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페이스=이종화 기자] 7월 30일은 크리스토퍼 놀란이 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만 56세 생일을 맞는 날이다. 그의 생일을 맞아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할리우드를 지배해온 이 거장의 영화적 업적은 물론, 정작 스크린 밖에서는 자신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사생활과 가족사가 숨어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짚어본다.
21세기 최고의 거장으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에게는, 정작 자신의 어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가족사가 30년 가까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정체성의 조작과 은폐된 진실을 필모그래피 전면에 내세워온 그의 뒤편에는, 실제로 가명으로 신분을 숨기고 살인 사건에 연루돼 국제 수사망에 올랐던 친형의 존재가 숨어 있었다.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의 업적…'작가주의'와 '흥행' 동시에 잡다
할리우드가 그를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연출가'로 칭송하는 사이, 놀란 가문 내부에서는 실화보다 더 극적인 범죄와 도피, 미결의 서사가 조용히 흘러왔다. 그럼에도 그는 《메멘토》로 비선형 서사의 새 지평을 열고 《다크 나이트》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을 거쳐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을 석권하며, '작가주의'와 '흥행'이라는 상반된 가치를 동시에 손에 넣은 거의 유일한 감독으로서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동시대의 거장으로 우뚝 섰다.
그는 매 작품마다 시간·기억·정체성이라는 철학적 화두를 대중적 스펙터클로 풀어내며 평단과 흥행 양쪽에서 압도적 성과를 거뒀다. 필름 촬영과 아이맥스(IMAX)를 향한 고집스러운 애정으로 CG 중심의 산업 흐름에 맞서 '아날로그의 부활'을 이끌었다는 점에서도 독보적이며, 2023년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감독상·작품상을 석권하며 마침내 할리우드 제도권의 정점에 올랐다. 그의 이름은 이제 단순한 '흥행 감독'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동시대의 거장'으로 통한다.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3형제다. 첫째 매튜 프랜시스 놀란(Matthew Francis Nolan)은 살인·납치 혐의로 미국과 코스타리카 사법당국의 추적을 받았고, 둘째 크리스토퍼 놀안은 세계적 감독으로, 막내 조나단 놀란(Jonathan Nolan)은 할리우드 정상급 각본가·프로듀서로 각자 극단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왔다.
사건의 실체… 코스타리카 살인 사건
2005년 3월 미국인 회계사 로버트 코헨(Robert C. Cohen)이 코스타리카 산호세(San José)에서 국제 보석상을 자처한 '매튜 오펜하이머'와 만난 뒤 실종됐고, 3월 10일 리몬(Limón) 지역 치리포강(Chirripó River) 다리 밑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검시 결과 그는 극심한 구타와 고문에 따른 장기부전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코스타리카 검찰은 사업가 로버트 브레스카(Robert Breska)가 코헨에게 받아야 할 700만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매튜 놀란을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뉴욕포스트(New York Post)는 매튜 놀란이 공동정범 더글러스 메히아(Douglas Mejia)와 함께 코헨을 호텔로 유인해 납치·감금한 뒤, 가족이 몸값을 지불하지 않자 살해했다고 2009년 보도했다. 메히아는 이미 2005년 이 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매튜 놀란 본인은 살인이나 청부살인 혐의로 정식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고 뉴스위크(Newsweek)는 보도했다.
체포, 탈옥 시도, 그리고 미결의 결말
매튜 놀란은 2009년 2월 시카고에서 파산법정 청문회를 마치고 나오던 중 FBI에 체포됐다. 미국 치안판사는 코스타리카 측 증거를 검토한 뒤 2009년 8월, 위조문서 사용 혐의에 대해서만 상당한 근거(probable cause)를 인정했고 살인·납치 혐의는 인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코스타리카는 2010년 중범죄 혐의에 대한 인도 요청을 철회했다.
수감 중이던 매튜 놀란은 시트를 엮어 만든 약 31피트(약 9.4m) 길이의 밧줄, 하네스, 면도칼, 수갑을 열 수 있는 금속 클립을 감방에서 숨긴 사실이 발각됐다. 그는 밀수품 소지와 사법방해 혐의를 인정했고, 2010년 7월 14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이미 구금된 기간으로 형기가 사실상 채워져 곧 석방됐다. 석방 이후 그의 행적은 공개된 기록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크리스토퍼와 조나단 두 감독 형제는 지금까지 공개적으로 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
'오펜하이머'라는 기묘한 우연
매튜 놀란이 당시 사용한 가명 '매튜 매콜 오펜하이머(Matthew McCall Oppenheimer)'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유한 다이아몬드 재벌 오펜하이머 가문과의 연관성을 암시하려는 사기성 신분 도용이었을 뿐, 원자폭탄 개발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와는 무관하다고 뉴스위크는 밝혔다. 그러나 2023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실제 오펜하이머 박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오펜하이머》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석권하면서, 이 우연은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놀란가문 첫째·셋째의 대조적 성공…조나단 놀란의 궤적
반면 셋째 조나단 놀란은 형과 함께 《메멘토》 원안, 《다크 나이트》 3부작, 《인터스텔라》 각본을 공동 집필했고, HBO 《웨스트월드》로 2017년 에미상 최우수 드라마 시리즈상을 수상하는 등 독자적 TV 프로듀서로도 성공했다. 이후 아마존 프라임 《폴아웃》 제작까지 이어지며 첫째 형과는 완전히 다른, 그러나 둘째 형과는 나란히 빛나는 커리어를 쌓아왔다.
세 형제, 하나의 서사적 아이러니
철학적으로 보면 놀란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 - 《메멘토》의 기억 조작, 《인셉션》의 거짓 정체성, 《프레스티지》의 은폐된 쌍둥이, 《테넷》의 시간 역행 - 는 정체성의 불확실성과 감춰진 진실이라는 주제를 반복한다는 점에서, 실제 그의 친형이 가명으로 살아가며 신원을 조작한 인물이었다는 사실과 오버랩되며 문화적으로 묘한 대칭을 이룬다.
한 가정에서 세계 최고의 창작자와 사법의 그늘에 갇힌 인물이 동시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유전이나 환경만으로 인간의 행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오래된 인문학적 질문을 다시 던진다.











































