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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동산

[The Numbers] 세계 코인 거래의 30%가 ‘원화’…AI 랠리가 불붙인 한국의 암호화폐 고위험 베팅

 

[뉴스스페이스=이현주 기자] 한국 원화가 글로벌 암호화폐 현물 거래량의 30%를 차지하며 미국 달러에 이어 세계 2위 ‘크립토 허브’로 부상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구 5,200만명의 중견국에서 주간 약 260억 달러(월평균 1,340억 달러) 규모의 코인 거래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개인투자자의 위험 선호와 시장 구조가 세계 암호화폐 지형을 재편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상자산 리서치 기업 카이코(Kaiko)에 따르면, 원화(KRW) 기반 거래는 2021~2026년 기준 글로벌 암호화폐 현물 거래량의 30%를 차지하며, 한국을 미국 달러에 이어 세계 2위 법정화폐-암호화폐 거래 허브로 끌어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한국의 월평균 암호화폐 거래 규모는 약 1,340억 달러, 주간 기준으로는 약 260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된다.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1인당 거래 노출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에서, “한국은 전형적인 리테일 주도형 고위험 시장”이라는 해외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 거래는 소수 대형 거래소에 집중돼 있다. 카이코에 따르면, 이 같은 거래량의 대부분은 업비트와 빗썸 등 두 곳에 쏠려 있으며, 이들 거래소가 사실상 한국 암호화폐 현물 시장의 90% 안팎을 점유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엔화 표시 거래가 네 곳의 거래소에 고르게 분산돼 월 20억~30억 달러 수준의 안정적 거래를 유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만의 ‘알트코인 공화국’…비트코인은 주변인


한국을 다른 주요 시장과 갈라놓는 대목은 압도적인 알트코인 편중이다. 카이코 자료에 따르면, 한국이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량의 30%를 차지하는 가운데, 이 중 약 85%가 비트코인·이더리움을 제외한 알트코인 거래로 채워져 있다. 반면 비트코인은 9%, 이더리움은 6%에 그쳐, 미국·유럽 중앙화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이더리움이 거래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조와는 정반대 양상이다.

 

카이코는 “한국 개인 투자자의 알트코인 비중이 85%에 달한다”며 “비트코인 9%, 이더리움 6%라는 구조는 전형적인 글로벌 패턴과 거꾸로 서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바로 옆 시장인 일본과 비교하면 특수성이 더 선명해진다. 엔화 기반 거래는 월 20억~30억 달러로 규모는 작지만, 비트코인 위주의 비교적 보수적인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반면, 한국은 주간 거래액만 260억 달러에 달하면서도 알트코인 위주로 고위험 자산에 몰리는 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알트코인 편중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4년 1분기에는 중앙화 거래소 기준 한국 원화가 미국 달러를 제치고 전 세계 암호화폐 거래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법정통화로 올라선 바 있다. 당시에도 리플(XRP), 도지코인 등 알트코인 거래 비중이 비트코인을 앞서는 ‘코리안 프리미엄’ 양상이 재현되며, 한국 시장의 고유한 위험 선호가 부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얕은 오더북’이 드러낸 리테일 의존 구조


카이코 리포트는 한국 코인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도 동시에 지적한다. 우선, 한국의 오더북(호가창) 깊이는 일본 대비 상당히 얕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형 기관투자자나 마켓메이커보다 개인투자자 중심의 단기 매매 비중이 높다는 의미로, 특정 알트코인에 매수·매도 주문이 쏠릴 경우 가격이 순식간에 요동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특징은 선물·파생상품 시장의 부재다. 국내에서는 규제 환경상 코인 선물 시장이 사실상 막혀 있는 탓에, 레버리지와 헤지 수요가 현물 시장으로 몰리면서 현물 거래 회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는 가격 급락 시 방어 수단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상승장에서는 폭발력, 하락장에서는 취약성’을 동시에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규제 측면에서도 과제가 남는다. 한국이 가상자산 규모 세계 2위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제도권 편입과 과세 체계 정비가 지연되면서 시장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혁신 촉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원화 30%’ 시대가 지속 가능한 생태계로 이어질지, 일시적 과열로 끝날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AI 랠리와 ‘위험 선호 연쇄 반응’


흥미로운 것은 AI 붐과 한국 코인 시장의 고위험 베팅이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와 해외 투자 리포트에 따르면, 2026년 들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고대역폭 메모리(HBM) 핵심 공급사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한국 증시 전반에 위험 선호가 확산되고 있다. iShares MSCI South Korea ETF는 2026년 3월 초 기준 연초 대비 37%를 웃도는 수익률을 기록했고, 코스피 지수는 5월 7000포인트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일부 해외 파생상품 플랫폼에서는 KOSPI 200을 기초로 한 무기한 선물 계약에도 개인·전직 암호화폐 트레이더 자금이 유입되고 있으며, 5월 초 기준 이들 포지션의 약 63%가 수익 구간에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AI 공급망의 ‘핵심 플레이어’라는 국가적 자신감이 한국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성향을 끌어올리고, 그 연장선에서 알트코인 중심의 고위험 디지털 자산으로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위험 선호 연쇄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이 같은 구조는 글로벌 유동성 사이클과 규제 방향에 극도로 민감하다. 달러 유동성 축소와 규제 강화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원화가 차지하는 ‘글로벌 30%’ 비중이 급격히 줄어들며 시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AI 붐이 만든 자신감이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귀결될지, 또 한 번의 과열과 급락으로 끝날지는 향후 몇 년간 한국이 어떤 제도·리스크 관리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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