개됐다는 사실은, 과학계 내부에서도 인문학 텍스트를 ‘가설의 상상 실험장’으로 활용하는 시도가 점점 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테의 지옥 지형을 달·화성의 다중 고리 분지와 중첩해 읽는 작업은, 한편으론 과학 대중화 전략이자, 다른 한편으론 인문-이과의 기계적 구분을 허무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이번 발표는 정식 동료평가를 거친 저널 논문이 아닌 포스터 형태의 가설 제시 단계이며, 충돌체 질량·속도·에너지량을 수치로 역산해 단테의 묘사와 비교한 본격적인 물리 모델은 공개되지 않았다. 향후 행성지질학·지구물리학·문학연구자들이 협업해 ‘단테 모델’을 수치 시뮬레이션으로 검증할 경우, 단테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까지 현대 충돌역학과 맞물리는지 보다 정밀한 평가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