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자동화·로봇 보급률을 바탕으로 ‘AI·로봇세’라는 새로운 조세 실험대 위에 올랐다. 정부와 정치권은 로봇과 AI가 대체한 일자리에서 빠져나간 소득세·사회보험 재원을 어떻게 메울지 셈법을 굴리고 있고, 노조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 자체를 막으며 정면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세계 1위 로봇밀도, 세수 기반 잠식 우려
국제로봇연맹(IFR)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용 로봇 밀도는 노동자 1만명당 1,000대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초고속 자동화가 생산성을 끌어올린 반면, 근로소득세와 사회보험료라는 전통적 세원은 구조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은 이미 2018년 자동화 설비 투자세액공제를 축소해 사실상 ‘역(逆) 인센티브’를 건 세계 첫 사례로 주목받았다. 영국 언론은 당시 “한국이 세계 최초로 로봇세를 도입했다”고 평가했는데, 정보기술혁신재단(ITIF) 분석에선 이 조치 이후 한국의 로봇 설치 증가 속도가 일본 대비 약 28%포인트 뒤처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화 투자에 제동을 걸어 세수 잠식을 늦추되, 성장 동력에 브레이크를 밟은 셈이다.
최근에는 한발 더 나아가 ‘로봇이 창출한 부가가치에 과세할 것인가, 아니면 AI 사용시간·AI가 대체한 인건비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구체적인 설계 논의가 진행 중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은 기업이 AI 활용으로 얻은 이익 일부를 사회보장기금에 환류하는 ‘AI 사회보장세’를 제안했고, 재정 정책 연구기관들도 “디지털 전환에 맞는 새로운 과세 베이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21만개 감소…AI발 고용충격 현실화
우려가 단순한 공상은 아니다. 한국은행이 2025년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 등장 이후 3년(2022년 7월~2025년 7월) 동안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 15~29세 청년 고용이 21만1,000명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시스템 통합 및 관리업(-11.2%), 출판업(-20.4%), 전문서비스업(-8.8%), 정보서비스업(-23.8%) 등 이른바 ‘좋은 일자리’가 몰려 있던 업종일수록 감소 폭이 컸다.
이 흐름은 통계청 공식 고용지표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2026년 1월 기준 취업자 증가 폭은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특히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 취업자는 1년 새 9만8,000명 감소해 2013년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통계당국은 “엔지니어링 등 고숙련 직군에서 AI 도입이 신입 채용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 현장 인식도 비슷하다. 최근 국내 조사에서 응답 기업의 71%가 “이미 AI가 업무 일부를 대체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고용노동부는 2026년 2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AI·자동화 고용영향 협의체’를 출범시켜 일자리 구조조정, 전직·재교육, 안전망 재설계를 공식 의제로 올렸다. 일자리는 ‘숫자’보다 ‘질’의 재편 국면에 본격 진입했다는 신호다.
현대차 노조, “로봇 한 대도 못 들어온다”
이 거시적 논쟁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날카로운 갈등으로 표출됐다. 현대차 노조는 그룹이 CES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상용화 계획을 공개하고,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공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노사 합의 없이는 로봇 한 대도 생산 현장에 들일 수 없다”고 선언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차지부는 국내 최대 단일 노조다. 노조는 “로봇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용·임금 보전 대책 없는 일방 통보식 도입에는 거대한 저항을 준비하겠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 노조 가운데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라인 투입에 공개적으로 ‘레드카드’를 든 첫 사례라는 점에서 국제 노동계의 주목도 받고 있다.
사측은 미국에 2028년까지 260억달러를 투자해 전기차·배터리·로봇 생산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며, 연간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 계획도 내놨다. 현대차 입장에선 글로벌 전기차·로봇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지만, 노조 입장에선 국내 공장 일자리·임금 체계를 뒤흔들 ‘게임 체인저’다. 로봇세 논쟁이 재정의 문제라면, 현대차 사태는 고용안정과 노사 권력균형의 문제다.
세계는 ‘로봇세’ 대신 무엇을 택했나
한국의 논의는 국제 흐름과도 맞물린다. 유럽의회는 2017년 로봇을 활용해 얻는 이익에 과세하고, 이를 사회보장기금에 투입하자는 입법안(메디 델보 보고)을 검토했지만 결국 부결시켰다. 프랑스에서는 사회당 대선 후보 브누아 아몽이 기본소득 재원 3,000억유로 마련을 위해 ‘로봇세’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도 “연봉 5만달러 노동자가 내는 수준의 세금을 로봇에도 물려야 한다”며 자동화 속도 조절과 재교육 재원 마련을 주장했다.
그러나 다수 경제학자는 “로봇 정의와 기여 분을 측정하기 어렵고, 혁신 투자에 찬물을 끼얹는다”며 반대했고, 실제 정책 채택으로 이어진 국가는 아직 없다. 대신 일부 국가는 디지털 서비스세, 데이터세, AI를 활용한 초과이익에 대한 법인세 보완 등 ‘간접 경로’를 모색 중이다. 한국도 국회미래연구원이 제안한 ‘AI 사회보장세’처럼 기업 이익 분담 방식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강하다.
‘기계가 낸 세금’으로 새 사회계약을 짤 수 있을까
정책 옵션은 크게 세 갈래로 요약된다. 첫째, 생산성 향상시설 공제 축소처럼 기존 법인세·투자세제의 역인센티브를 강화해 자동화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 둘째, AI 사용량·대체 인건비·로봇 기여 이익 등을 기준으로 별도 ‘AI·로봇세’를 신설해 실직자 재교육·실업부조·기본소득 등을 재원으로 삼는 방식. 셋째, 직접 과세 대신 국가 AI 펀드·공공 배당·데이터 배당 등을 통해 AI로 발생한 초과이익을 사회 전체와 공유하는 모델이다.
국내 산업계는 “AI·로봇세가 도입되면 이미 높다는 법인세와 함께 투자·고용을 해외로 돌리는 ‘오프쇼어링’ 유인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AI의 생산성 이익이 소수 대기업과 자본에 집중되는 만큼, 최소한 이동·재교육·사회보장 비용 만큼은 ‘기계가 낸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고 맞선다.
결국 한국의 로봇세 논쟁은 단순한 세목 신설 여부가 아니라, ‘일자리 중심’에서 ‘생산성·데이터 중심’으로 이동하는 자본주의의 규칙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청년 21만 명의 일자리 감소와 현대차 공장의 휴머노이드 로봇 갈등은 그 질문이 더 이상 미래의 가정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로봇세를 택하든, AI 사회보장세·공공 배당을 택하든, 한국이 지금 만드는 답은 고령화·디지털 전환이라는 이중의 파고를 넘기 위한 ‘새 사회계약’의 첫 문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