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은주 기자]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5월 5일(현지시간) AI로 합성된 란제리 사진을 공개 비판하며 “정치적 공격”이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이는 더 이상 딥페이크를 ‘온라인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정치·성별·기술이 교차하는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폭증 중인 딥페이크 범죄 통계와 EU의 AI 규제 흐름을 하나의 축으로 꿰어야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멜로니 “믿기 전에 확인하라”…공개 반격의 메시지
멜로니 총리는 최근 AI가 생성한 자신 란제리 사진이 온라인에서 실제 사진처럼 유포되자, 해당 이미지 가운데 하나를 직접 페이스북에 게시하고 “딥페이크는 누구든 속이고 조종하고 공격할 수 있는 위험한 도구”라고 경고했다. 그녀는 “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지만, 많은 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 사안을 개인 명예훼손을 넘어 디지털 시대 민주주의의 위협으로 격상시켰다. 멜로니가 제시한 대응 원칙은 간명했다. “항상 하나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믿기 전에 확인하고, 공유하기 전에 생각하라(verify before believing, think before sharing).”
이번 사건은 ‘단발성 스캔들’이 아니라, 적어도 세 번째에 이르는 반복된 공격이라는 점에서 더 무겁다. 이탈리아 안사통신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멜로니는 이미 2024년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포르노 영상을 제작·유포한 73세·40세 부자를 상대로 10만 유로(약 1억5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2025년에는 이탈리아 성인 사이트에 멜로니와 그의 여동생, 야당 정치인 엘리 슈라인을 합성한 음란물이 올라오자, 그는 이를 “역겹다”고 규탄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숫자로 드러난 ‘딥페이크 팬데믹’…여성·청년이 집중타
멜로니 사례는 정점에 있는 정치지도자의 이름과 얼굴이 붙었기 때문에 국제 뉴스가 됐을 뿐, 통계로 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집계에 따르면, 2024년 딥페이크 등 합성·편집 피해 건수는 1년 새 227.2% 급증해 423건에서 1,384건으로 뛰었다. 전체 디지털성범죄 피해 중 비중도 2.9%에서 8.2%로 껑충 올랐고, 피해 영상물 삭제 지원은 처음으로 30만건을 넘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피해자 구성은 더 뼈아프다. 2018년 센터 출범 이후 처음으로 누적 피해자가 1만명을 넘었고, 이 가운데 여성 비율은 72.1%에서 96.6%까지 추산하는 연구 보고도 나와 있다. 연령별로는 10대와 20대가 78.7%를 차지해, 딥페이크 공격이 사실상 ‘어린 여성’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드러냈다. 세계적으로는 각국 정상과 유명 인사들이 표적이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24년 미국 대선 예비선거 직전 조 바이든 대통령 음성을 합성한 AI 자동응답 메시지가 유권자 투표를 방해한 사건이 있었고,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 등도 딥페이크 가짜뉴스 피해 사례로 거론된다.
정치공작과 디지털 성폭력이 겹치는 ‘이중 폭력’
이탈리아 첫 여성 총리이자 강경 우파 지도자인 멜로니에게 향한 딥페이크 공격은 정치공작과 디지털 성폭력이 겹쳐 있는 이중 폭력이라는 점에서 구조적 의미가 크다. 2024년 민사소송 대상이 된 딥페이크 포르노는 미국 포르노 사이트를 포함한 플랫폼에 유포된 것으로 알려졌고, 2025년 성인 사이트에 올라온 합성물 역시 공개 행사 장면과 SNS 사진을 무단으로 가져와 성적 자세로 재조합한 방식이었다. 이는 단순 명예훼손을 넘어, 여성 정치인의 공적 활동 이미지를 성적 오브제로 전환해 발언권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번 란제리 사진 논란에서도 원 게시물에는 “총리로서 부끄러워 자격이 없다”는 식의 분노 섞인 문구가 함께 달려 있었고, 멜로니 측은 이것이 합성 사실이 알려지기 전 이미지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는 전형적 프레이밍 전략이라고 비판했다. 이제 딥페이크는 정치적 허위정보(디스인포메이션)와 성적 모욕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 툴’로 진화 중이다.
EU AI Act와 규제 공백…“법은 생겼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홀로 싸운다”
법·제도 측면에서 유럽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EU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법인 ‘EU AI Act’는 2024년 3월 유럽의회 통과, 5월 유럽이사회 최종 승인 이후 6~36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AI 시스템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인권·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수용 불가 위험’ AI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한편, 고위험 AI에 대해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일반용·범용 AI 모델에 대한 규제도 발효 12개월 이후 본격 적용될 예정이다.
그러나 비동의 딥페이크 이미지와 같은 성적·정치적 합성물에 대한 집행 체계는 여전히 정비 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경을 넘나드는 플랫폼,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제작·유포 구조, 피해자의 입증 부담이 결합되면서, 법률이 존재해도 실질적 구제는 느리고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국내 연구기관 역시 딥페이크 기술이 허위정보 확산·성범죄·사기 등을 촉발하는 사회적 악영향을 지적하며, 기술·법제·플랫폼 책임을 아우르는 입체적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피해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멜로니 사건은 ‘유명 정치인 스캔들’이 아니라, AI 시대에 여성·청년·소수자의 몸과 얼굴, 그리고 민주주의의 신뢰가 어떻게 동시에 공격받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라며 "한국 역시 통계상 이미 딥페이크 피해 급증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만큼, 이번 유럽발 논쟁을 단순 외신 소비에 그치지 말고, 국내 입법·사법·플랫폼 규율, 미디어 교육 체계를 재설계할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